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반발 '인권백서' 발간 예산, 한해 사이 4분의1토막났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18 10:13

업데이트 2021.08.18 12:4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제1차 조선인민군 지휘관·정치일꾼 강습회를 주재 중인 모습.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제1차 조선인민군 지휘관·정치일꾼 강습회를 주재 중인 모습. 뉴스1

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통일연구원이 26년동안 매해 발간하던 북한 인권 백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백서 발간 예산 6900만원→1500만원
국민의힘 “올해 연구계획에서 아예 빠져”
26년째 매해 발간해온 인권 백서
탈북민 증언 통한 실태 전달 목적
북한은 "탈북자 쓰레기 배설물" 반발
내부적으로 “매번 비슷비슷한 증언
뭐하러 매해 발간하나” 회의론
“文 정부 노골적 ‘北 인권 지우기’” 비판
통일硏 "수시예산 활용해 발간하기로
백서 발간 준비작업 중단한 적 없다"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통일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북한 인권 백서 관련 예산ㆍ결산 자료에 따르면, 북한 인권 백서 발간을 위한 예산은 지난해 6903만 2596원에서 올해 1580만 2336원으로 줄었다. 약 4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백서 발간을 위한 예산이 지난 10년간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2013년도에는 1억원대였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선 2014년도 약 8400만원, 2015년 약 7500만원, 2016년 약 6100만원 수준으로 서서히 감소했다.

하지만 이를 고려해도 올해 예산 감소 폭은 지나치게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지난해까지는 6000만원대를 유지하다 1500만원대로 갑자기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정책위원회“통일연구원이 지난해에 ‘2021년 연구 기본 계획’을 수립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북한 인권 백서 발간 사업을 제외했다”고 밝혔다. 2022년에 백서를 발간하려면 올해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데, 처음부터 연구 계획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아예 관련 사업 코드가 없다는 것이다.

백서 발간을 위한 예산 편성은 사실상 두개 연도에 나눠 이뤄진다. 예를 들어 2021년도 백서는 2020년도 예산 중 일부를 연구비용으로 쓰고, 2021년도 예산 중 일부를 발간비용으로 쓰게 된다.

이에 대해 지성호 의원실 측은 "올해 편성된 약 1500만원은 지난 7월 나온 2021년도 백서의 발간비용으로 이미 소진이 됐다. 애초에 2022년 백서 발간을 위한 연구비용은 아예 책정되지 않은 셈"이라고 밝혔다. 또 "이런 문제점을 발견한 뒤 연구원 측에 확인을 요청하니 '2022년 백서 발간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회신해왔다"며 "그간 백서 관련 예산 편성 및 집행 사례들을 봤을 때 이런 식으로 운용한 적은 전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2021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 표지

2021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 표지

실제 한 외교 소식통은 “코로나19 여파로 백서 발간을 위한 면접에 참여할 탈북민 숫자가 줄어든 데다 ‘매번 비슷비슷한 내용이 백서에 담기기 때문에 의미 있는 변화가 없는데 매해 내야 하느냐’는 회의론이 통일연구원 내부에서 있었다”고 전했다.
연구원 사정에 밝은 관계자도 “일각에서 백서 자체를 그만 내자는 의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발간 시기를 연말로 늦추거나 격년으로 발간하자는 논의가 이뤄진 바 있다”고 귀뜸했다.

지성호 의원은 이에 대해 “북한의 인권침해 실상을 알리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도구인 북한 인권 백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나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다만 이에 대해 통일연구원 측은 한때 격년 발간을 검토한 것은 맞지만, 결국 기존처럼 매년 내기로 내부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현재 예산상으로는 내년도 백서 발간을 위한 연구비용이 책정되지 않은 데 대해 연구원 관계자는 "숫자상으로는 그렇지만, 정규 예산에 미처 반영이 안된 부분은 수시 예산을 활용해 보충할 수 있다"며 "실제 이를 활용해 지금도 내년도 백서 발간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백서 발간 작업이 중단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원 측은 올해 국회에 제출할 2022년도 예산안에 내년도 백서 발간 예산을 제대로 포함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통상 매해 6월 전후이던 백서 발간 시기는 연말로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가 작성한 '2020회계연도 결산 100대 문제사업' 보고서 중 북한 인권 백서 관련 부분.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가 작성한 '2020회계연도 결산 100대 문제사업' 보고서 중 북한 인권 백서 관련 부분.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실.

북한 인권 백서는 1996년부터 매년 발간됐다. 탈북민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내 인권 상황을 생생히 알리는 게 목적이다. 생명권, 강제노동, 표현의 자유, 여성 및 아동 인권 등 분야 별로 정리해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펴낸다.

백서는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비롯, 유엔의 각종 북한 인권 실태조사에서도 참고 자료로 비중 있게 인용됐다. 국제사회의 권위를 인정받은 연구기록이란 뜻이다.

백서에는 정치범 수용소, 납북자 문제 등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도 포함되는데, 이 때문에 북한은 크게 반발해왔다. 지난해 5월엔 백서 발간 직후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탈북자 쓰레기들이 싸지른 배설물들을 모아 도발 책자나 만들었다”며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냈다”고 비난했다.

결국 백서 발간 예산이 대폭 삭감된 건 이런 북한의 반응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매번 비슷한 내용이 들어가니 매해 낼 필요 없다’는 문제 제기는 애초에 북한의 인권 실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아 비슷한 증언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근본적 문제에는 눈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한편 백서 발간 부수도 문재인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줄었다. 국ㆍ영문본을 합쳐 2500부(2018년) → 2000부(2019년) → 1800부(2020년) 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유관 기관에 배포한 부수도 702부(2018년) → 537부(2019년) → 484부(2020년)으로 함께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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