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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고가 의류관리기보다 당신 옷 잘 지켜줄 옷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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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45) 

환경에 관한 관심이 필수가 된 요즘, 옷의 생산과 폐기과정으로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옷을 덜 사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다. [사진 unsplash]

환경에 관한 관심이 필수가 된 요즘, 옷의 생산과 폐기과정으로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옷을 덜 사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다. [사진 unsplash]

“1년에 옷을 몇 벌이나 사세요?”

살 때는 옷 하나하나 고민하고 결제했겠지만, 저렇게 물어보면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친김에 세어보니 올해 구매한 옷이 양말까지 포함해 20벌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추세라면 올해는 40벌 정도 사는 꼴이다. 그럼 나는 옷을 많이 사는 편일까? 미국인의 경우 1년에 68벌의 옷을 산다고 한다. 40벌이면 평균 이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매우 많다고 느낄 수도 있다.

패스트패션이 등장한 이후 옷의 생산과 소비가 비약적으로 늘어 전 세계 인구가 1년에 구매하는 옷이 800억 벌에 이른다고 한다. 환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옷의 생산과 폐기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내가 옷을 덜 사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심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내가 가진 옷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때는 내방 주인이 옷인지 나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행거에 수북이 걸린 옷(대부분 1년에 1번도 입지 않는다)을 보면 마음이 답답했다.

버려도 버려도 옷이 줄지 않는다면? 옷을 그만 사라. [사진 unsplash]

버려도 버려도 옷이 줄지 않는다면? 옷을 그만 사라. [사진 unsplash]

미니멀리즘 같이 그럴싸한 단어를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옷을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정리전문가 곤도 마리에씨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말에 따라 입지 않는 옷들을 몇 차례 버렸다. 버렸으니 당연히 옷이 줄어야 하는데, 새로 사는 옷이 있으니 결국 총량은 비슷했다. 1년간 옷을 사지 않았다는 블로거의 글을 보고 감명받아 나도 옷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지만 결국 작심삼일이었다.

옷이 많다 보니 계절별로 옷을 꺼내고 정리하는 것도 큰일이다. 옷을 보관하는 데는 지퍼가 달린 패브릭 리빙 박스가 가장 유용한 것 같다. 온라인이나 다이소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비싸지 않다. 지금 날씨에 맞는 옷은 옷장에 여유롭게 두고, 지나간 계절 옷을 리빙 박스에 보관한다. 다만 직사광선이 없고 서늘하며 습하지 않은 곳에 보관해야 한다. 자칫 옷이 상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여름옷을 보관하는 박스를 창고 구석에 두었다가 몇 년 뒤에 발견한 적도 있다. 그 옷들을 몇 년 입지 못했는데, 사실 없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그 정도면 버려도 되는 거다. 그러나 막상 버리려고 하나씩 꺼내 보면 또 쓸만한 것 같아 남겨두게 된다.

지난 계절의 옷은 리빙박스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사진 아마존]

지난 계절의 옷은 리빙박스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사진 아마존]

잘 버리지 못하다 보니 10년이 넘은 옷도 많다. 코트나 바지 같은 경우 보관을 잘하면 오래도록 잘 입을 수 있다. 셔츠나 티셔츠 같은 옷이 오염되거나 변형이 잘 된다. 맞춤 제작한 듯 몸에 잘 맞고, 입으면 옷태가 좋은 흰색 셔츠가 있었는데, 그만 관리를 잘못해 1년도 되지 않아 목 주변이 누렇게 변하고 말았다. 세탁소에 가서 특수 약품을 사용한 세탁도 받아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된 탓이라고 한다.

아끼는 옷이 변형돼 버리게 되는 경우가 가장 아깝다. 옷은 많아도 아끼는 옷은 몇 개 안 되고, 이미 구매한 지 오래돼 다시 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끼는 옷은 보관에 신경을 쓴다. 옷 보관을 위한 아이템은 생각보다 많다. 아주 고가의 물건도 있는데, 우리 집 가전제품 중 가장 자주 사용하는 의류관리기다. 국내 가전 브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 현재는 신발 관리기까지 출시될 정도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옷을 걸어두면 강하게 흔들어 먼지를 털어내고, 옷에 스팀을 쐬어주는 원리다. 세탁기에 버금가는 가격이라 구매를 고민했으나, 캐시미어 니트같이 일반 세탁이 어려운 옷에 좋다는 리뷰를 보고 구매했다.

가장 기대했던 기능은 생활 주름이 펴진다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은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 같다. 미세먼지나 바이러스 제거 같은 기능도 있다고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크게 기대하지 않고 구매했다. 가장 좋은 점은 코트나 바지와 같이 입을 때마다 세탁하기 어려운 옷을 넣어두면, 다시 입을 때 새로 세탁한 옷을 입는 것 같이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옷을 정리해야 할 때 의류관리기는 매우 유용하다.

의류관리기는 유용하지만 너무 기대하면 실망한다. [사진 LG전자]

의류관리기는 유용하지만 너무 기대하면 실망한다. [사진 LG전자]

세탁소에 맡기면 옷마다 비닐을 씌워서 준다. 예전에는 비닐이 씌워진 채로 보관했다. 먼지 쌓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서다. 셔츠는 반드시 비닐을 벗겨서 보관해야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옷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습기이기에 될 수 있는 대로 옷장마다 제습제를 넣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티셔츠와 니트 같은 옷을 보관할 때는 가급적 옷걸이에 걸지 않고 접어서 둔다. 아무리 좋은 원단을 써도 목이 쉽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셔츠의 경우는 접어두면 주름이 생기기 때문에 옷걸이에 걸어둔다. 얇은 철사 옷걸이보다는 어깨 부분이 넓은 옷걸이를 쓴다. 바지도 전용 옷걸이에 반으로 접어서 걸어두면 부피를 차지하지 않고 여유롭게 보관할 수 있다. 주변에 옷걸이를 돈 주고 사본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고가의 의류 관리기보다 좋은 옷걸이와 제습제가 당신의 옷을 훨씬 더 잘 지켜줄 것이다.

정리의 달인으로 유명해진 곤도 마리에. [사진 넷플릭스]

정리의 달인으로 유명해진 곤도 마리에. [사진 넷플릭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던 곤도 마리에 씨는 유명해진 뒤 본인의 쇼핑몰을 설립했다.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던 그녀가 고가의 인테리어 소품 등을 판매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중 ‘버리게 해서 그 빈자리를 자신의 쇼핑몰 제품으로 채우려는 자본주의의 화신’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왠지 나한테 하는 충고 같다. 더는 옷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옷을 보관하기 위한 물건을 또 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무시무시한 마케팅 앞에 또 무너지고 말았다. 아마 평생 그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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