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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살기 힘들어 민주당 철회했지만 국민의힘 지지하진 않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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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전은 비수도권이지만 지난달 27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 중이다. 지난 14일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대전=김성탁 논설위원

대전은 비수도권이지만 지난달 27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 중이다. 지난 14일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대전=김성탁 논설위원

광복절 연휴 첫날인 지난 14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곳곳에서 나들이나 휴가 차량으로 정체가 빚어졌다. 하지만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대전복합터미널까지 가는 데에는 1시간 5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울부터 대전 인근까지 버스전용차로가 운영돼 정체가 전혀 없었다. 중간에 휴게소도 들르지 않을 정도로 대전은 수도권과 거리가 가깝다.

대선 캐스팅보트 대전 르포 #여당 지지세 감소 기류 속 "윤석열 정치 경험 부족하지 않나" #국힘 지지층은 정권 교체 기대 속 "다른 대안 있나" #최근 여론조사선 여당이 앞서…젊은층 "부동산 정책이 관건"

 여야가 대선 후보 선출을 앞둔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가 속속 전해지지만 선호도 1위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바뀌는 등 접전 양상이다. 대전을 포함한 충청 지역은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다. 영·호남에 비해 특정 정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1992년 14대 대선 이후 충청에서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선 대전·세종 9개 전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정도로 여당 지지세가 강했다. 여야 간 우열이 뚜렷하지 않은 현재 중도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대전의 민심은 어떨까.

 “여기는 감감무소식이지. 지금 뭐 후보가 나오기나 혔어?.”

 코로나19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되고 있어서인지 대전복합터미널 내부는 인파가 많이 붐비지 않았다. 건물 위층 대형마트에 가던 70대 남성은 대선 관련 질문에 일단 거리를 뒀다.
 하지만 지난 총선처럼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냐고 묻자 “이번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현 정권이 잘해야 지지도 어느 정도 해주는 거죠”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야당을 찍겠다고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국민의힘 지지가 많아졌는지는 잘 모르겠고, 윤석열 그 사람 난 별로예요. 이재명도 표를 얻으려고 난리인데 경기도 사람들이야 좋아하겠지만…. 지금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봐야지.”

대형마트 등 각종 시설이 함께 있는 대전복합터미널 입구. 코로나 확산세 때문인지 주말임에도 터미널 주변이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았다. 김성탁 논설위원

대형마트 등 각종 시설이 함께 있는 대전복합터미널 입구. 코로나 확산세 때문인지 주말임에도 터미널 주변이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았다. 김성탁 논설위원

 코로나19 여파로 버스 노선이 줄어 충남 공주에서 상품 발송을 위해 이 터미널을 찾은 박모(52)씨는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현 정권으로 바뀌었으니 달라질 줄 알았는데 더 힘들어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공주에서 농사를 짓는데 인건비도 너무 많이 올려버리고…현실을 모르고 예전부터 내려오던 시스템을 한꺼번에 많이 바꾸려다 보니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아요. 10시간 일하던 분들은 8시간 일하면 좋겠지만, 일 시키는 사람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녜요. 인건비 오른다고 20㎏에 2만원 하던 감자가 3만원으로 오르진 않잖아요. 버티기 힘들어 저도 일하는 인력을 많이 줄였어요.”
 정권 교체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박씨는 “국민의힘 지지로 돌아선 건 아니다”고 했다. 지지할 대선 후보도 아직 마땅치 않다는 반응이다. “윤석열·최재형 후보는 나름 정직한 것 같긴 한데 정치적인 경험은 없잖아요. 대통령을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게 아쉽고, 민주당은 이낙연·이재명·추미애 후보 등이 있지만 정권 유지 목적이 강한 것 같아서….” 정부 여당 지지에서 이탈했지만 곧바로 야당 지지로 넘어가지 않은 채 관망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하겠다는 시민들도 보였다. 터미널 앞 화단에서 커피를 마시던 주부 김모(54·대전 중리동)씨는 “코로나19로 우리가 힘드니 정치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덜하다”면서도 “난 민주당 지지”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에 (민주당 쪽에) 관심이 갔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거치며 확실해졌어요. 민주당이 다시 하면서 부동산 정책만 바꿨으면 좋겠어요. 별 차이 없으니 규제를 풀어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시장에 내놓게 해야죠.” 함께 있던 친구 김모(53·대전 성남동)씨는 “예전엔 별로였는데 이재명 지사가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면이 보여 호감이 간다”고 했다.
 여론조사에서 여권 지지세가 강한 50대 초반 연령대인 두 사람은 20~30대 자녀들은 자신들과 판단이 다르다고 전했다. “처음에 민주당 지지하던 서른 살 아들이 윤석열씨가 나오니 ‘흐름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애들은 모두 20대인데, 윤석열 지지에요. 우리 때는 대학교 때 선거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자기들이 중요시하는 측면을 놓고 판단해서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아요.” 40~50대는 여권 지지세가, 20대 등 젊은 층은 야권 지지세가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 경향과 비슷한 설명이다.

대전 둔산동 거리는 최대 번화가로 꼽히지만 코로나 확산세 때문인지 한산한 모습이었다. 오후 5시가 지나서야 거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다소 늘었다. 김성탁 논설위원

대전 둔산동 거리는 최대 번화가로 꼽히지만 코로나 확산세 때문인지 한산한 모습이었다. 오후 5시가 지나서야 거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다소 늘었다. 김성탁 논설위원

 젊은 층의 의중을 들어보려고 찾은 대전 최대 번화가 둔산동 거리는 코로나19 확산세의 영향으로 한산했다. 오후 5시가 넘어서야 거리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거리에서 만난 20대 대학생 중에는 대선에 관심이 없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와 달리 20대 후반이나 30대는 나름의 입장을 갖고 있었다.
 대전에 사는 김모(34)씨와 충북 청주에 거주하는 최모(28)씨 커플은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공통으로 “부동산 정책을 잘해주는 쪽을 찍을 것 같다”고 답했다. 정부 정책에 불만이 있지만 다소 다른 입장도 관찰됐다. 남성인 김씨는 “제 주변 모두 연봉을 모아 집 사기 어렵다는 걸 체감하기 때문에 정권을 바꿔 맡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권 후보와 관련해선 “윤 전 총장은 정책을 잘 들고 오면 찍을 것 같긴 한데, 아직은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여성인 최모씨는 정책 불만에도 불구하고 여당 후보를 언급했다. “그나마 호감 가는 후보가 이재명씨에요. 최근 재난지원금을 모든 경기도민에게 지급한다고 했는데 내 생각과 비슷하고 밀어붙이는 모습이 좋은 것 같다”는 이유였다. 여야 후보가 확정되고 공약이 어떨지가 영향을 줄 여지가 젊은 층에서도 보이는 대목이다.

대전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의 모습. 코로나와 불경기가 겹치면서 예정보다 일찍 장사를 마치는 가게가 늘고 있다고 상인들은 전했다. 김성탁 논설위원

대전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의 모습. 코로나와 불경기가 겹치면서 예정보다 일찍 장사를 마치는 가게가 늘고 있다고 상인들은 전했다. 김성탁 논설위원

 기존에 야당을 지지했던 이들 사이에선 반드시 정권이 교체돼야 하고, 윤 전 총장이 가장 가능성이 있는 후보라는 입장이 뚜렷했다. 대전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에서는 오후 6시가 지나자 짐을 정리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요즘은 불경기로 잘 되는 가게가 거의 없어 다들 일찍 장사를 접는다”고 했다.
 시장 골목에서 꽈배기를 만들던 박모(61)씨는 “난 국민의힘 쪽을 계속 지지해왔다”며 “정치를 안 해봐서 좀 미숙한 면이 있긴 하지만 후보로는 윤 전 총장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홍준표씨도 바른 소리를 하긴 하던데, 여당과 맞붙어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올해 환갑인 택시기사 이모씨는 “민주당 쪽을 선거에서 찍어본 적이 없는데, 주변에 민주당 너무 밀어줬다며 후회하는 이들이 생겼다”며 “윤석열 후보에 대한 호감도가 80% 정도 되는데, 이번에는 누가 야당 후보로 나가든지 정권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씨는 “민주당이지만 안희정씨가 있었으면 충청에서 많이 지지했을 텐데…”라고 덧붙였다.

 한국갤럽 자체 여론조사에서 지난달 첫째 주(6.29~7.1 조사) 충청지역 후보 선호도는 윤석열 26%, 이재명 16%, 이낙연 4%였는데 이번 달 첫째 주 조사(8.3~5)에선 윤석열 19%, 이재명 18%, 이낙연 16%로 변했다. 충청지역 정당 지지도는 지난달 첫째주 국민의힘 33%, 민주당 28%였는데 이번 달 첫째 주에는 민주당 42%, 국민의힘 32%로 바뀌었다. '중원'의 민심은 유동적인 상황이다. 한국갤럽 조사와 관련해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내년 대선 충청의 선택…여당 4연승? 야당 탈환전?

 대전·세종·충남·충북으로 이뤄진 충청 지역은 ‘중원(中原)’으로 불린다. 위치가 가운데이기도 하지만 선거에서 표심이 중도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특정 정파에 강한 지지세를 보여온 영·호남과 달리 선거 때 충청 지역의 지지 여부가 스윙 보터 역할을 해왔다.

 대선 승리를 위해 충청을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1997년 김대중(DJ) 후보는 충청 출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와 손잡은 ‘DJP 연합’으로 충청 표심을 잡고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이 후보는 당시 전국적으로 DJ에게 39만표가량을 졌는데, 충청에서의 표차가 40만표 정도였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 민심을 파고들었고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충청 지역은 2017년 19대 대선을 시작으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 세종시장, 충남지사, 충북지사 등 광역단체장 4자리를 모두 민주당에 안겼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민주당 진영이 충청권 28석 가운데 20석을 얻었다. 내년 대선에서 충청권 민심의 향배에 따라 여권의 4연승일지, 야권의 탈환전일지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