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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 하던 곡성 촌놈, 유럽 휩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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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바리톤 김기훈.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바리톤 김기훈.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저희 곡성을 ‘골짝나라 곡성’이라고 할 만큼 많이 시골이었거든요. 저 곡성 촌놈 맞습니다.”

BBC 콩쿠르 우승 바리톤 김기훈 #성악가 흉내내다 고3때 성악 시작 #한때 성대 결절, 복싱할까 생각도 #“박수가 원동력, 직업 만족도 최상”

바리톤 김기훈(30)이 17일 서울 대치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도중 활짝 웃었다. 김기훈은 전남 곡성군 태생이다.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고 있었는데 한 강사분이 와서 꼭 노래를 하라고 하셨다. 그때 내 개인기는 성악가 발성을 흉내 내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었다.” 재미로 따라 하던 성악 발성을 들은 전문가들은 그에게 성악가가 되라고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에 성악을 시작했다.

곡성에서 시작한 성악가 김기훈이 세계 유수의 도시를 사로잡았다. 6월 19일(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에서는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BBC 콩쿠르)의 오페라 아리아 부문에서 우승했다. 세계적 경력은 이미 그 전부터 쌓았다. 2019년엔 러시아 모스크바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 같은 해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오페랄리아 콩쿠르(도밍고 콩쿠르)에서도 2위에 올랐다. 다음 달 4일엔 BBC 콩쿠르 우승 기념 독창회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다.

김기훈은 싱싱한 소리의 바리톤이다. 로시니·모차르트부터 차이콥스키·바그너까지, 소화하는 음악의 폭이 넓다. 김기훈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직업 만족도가 최상”이라고 했다. “노래하면서도 허공을 보지 않는다. 관객들 눈 하나하나 마주치면서 반응을 본다. 무엇보다 박수받을 때가 아주 좋다. 엄청난 힘을 받아 원동력으로 쓴다.”

승승장구만 하진 않았다.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선 반주자가 실수로 음역대를 높게 잡아 목을 무리해가면서까지 노래를 해야 했던 일도 있었다. “차이콥스키와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연이어 2위를 했을 때도 1등을 노렸기 때문에 실망이 컸다”고 했다. 그 이전 연세대 성악과 재학 시절엔 성대 결절을 얻어 음악을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복싱 체육관에 다녔는데 재능이 있다고 해서 선수를 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슬럼프를 극복한 김기훈은 연세대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독일 하노버 음대 석사과정도 만점을 받으며 마쳤다. 하노버의 국립극장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나비부인’ 등 바리톤의 필수 오페라에 출연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당시엔 세계적 지휘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눈에 띄어 마린스키 오페라 극장 영입을 제안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제르몽으로 출연했다.

올해와 내년엔 ‘라보엠’의 가난한 젊은이 중 화가인 마르첼로 역으로 유럽 무대에 자주 선다. 뮌헨 바이에른 오페라 극장,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 오페라 극장이다. 런던 국립 오페라, 미국 워싱턴 국립 오페라 데뷔도 예정돼 있다.

다음 달 열리는 독창회에서는 BBC 콩쿠르의 참가곡을 포함해 다양한 노래를 부른다. 특히 코른골트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는 BBC 콩쿠르에서 김기훈이 불렀을 때 심사위원 중 하나가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던 곡이다. “남성성을 보여주는 영웅적 역할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나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면 섬세한 노래를 잘한다고 한다. 현재 가장 잘 맞는 노래를 꼽긴 힘들지만 항상 미래를 향해가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 ‘잘하는 바리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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