미술계 82년생 주역, 예리한 시선으로 시대를 고찰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18 16:03

업데이트 2021.08.18 18:09

아찔하다. 어두운 전시장 벽면아 순식간에 가득 수천수만 개의 반짝이는 나뭇잎으로 뒤덮인다. 눈부신 초록 세상도 잠시, 숲은 갑자기 불타오르고 나뭇잎은 먼지처럼 사라진다. 이어 그 자리에 빌딩들이 솟아나고 도시는 금세 거대한 빙하로 변한다. 지구의 탄생과 소멸을 압축한 듯한 풍경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웅변하는 듯하다.

강이연의 팬데믹 시대 미디어아트
구지윤의 도시 주제 추상회화
각각 서울 삼청동에서 개인전
전소정은 인적 드문 DMZ 영상
서울· 도쿄· 런던 도심에 선보여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강이연의 신작 '유한'이다. 6분 50초짜리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으로 전시장의 벽과 바닥을 감싼 이 작품은 온몸을 휘감는 듯한 스케일로 영상과 사운드를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요즘 국내 화랑가에 젊은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미디어 아트에서 추상화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각기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직면한 시대를 반영한 작품을 선보이곤 한다. 그 중 강이연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앤트로포즈(Anthropause)'를, 구지윤은 인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 '혀와 손톱'을 열고 있다. 전소정은 서울 삼성동 K-팝 스퀘어 옥외 스크린에 작품을 상영 중이다. 각각 팬데믹 시대, 현대 도시, 비무장지대(DMZ)에 대한 통찰이 담긴 이들의 작품은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세 작가 모두 1982년생, 39세 동갑내기다.

강이연, 팬데믹 시대 '멈춤'에 주목

강이연 작가의 '무한'이 전시되고 있는 PKM갤러리 전시장. [사진 이은주]

강이연 작가의 '무한'이 전시되고 있는 PKM갤러리 전시장. [사진 이은주]

지구의 제한적인 자원이 빠르게 고갈되는 현상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유한'의 한장면. [사진 이은주]

지구의 제한적인 자원이 빠르게 고갈되는 현상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유한'의 한장면. [사진 이은주]

강이연은 신작 두 점, '무한'과 '유한'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와 사운드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빚어냈다. 숲과 빌딩, 빙하, 화재 장면을 정교한 이미지로 구현한 점도 눈길을 끌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크게 끌어올린 요소는 사운드다. 숲의 소리, 제1·2차 세계대전 소음, 그리고 직접 작곡한 피아노 선율이 들어간 11채널 음향이 울림을 증폭시킨다.

전시장에서 만난 강 작가는 "인류는 끝없이 팽창하는 디지털 데이터처럼 삶의 양과 질 모두 무한대로 증대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며 "작품을 통해 모든 존재가 유한하다는 진실을 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형 스크린에 빛의 투과·흡수·반사 작용을 활용한 또 다른 작품 '무한'은 1880년부터 현재까지 총 150년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량을 반영해 변화한다. "아이슬란드 환경운동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쓴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는 "인류와 기후변동의 관계,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공감각적으로 풀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이연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디자인·미디어 아트 석사를, 영국 RCA(왕립예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지난해 '커넥트, BTS' 글로벌 현대미술 프로젝트에 유일한 한국작가로 참여했으며, 서울 잠실 롯데타워에서 김환기 '우주' 미디어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번 전시엔 두 작품의 치밀한 설계과정을 담은 드로잉도 함께 공개한다. 전시는 21일까지.

구지윤, 언젠가 사라질 도시의 기억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엣 전시 중인 구지윤 작품. [사진 아라리오]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엣 전시 중인 구지윤 작품. [사진 아라리오]

구지윤의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아라리오]

구지윤의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아라리오]

강이연이 입체적인 오디오까지 동원해 첨단 매체로 작품을 구현했다면, 구지윤은 대형 추상회화로 '현대'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드러낸다. 오로지 색채와 선의 조형 요소가 뒤엉킨 화면에 도시의 에너지와 분위기를 젊은 감각으로 표현했다.

구지윤은 "현대 도시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며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낡은 오래된 건물들, 계속해서 헌 것을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리는 도시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화면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소정 아라리오 갤러리 디렉터는 "구지윤은 도시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도시 풍경을 담아낸다"며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탁한 색과 밝은색이 대비되고, 날카롭고 거친 선과 두텁고 부드러운 선이 혼재하는 화면이 독특한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구지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과정을 거쳤으며, 시카고 미술대를 거쳐 뉴욕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서울 삼청동에서 나란히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강이연과 같은 시기 예원중, 서울예고를 함께 다닌 친구이기도 하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전소정, DMZ의 자연을 비추다 

전소정 작가의 '그린 스크린. [사진 바라캇컨템포러리]

전소정 작가의 '그린 스크린. [사진 바라캇컨템포러리]

서울 코엑스 옥외 스크린에서 매일 선보이고 있는 전소정 작가의 작품. [사진 바라캇컨템포러리]

서울 코엑스 옥외 스크린에서 매일 선보이고 있는 전소정 작가의 작품. [사진 바라캇컨템포러리]

현재 전소정의 작품 '그린 스크린(Green Screen)'은 서울· 도쿄· 런던 세 도심의 옥외 스크린에서 매일 오후 8시 21분에 하루 한 번씩 선보이고 있다. 지난 5월 세계적인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디지털 작품을 선보인 이 프로그램은 영국 기획자 조셉 오코너가 추진한 글로벌 공공 미술 프로젝트다. 서울에선 코엑스 K-팝 스퀘어 스크린에서 선보이고 있으며, 한국 작가 참여는 전소정이 처음이다.

지난 몇 달간 DMZ 경계를 따라 촬영된 '그린 스크린'은 사람이 살지 않는 중립적인 장소 DMZ를 고스란히 비춘다. 전소정은 지난 6월 한국군에 의해 보호되는 민간인 통제구역 인근에 허가를 받고 들어가 60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많은 후보 작가 중 전소정을 낙점한 조셉 오코너 CIRCA 예술감독은 "전소정의 작품은 분열이 심화하는 동시대 국제사회에서 갈등과 지리적 분리의 경계를 극복하는 예술의 잠재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전소정은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했다. 2018년 제18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받았다. 상영은 이달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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