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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위반' 연구위원, "北 공작원은 유령…짜맞추기 수사"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국내에 들어온 북한 공작원을 만나 정보를 제공한 등의 혐의로 기소된 민간단체 연구위원이 첫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양은상 부장판사는 18일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 찬양고무 등) 혐의로 기소된 이정훈(57) 4·27시대 연구원 연구위원의 1차 공판을 열었다.

“공안당국 짜 맞추기 수사” 주장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 낭독이 끝난 뒤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은 이 위원은 기소 내용을 전부 부인했다. 그는 “법정에서 검찰 측 증거기록을 받았을 때 공안당국의 짜 맞추기 수사와 증거조작을 확인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국보법이 만든 비상식적 체제가 작동하는 이상 공안당국의 조작 유혹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또 “국정원은 4년간 저와 동료들을 상시 미행·녹취했지만, 그들이 고대하던 지하조직과 간첩 활동은 없었다”며 “소모임 정책토론 등 진보 활동과 합법적 통일 운동뿐”이라고 했다.

이 위원은 자신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유지 의지와 관련 있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공안당국이 4년가량 수사해 뚜렷한 증거를 못 찾았다면 수사를 폐기했어야 한다”며 “일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은 현재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수사권을 유지하려는 국정원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씨가 2017년 4월 일본계 페루인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고니시’와 국내에서 4차례 만났고, 국내 진보 진영의 동향을 보고하고 암호화 통신 프로그램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또 웹하드를 통해 북한 대남공작기구와 암호화된 지령문을 받고 보고문을 발송한 혐의도 받는다.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적극 찬양을 동조하는 책 2권을 제작·판매한 혐의도 있다.

이 위원은 앞서 2006년 '일심회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징역 3년을 복역한 뒤 2009년 출소했다. 이 사건은 이 위원을 포함한 5명이 북한에 남한의 내부 동향을 보고했다가 국정원에 적발된 사건이다.

지난 5월 국가정보원과 서울경찰청은 합동 수사를 통해 이 위원을 체포하고 자택을 압수수색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양동훈)는 6월 이 위원을 재판에 넘겼다.

이날 1차 공판에 맞춰 시민단체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등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회견에서 “수사기관이 이 위원이 만났다고 주장하는 북한 공작원 ‘고니시’는 정체가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그의 정체가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위원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찬양 고무죄에 대해서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며 “누구에게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자유가 있고, 북한 사회를 좋게 보든 안 좋게 보든 그 판단은 국민의 몫이지 법률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9월 1일과 15일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쟁점을 정리한 뒤 10월부터 증인신문에 돌입하겠다고 향후 일정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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