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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서 튀어나와 "내 다리 내놔"…등골 오싹 공포물 레전드 [더오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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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66)

지금의 눈으로는 '전설의 고향' 화면이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이와 같은 풍요로운 이야기 자원 속의 의미 있는 작업이 많았으면 한다. [사진 KBS]

지금의 눈으로는 '전설의 고향' 화면이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이와 같은 풍요로운 이야기 자원 속의 의미 있는 작업이 많았으면 한다. [사진 KBS]

어렸을 적 여름마다 ‘납량특집’ 공포 콘텐츠가 TV에 선보이곤 했다. 그중 단연 무서웠던 건 ‘전설의 고향’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름 끼쳤던 장면은 무덤에서 튀어나온 시체가 “내 다리 내놔”하고 쫓아오는 부분이었다. 배우 이광기의 신인 시절 모습으로 더 많이 회자하는 ‘덕대골’ 에피소드이다. 그런데 이광기의 출연작은 1996년에 방영되었던 제2기 시리즈에 해당하고 본래 이 시리즈의 시작은 1977년이다. 1기 시리즈는 그 이후 1989년까지 12년 동안 인기를 끌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1기 시리즈인 1980년 4월 15일 방영분이다. 그러나 1기 시리즈는 방송 테이프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방영되었던 목록만 겨우 찾았다. 그때 그 시체 역할 하셨던 분은 지금 뭘 하고 계실까.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비슷한 내용의 자료가 6편 정도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그중 ‘시체로 변신한 동자삼(童子蔘)’이라는 제목으로 채록된 설화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구연하여 있는 자료를 최대한 살렸으며, 알아보기 쉽도록 간단하게 윤문만 했다.

옛날에 한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이 아주 중한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했다. 어느날 시주승이 찾아왔을 때 부인은 쌀 한 됫박을 주면서 남편을 살릴 방법이 없겠느냐 물었다. 대사는 어딜 가면 이제 막 새로 만든 초분이 있을 텐데, 그걸 뜯고 시신의 다리 한 짝을 떼어다가 삶아 먹느면 낫는다고 하였다.

부인은 그날밤 당장 그곳을 찾아갔다. 마침 하늘에선 뇌성벽력이 우르릉 와르릉 하며 비가 폭포수처럼 퍼붓고 번개가 화아짝 화짝 쳐댔다. 부인은 번쩍이는 번갯불에 길을 분간하며 초분 앞에 당도하였다. 과연 이제 막 만들어놓은 듯한 초분이 있어 그걸 헐어서는 준비해 간 잘 드는 칼로 시체의 다리 한 쪽을 잘라냈다. 여전히 비는 퍼붓고 천둥이 우르릉 번개가 화안짝 하는 와중에 그걸 바구니에 넣어 이고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내 다리 다고, 내 다리 다고” 하면서 한쪽 다리로만 겅중겅중 뛰며 시체가 막 쫓아오는 것이었다.

부인은 헐레벌떡 집까지 뛰어가서는 얼른 대문을 걸어 잠그고 물이 끓는 솥에 다리를 던져 넣었다. 그렇게 시신의 다리를 포옥폭 삶아서 남편에게 주니, 남편은 ”이 사람아 이런 맛있는 것은 워디서 갖고 왔나?”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다리 잃은 시신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러니까 사흘 내내 밤마다 찾아와서는 대문 앞에서 “내 다리 다오. 내 다리 다오” 하고 울부짖더니 그 이후론 사라졌고 남편은 병이 씻은듯이 나았다. 이 이야기는 부인이 남편에게 지극정성으로 잘 하니까 산신령이 동자삼을 갖다가 먹을 수 있도록 그렇게 했다는 말이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 4-4, 780-782, 오천면 설화59

보다 보니, 아니 산신령이 부인의 지극정성에 감동했으면, 그리고 남편의 병은 동자삼을 먹으면 나을 일이었다면 산신령이 그냥 동자삼을 부부에게 던져주었으면 될 일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야기에서는 늘 뭔가 그렇게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삼 이름부터가 어린아이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동자삼이다. 특이한 모양새와 오래 묵었다는 특이성까지 곁들여 영험함을 간직한 삼이라면 거저 얻을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다. 이야기에서는 어떤 인물이 충분히 마땅한 자질을 갖추었더라도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보단 그걸 얻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동자삼 관련한 이야기로는 병든 부모를 낫게 하기 위해 어린 아들을 삶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게 알고 보니 동자삼이었다는 것이고, 아들은 멀쩡하게 공부하러 잘 다니고 있었다. 둘 중 어떤 이야기가 진정 공포스러운 것인지 알 수 없다. 소중한 가족이 중병에 들어 어떤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 무슨 짓을 해서든 살리고야 말겠다는 의지 앞에 말도 안 되는 주문이 떨어진다. 묻힌 지 며칠 안 된 시체의 다리를 잘라오라거나 심지어 어린 아들을 삶아 먹여야 한다고 한다. 심각한 병에 걸려 치료가 어려울 때 뭐가 좋단다, 어떻게 해야 낫는다더라, 온갖 떠도는 이야기들은 환자의 가족을 혼란에 빠뜨린다. 구하기 어렵고 가격도 비싼 희귀한 버섯이니 약초들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아마도 비바람 치는 밤 초분을 헤치고 시체의 다리를 자르는 것과도 같은 흔들림과 떨림, 뭐 하는 건가 싶은 난감함과 동시에 과연 이걸로 나을 수는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작동할 것이다. 그런데도 부인은 극한의 공포를 무릅쓰고 그 일을 해냈다. “아이는 또 낳으면 되지” 하는 대사는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만 이야기 속 부부는 그걸 해낸다. 물론 그냥 쉽게 해버리지는 못한다. 망설이고 주저하다 눈 질끈 감고 행하는 일이다.

이전 시대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바탕에 두고 그걸 강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텍스트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기는 어려울 수 있겠다. 그런데 그건 지금 이런저런 사정을 다 알게 된 성인이 되어 하게 된 생각이고,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당긴 채 오돌오돌 떨며 보던, 어디서 삐걱 소리만 나도 “꺅” 소리 지르고 놀라며 식은땀을 흘리던 이야기는 덕대골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실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예쁘장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는 어두운 부엌 한구석에서 ‘쓱~ 슥’ 칼을 갈던 모습이고, ‘으으으으~~’ 귀곡성이 울리며 원님 혼자 앉아 있던 방의 촛불이 휙 꺼지고 방문이 덜컹거릴 때 머리 풀어헤치고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날 것을 이미 알고 기대하면서도 무서워서 손가락 사이로 두 눈을 빠끔거리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다.

순진한 이야기에 순진하게 놀라던 그 순진한 시절이 그리운 건지, 그때의 순진하던 ‘나’가 그리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들은 변하였으며 이야기도 많은 부분 겉모습이 달라졌다. 지금 세상에서는 슈퍼히어로가 지구를 구하고, 좀비와 뱀파이어가 인간을 위협하며, 재벌가 막장 스토리가 멀쩡한 사람도 죽였다 살렸다 하면서 시즌을 이어간다. 이야기의 외양은 달라졌을지언정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향유하며 살아간다.

지금 세상에서는 슈퍼히어로가 지구를 구하고, 좀비와 뱀파이어가 인간을 위협한다. 이야기의 외양은 달라졌을지언정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향유하며 살아간다. [사진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스틸]

지금 세상에서는 슈퍼히어로가 지구를 구하고, 좀비와 뱀파이어가 인간을 위협한다. 이야기의 외양은 달라졌을지언정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향유하며 살아간다. [사진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스틸]

천오백 살은 먹었을 토르와 로키 형제가 신화 세계에서 튀어나와 슈퍼히어로와 함께 활약하는 세상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백설공주’, 좀 나아가 ‘101마리 달마시안’까지도 끊임없이 소환된다(‘말레피센트’, ‘스노우화이트 앤 더 헌츠맨’, ’크루엘라’ 같은 작품을 말하는 것이다. ‘인어공주’도 곧 실사화된다는 소문이 있다). ‘전설의 고향’속의, 남편을 위해서는 시체 다리도 잘라내 오던 용감한 부인이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원님이 몇 명씩 죽어 나가든 말든 피투성이 소복 착장으로 귀곡성을 울리며 나타나던 처녀 귀신이나 요망한 눈빛으로 인간을 홀리던 꼬리 아홉 달린 여우는 지금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소환될 수 있을까.

웹툰 세계에서 그렇게 우리 이야기 전통 속에서 소재를 찾아 새롭게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많이 눈에 띈다. 반가운 일이다. 어쩌면 ‘이야기’가 사람 홀리는 구미호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꺼이 홀림을 당한 채 이야기 세상 속에서 반짝이는 삶의 의미를 찾고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며 다시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나아가 볼 힘을 낼 수 있다. 지금의 눈으로는 90년대 이후 야심 차게 시도되었던 ‘전설의 고향’ 2기, 3기 시리즈도 화면이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런 풍요로운 이야기 자원들 속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 좀 더 많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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