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심판원 "편법처리 불체자 인건비도 필요경비로 인정하라"

중앙일보

입력 2021.08.18 10:39

업데이트 2021.08.18 10:41

조그만 플라스틱 사출 공장을 운영하는 A씨는 2014년부터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회사를 꾸려갔다. 불법인 것을 알았지만, A씨처럼 소규모의 이른바 '3D업종'에서 일할 한국인을 찾는 게 힘들어 불가피하게 채용했다. 영세 업체의 사정상 높은 임금을 줄 형편도 안됐다.

A씨는 이들에게 매달 현금으로 월급을 줬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불법체류가 적발될까 봐 자금 흐름이 남는 ‘원천 징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이들의 4대 보험 가입을 챙기지 않아도 돼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지난 3월 오후 경기 부천시 춘의동 종합운동장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경기도는 경기도내 1인 이상 외국인 노동자(불법고용 외국인 포함)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 외국인 포함)에게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다. [뉴스1]

지난 3월 오후 경기 부천시 춘의동 종합운동장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경기도는 경기도내 1인 이상 외국인 노동자(불법고용 외국인 포함)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 외국인 포함)에게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다. [뉴스1]

그러면서 A씨는 이들에게 지급한 임금을 ‘필요경비’로 처리하기 위해 편법을 썼다. 인건비를 거래처로부터 가공의 세금계산서를 받아 비용으로 처리하는 식으로 종합소득세를 신고했다. 이를 사업상 비용으로 인정받으면 순이익이 줄어드는 만큼 세금을 줄일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를 수상히 여긴 과세당국에 2019년 결국 덜미를 잡혔다. 과세당국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지급한 돈을 필요경비로 인정하지 않고, 종합소득세를 더 내야 한다며 A씨에게 경정고지했다.

이에 A씨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불법 체류자라서 정상적인 처리를 못 하고 불가피하게 변칙적인 방법으로 비용처리 하게 된 것”이라며 조세심판원에 지난해 심판을 청구(경정청구)했다.

18일 조세심판원이 최근 내린 심판결정에 따르면 A씨는 절차상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 다만 A씨는 “해당 인건비는 실제로 지급됐으므로 이를 필요경비로 인정해야 한다. 수익을 내기 어려운 영세 업체의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여권 사본과 임금지급 확인서, 현금인출 명세서 등을 증빙 자료로 제출했다. 과세 당국은 이를 “임금 지급을 명확히 증빙할 수 있는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봤지만, 조세심판원의 판단은 달랐다.

조세심판원은 “A씨가 제출한 자료와 사업 업태, 규모 등을 고려하면 A씨가 불법 체류자 인건비를 현금으로 지급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인건비가 특정 시점에 은행에서 현금 인출한 게 확인되는 점 등을 종합하면 해당 금액을 필요경비로 보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영세업체의 불가피한 사정을 인정하고 A씨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소득세법 시행령’ 제208조가 근거가 됐다. 사업과 관련한 금융거래는 원칙적으로 ‘사업용 계좌’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금융거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신용불량자, 외국인 불법 체류자, 일용근로자 등과의 거래에서는 예외를 둔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조세심판원은 “과세 당국이 A씨의 경정청구를 거부한 처분은 잘못이 있다”며 A씨 주장의 일부를 받아들여 과세 당국에 과세표준 및 세액을 다시 결정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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