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가지, 선조들은 어떻게 먹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1.08.18 10:30

업데이트 2021.08.31 10:49

‘뭐 해 먹지?’
반짝반짝 윤기 나는 보라색 가지를 도마 위에 올리는 순간, 고민에 빠진다. 밥상에 흔하게 올라오던 가지나물은 패스. 어쩌다 보니 가지나물보다 더 흔해진 어향가지 볶음과 가지 파르미자나도 패스다. 입맛 없는 여름철에 어울릴, 개운하면서 색다른 무언가가 먹고 싶은데.

인터넷에는 가지나물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가 떠돈다. “우리나라가 가지를 나물로만 먹어와서” 사람들이 가지의 참맛을 모른다는 이야기다. 기름에 튀기고 볶은 가지를 먹고 가지 맛에 눈을 떴다는 사람이 많다. 박찬일 셰프도 책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에서 “송구하게도 다른 나라 요리를 먹어보고 나서야 가지 맛을 알았다”고 고백한다. 그 기분 알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제철을 맞은 가지. 가지에는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이 풍부하다. 안토시아닌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혈액순환을 증진하는 기능이 있다. 사진 pixabay

제철을 맞은 가지. 가지에는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이 풍부하다. 안토시아닌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혈액순환을 증진하는 기능이 있다. 사진 pixabay

우리나라는 웬만한 채소를 나물로 먹어왔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인 탓에 산과 들에서 나는 채소는 중요한 식재료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어온 채소와 나물 문화에 관한 역사를 다룬 『채소의 인문학』에 따르면 “쌀을 중심으로 한 식사에서 출발해 다양한 채소를 활용한 나물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렇다고 선조들이 가지를 나물로만 먹은 건 아니다. 평범한 서민의 밥상까지야 알 수 없지만, 고조리서 속의 가지요리는 지금보다야 다양해 보인다. 영조 때 의관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1766년)』에는 고기로 속을 채워서 쪄먹는 ‘가지선’, 기름 두른 솥에 소금을 넣고 가지를 볶고 식혀서 마른 겨잣가루에 고루 섞은 후 항아리에 보관해 먹는 ‘개말가법’ 같은 요리가 나온다. 고기를 양념해 꼬챙이에 꽂아 구워내는 적(炙)을 만들 듯이, 가지를 적처럼 꿰어 간장과 기름, 밀가루를 발라 굽는 ‘가지누르미’도 있다. 1670년경 안동 장씨 장계향이 쓴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 나온다. 볶고 굽고 찌는 우리 가지 음식들이다.

 『음식디미방』`음식의 맛을 내는 비법`이란 뜻을 가진 1670년께 경북 영양지방에 살았던 사대부집 안주인 정씨가 한글로 쓴 요리책. 사진 중앙일보

『음식디미방』`음식의 맛을 내는 비법`이란 뜻을 가진 1670년께 경북 영양지방에 살았던 사대부집 안주인 정씨가 한글로 쓴 요리책. 사진 중앙일보

물론 지금 알고 있는 볶음이나 구이와는 조금 다르다. 반가 음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식을 선보이는 한식당 ‘수운’의 임대한 헤드셰프는 “기름이 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조선 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기름에 튀긴 음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대신 찜 요리와 장아찌, 나물이 많다. 구이는 가지를 꼬챙이에 꽂아 기름에 지지는 식인데, 우리가 아는 전에 가깝다. 각 나라의 음식 특징이 있듯, 담백하고 개운하게 먹는 게 우리나라의 특징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맞다, 우리는 개운한 음식을 선호한다. 느끼한 음식을 만들면서도 느끼하지 않기 위한 조리법을 고민하는 민족이다. 개운한 맛을 말하면서 김치를 빼놓을 수 없는데, 고조리서에는 가지김치 담그는 법도 나온다. 가지는 오이나 무와 함께 오래전부터 선조들이 식재료로 사용해온 채소다. 특히 오이와 함께 김치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여름철과 겨울철 김치 담그는 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증보산림경제』에 나온 여름 가지김치는, 물을 끓여 소금을 묽게 타서 식히고, 마늘즙을 소금물에 섞어서 가지가 잠기도록 붓는다. 이때 가지 배를 세 쪽으로 쪼개서 마늘 조각을 끼워 담그지 않는다. 가지 물이 새어나가 맛이 없어서다. 겨울에는 첫서리를 맞은 가지를 쓴다. 맛이 달아서다. 끓인 물을 식혀서 소금으로 간한 후 가지를 넣은 항아리에 붓는다. 반들반들한 돌로 누른 후 볏짚으로 덮는다. 항아리 주둥이는 밀봉한 후 뚜껑을 덮어 땅에 묻었다가 섣달에 꺼내 먹는다. 먹을 때는 가지를 쪼개서 조청을 뿌려 먹는데, 깔끔하고 맛있다고 나온다. 만약 붉은색을 내고 싶으면 맨드라미 꽃을 넣으라고 돼 있다.

나물도 여름과 겨울 조리법이 따로 있다. 위관 이용기가 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36)』에 나온다. 여름 나물은 가지를 찐 후에 양념으로 무쳐내는, 흔히 아는 방법이다. 겨울에는 쪼개어 말린 가지를 물에 불려 물기를 짠 다음에, 고기를 다져 넣고 볶는다. “제철에 먹는 것보다 더 맛이 난다”고 한다. 말려서 단맛이 한층 살아난 가지에 고기까지 함께 볶으니 감칠맛이 좋을 수밖에.

계절별로 조리법이 다른 것도 놀라운데, 고조리서는 가지 재배법부터 품종에 관한 정보까지 다루고 있다. 철이 아닐 때도 먹을 수 있게 가지를 말려 보관하는 법도 있고, 절임도 여러 가지다. 여름 가지를 술지게미와 소금에 절이거나, 늦가을 가지를 찧은 마늘과 소금에 절여 항아리에 보관하거나, 참기름과 간장에 가지를 구워 식초와 마늘즙에 버무리는 식이다. 상당한 정성과 노고다.

이쯤 찾고 나니 조금 짐작이 간다. 엄마가, 또는 엄마의 엄마가 가지를 나물로만 만든 이유 말이다. 일단 가장 익숙한 조리법이다. 몇 날 며칠 품을 들이지 않고, 또 별다른 재료를 추가하지 않아도 반찬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물이 결코 만들기 쉬운 음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채소의 인문학』을 쓴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는 “날로 먹는 채소 샐러드라면 모를까, 식감을 잘 살리며 채소를 데치는 과정은 의외로 까다롭다. 오히려 볶는 게 더 간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지요리의 기본은 수분제거다. 수분을 어떻게 제거하느냐에 따라 식감이 달라진다. 사진 unsplsah

가지요리의 기본은 수분제거다. 수분을 어떻게 제거하느냐에 따라 식감이 달라진다. 사진 unsplsah

가지는 요리 초보자에게 더 어려운 재료다. 가지는 93~94%가 수분이다. 물이 많아 간을 맞추기 어렵다. 튀기거나 볶는 일도 쉽지 않지만, 데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차, 하는 순간에 곤죽이 된다. 임 셰프는 “끓는 물에 가지를 넣고 30초를 센다. 더 식감을 원할 때는 15~20초”라고 설명한다. 영양 면에서는 데치는 것보다 찌는 것이 좋다. 영양과 항산화 효과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찜통에 넣고 센불에서 3분 이상 찐다.

소금에 절여서 수분을 빼는 방법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오븐에 구워도 된다. 가지의 껍질이 오그라져서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180도에서 10분~15분 정도 굽는다. 뭐든 간에, 가지 손질의 기본은 수분 제거다. 거 참 만들기 까다로운 가지나물이다. 어릴 때 가지나물 맛있게 먹은 사람이라면, 엄마의 요리 솜씨부터 칭찬해주는 게 어떨는지.

마지막으로, 선조들이 제안하는 가지 먹는 팁을 공유해본다. 선조들은 가지와 궁합이 좋은 재료로 굴을 말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조선 후기 문인 담정 김려가 1811년 쓴 연작시 『만선와잉고』 중에 ‘은가(銀茄)’라는 시다. 흰색 물가지로 만든 섞박지에 관한 시다. “통통하고 흰 은색 물가지에는, 굴젓이 들어가야 제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굴과 가지의 궁합이 최고의 조합이라는 말은 『증보산림경제』 중에 ‘가지술지게미법’을 설명하는 부분에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가지는 나물로 만들든 산적으로 만들든 모두 맛있다. 날것으로 먹으려면 반드시 오래 묵은 굴젓을 위에 얹어 먹으면 아주 좋은 술안주가 된다.”

맛보지도 않았는데 진실의 미간이 먼저 반응한다. 맛집 정보가 넘쳐나고 미식을 추구하는 시대지만, 가지의 참맛을 즐겨온 건 우리보다 선조들 같다. 그나저나 굴이 제철이 아니라서, 어디서 굴젓이라도 구해봐야겠다. 혹시 이 조합을 이미 시도해본 분이 있다면,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못다한 가지 이야기
1.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 가지는 붉은색 계열, 흰색 계열, 청색 계열 등의 색깔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품종은 주로 물가지(水茄)와 산가지(山茄)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물가지는 산가지에 비해 달고 물이 많다. 날것으로 먹거나 해를 넘기지 않는 김치를 만들 때 썼다고 한다. 반면 수분이 적은 산가지는 저장용으로 사용했다. 장에 절여 장아찌를 만들거나 재(灰)에 묻어 저장했다가 씻어내고 이듬해 활용했다고 나온다.

지금은 길고 진한 보라색을 띤 가지가 주로 재배된다. 익혀 먹는 가지는 크고 과육이 연한 것을, 절임용이나 튀김과 부침처럼 모양을 살리는 요리에는 과육이 단단한 것이 좋다. 전체적으로는 색이 선명하며 윤기가 있고 매끄러운 것이 좋다. 꼭지 부분이 얇고 아래쪽이 두꺼운 것보다 전반적으로 늘씬하고 굵기가 일정한 것이 좋다. 꼭지는 수확한 시기를 나타낸다. 꼭지가 말라 있다면 딴 지 오래된 것이다.

2. 가지는 날이 덥고 햇볕이 좋은 7~8월부터 10월 서리가 내릴 때까지 수확할 수 있다. 여름 가지가 부드럽다면, 가을 가지는 단단하고 맛이 더 달다. 그런데 가지는 고온성 작물이라 냉장고에서 오래 보관하기 어렵다. 가을 가지를 절이거나 해를 넘겨 먹는 김치로 만들던 선조들 역시 가지 저장법을 기록해뒀다. 가장 오래된 농서이자 고조리서 『산가요록(1450년경)』에 따르면 뽕나무 재를 항아리에 담고, 가지는 서리가 내리기 전에 따서 꼭지를 밑으로 하여 반 이상 묻어두면, 그 색깔이 처음과 같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뽕나무 재도, 가지를 담을 항아리도 구하기 어려운 지금은 키친타올을 물에 살짝 적신 후 꼭지 부분을 감싸 냉장고에 보관하면 2일 정도는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더 오래 냉장하면 냉해를 입어 갈색으로 변하기 쉽다. 쓰다 남은 가지는 공기와 접촉하지 않게 랩으로 밀봉해서 냉장 보관한다.

3. 가지에는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이 풍부하다. 보라색과 빨간색, 파란색을 내는 식물 성분이다. 안토시아닌은 몸의 항산화 작용을 막아주며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혈액순환을 증진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가지는 수분이 많고 칼로리가 낮아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기름을 흠뻑 먹고 양념을 흡수해버린 가지요리는 별개다. 가지 속은 스펀지 같다. 세포와 세포 사이에 미세한 공기주머니가 있는데, 요리하면 조미료나 소스는 물론이고 기름까지 쉽게 흡수하기 때문이다.

이세라 쿠킹객원기자 cooking@joongang.co.kr

도움말= 한식당 수운 임대한 헤드셰프
참고자료=『채소의 인문학』 『오늘 메뉴는 제철음식입니다』 『조선시대 한시(漢詩)에 나타난 전통음식문화 연구』, 『조리조건에 따른 가지의 영양 및 항산화 특성 연구』, 한국전통지식포털 제공 『산가요록』 『음식디미방』 『증보산림경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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