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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는 매년 쌓여가는데 값은 오른다, 희한한 우윳값

중앙일보

입력

도입 8년째를 맞은 원유가격 연동제가 수술대에 오른다. 정부가 연말까지 개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생산비가 늘면 우윳값도 따라 오르는 현 제도가 시장 수급을 왜곡한다는 판단에서다. 물가 잡기에 희생양이 됐다며 낙농가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17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우유 및 유제품 진열대 모습. 연합뉴스

17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우유 및 유제품 진열대 모습. 연합뉴스

17일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 내부에서 원유가격 연동제 개편이 검토되고 있다. 농식품부 당국자는 “지난 1년간 낙농업계와 논의를 해왔는데 진전이 없어, 정부가 제도 개선 방안을 연말까지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관 부처인 농식품부는 물론 기재부도 가세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본적인 틀 만들기는 농식품부가 주도하지만, 물가와 재정 지원 측면도 있기 때문에 함께 논의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우유와 유가공제품(치즈ㆍ버터 등)의 원료가 되는 원유 단가를 생산비와 소비자물가 상승분에 맞춰(연동) 결정하는 제도다. 2010~2011년 구제역 파동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고, 2013년 8월 처음 시행됐다. 원가 책정을 둘러싸고 해마다 낙농ㆍ유가공업계가 극한 대립하는 걸 예방하려는 목적도 컸다.

하지만 우유 수요가 줄든 말든 생산비와 물가에 따라 원윳값이 올라가다 보니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저출산,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우유 소비는 꾸준히 줄어가는 데 반해 원유 생산량과 값은 상승하는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유가공협회 통계를 보면 지난 6월 기준 분유 재고는 1만1681t에 이른다. 보통 남는 원유는 분유로 가공해 저장하는데, 지난해 4월 1만t 돌파 이후 계속 재고가 쌓이고 있다. 낙농업계와의 협의에 진전이 없자 정부가 서둘러 연동제를 손질하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넘치는 우유 재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넘치는 우유 재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원유가격 연동제 개편 논의는 다각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시장 수요 변화를 가격에 반영하고, 가공용ㆍ음용용 등 원유 용도별로 값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이 정부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다. 현재 흰 우유 등 마시는 우유(시유)에 편중된 생산 구조가 치즈ㆍ버터 등 가공제품으로 분산되도록 연구ㆍ개발, 시설 구축을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다.

낙농진흥법에 따라 원유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낙농진흥회 구성도 도마에 올랐다. 낙농진흥회 이사 총 15명 가운데 7명이 생산자 측이다. 이사회는 정원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지 않으면 열 수가 없다. 원유를 생산하는 낙농업계가 이사회에 불참하면 가격 변경 자체를 할 수 없는 구조다. 지난 13일 정부는 지난해분 원유가격 인상(L당 21원)을 유보하는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했지만, 이에 반발하는 생산자 측 이사 전원이 참석하지 않으며 불발에 그치기도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금의 의사 결정 구조를 바꾸려면 낙농진흥회 정관을 바꿔야 하는 데 이 역시 이사회 결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며 “이런 문제를 해소할 만한 낙농진흥법 또는 시행령 개정도 검토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낙농가 반발은 거세다. 이날 한국낙농육우협회, 전국 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 등 낙농가 단체는 “생산자 물가 폭등은 정부가 조장해놓고 힘없는 낙농 산업을 붕괴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냈다.

올라가는 우유 생산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올라가는 우유 생산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원유가격 연동제를 둘러싼 낙농업계와 정부 충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고물가 사태 때 정부가 원유가격 연동제를 손보려다가 법정 다툼으로까지 가는 충돌 끝에 사실상 무산됐던 전례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폭풍으로 원유 수요가 줄고 물가는 치솟자 정부가 다시 연동제 개편안을 꺼내들었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타이밍’도 문제다. 코로나19로 학교 우유 급식이 중단되는 등 판로가 좁아진 데 반해 사료 값, 인건비는 상승하며 낙농가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통계청 조사 결과 우유를 만들어내는 데 들어가는 비용(생산비)은 해마다 상승해 지난해 처음 L당 800원선을 돌파했고, 젖소 마리당 순수익은 2016년 이후 내리막길이다.

농식품부ㆍ기재부는 낙농가와 협의를 거쳐 연말까지 원유가격 연동제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코로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낙농업계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날 낙농 단체는 공동 성명에서 “물가 잡는다고 농민 잡는 김현수 장관이 이끄는 농식품부와는 더 이상의 대화는 없을 것”이라며 김 장관 사퇴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내 낙농특별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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