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나빠져 30㎝ 앞 겨우 보이지만 첫 해설이라 긴장, 수험생처럼 공부”

중앙일보

입력 2021.08.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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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도쿄 개·폐회식 해설로 호평 송승환 평창 총감독

2020 도쿄 올림픽 KBS 개·폐회식 해설을 맡은 송승환 감독은 도쿄 현지에 갔지만 코로나19로 숙소와 경기장, 방송센터만 오가며 “수험생처럼 공부했다”고 했다. KBS는 지상파 3사 중 개·폐회식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20 도쿄 올림픽 KBS 개·폐회식 해설을 맡은 송승환 감독은 도쿄 현지에 갔지만 코로나19로 숙소와 경기장, 방송센터만 오가며 “수험생처럼 공부했다”고 했다. KBS는 지상파 3사 중 개·폐회식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의미는 많았지만 감동은 적었고, 창의성이 부족했어요. 실망스러웠습니다.”

“개막식 전날 긴장해 다리에 쥐나
글씨 탁구공만 하게 키우고 설명

도쿄 너무 잘 만들면 어쩌나 걱정
평창 때 쓴 드론 따라해 실망 컸다”

3년 전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은 송승환(64) PMC프러덕션 예술감독의 도쿄 올림픽 개·폐회식 평가다. 그는 KBS 해설자 자격으로 이번 올림픽 개·폐회식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사무실에서 만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감탄할 만한 장면이 없었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민요에 기반한 폐회식의 ‘도쿄온도’ 공연은 세계인이 공감하기 어려웠고, ‘리멤버 프로토콜’의 녹색 옷 춤도 잘 이해가 안 됐다”며 “개·폐회식을 보고 싶어 해설하겠다고 했는데, 실망이 컸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가 만연한 상황이라 화려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3년 전(평창 올림픽)에 쓴 드론이나 팝송 ‘이매진’을 그대로 다시 쓰는 등 일본 전통을 글로벌하게 풀어내는 창의성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평창올림픽 이후 시력이 나빠진 송 감독은 아이패드에 헷갈리는 이름, 연도를 큰 글씨로 쓴 뒤 확대해 보며 해설에 참고했다. 글자를 탁구공 정도 크기 이상으로 키우면 보인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이후 시력이 나빠진 송 감독은 아이패드에 헷갈리는 이름, 연도를 큰 글씨로 쓴 뒤 확대해 보며 해설에 참고했다. 글자를 탁구공 정도 크기 이상으로 키우면 보인다고 했다.

개·폐회식의 수준과 별개로 그의 해설은 “화면 밖의 ‘+α(알파)’를 알려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개회식 ‘점과 점을 이어’ 공연 중 붉은 의상, 붉은 선을 가리키며 “운동하는 사람들의 핏줄, 신경 같은 육체의 줄을 의미하기도 하고, 외로운 선수들을 이어주는 연결의 역할도 한다. 일본의 설치미술가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점은 사람, 선은 시간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따로 또 같이’ 공연에서 주경기장 바닥에 비치는 빛들을 보면서는 “바닥을 공연의 배경으로 봐야 한다. 평창 올림픽에서 메밀꽃밭을 나타냈던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풀었다. 폐회식 마지막에 등장한 ‘아리가토’(고맙습니다)라는 글자가 1964년 도쿄 올림픽 폐회식 당시 등장했던 ‘사요나라’(안녕히 가세요)와 같은 글꼴이라는 건 전임 올림픽 총감독의 눈에만 보인 디테일이다.

실제 그의 해설에는 평창올림픽 준비 경험들이 녹여져 있었다. 개회식에선 평창 올림픽 당시의 1218개 드론 오륜을 언급했고, 폐회식 때는 평창올림픽 때 세계적인 디제이 마틴 개릭스가 ‘무보수로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해 온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나올 땐 “평창 때는 거의 모든 곡을 창작해서 썼는데, 도쿄는 알려진 곡을 편곡해 사용한 게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수험생처럼 공부했다”고 자평할 정도로 노력도 많이 했다. 출국 전 『축소지향의 일본인』  『국화와 칼』 등 일본 관련 고전들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등을 보면서 일본의 분위기를 미리 흡수했다. “올림픽 개회식은 그 나라의 역사·문화를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일본 문화를 미리 좀 알고 가야 이해를 할 수 있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책을 읽고 예상문제도 뽑아갔다고 한다. 그가 예상했던 가부키, 마쓰리 축제가 개회식과 폐회식에 각각 등장했다.

송 감독의 도쿄 올림픽 ID카드.

송 감독의 도쿄 올림픽 ID카드.

현지에서도 송 감독은 “수험생처럼 공부했다”고 전했다. 국제방송센터(IBC)에서 온종일 자료를 찾고, 도시락으로 식사한 뒤 호텔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했다. 각 공연의 기본 정보와 의미, 출연진 등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담긴 ‘미디어 가이드 북’도 개회식 전에 미리 구해 거기 등장하는 음악과 인물에 대해 샅샅이 찾아봤다. 그는 “가이드북에만 의존하면 10초면 모든 설명이 끝난다”며 “작은 부분도 넘어가지 않고 다 찾아봤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송 감독은 가이드북에 단 한 줄 등장하는 ‘스키야키’란 곡에 대해 “원제는 ‘위를 보고 걷자’인데 미국 수입사 사장이 ‘제목이 너무 어렵다’며 제목을 바꿨고, 아시아 최초로 3주 연속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도 ‘이 시스터즈’가 ‘걸어요’란 제목으로 번안해서 불렀다”고 세세히 설명해줄 수 있었다. 그 덕택에 KBS의 시청률은 개회식(8.4%)과 폐회식(6%) 모두 지상파 3사 중 가장 높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열번이나 받아야 했던 코로나19 검사, 이례적인 폭염이 모두 그를 괴롭혔다. 송 감독은 “중계석은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오픈석이었는데 화장실을 자주 갈 수 없으니 물도 마음대로 못 마셨다. 긴장한 탓에 개회식 전날 다리에 근육 경련이 일어났는데 국가대표 출신 해설위원들이 파스, 마그네슘 같은 걸 챙겨줘서 호전됐다”고 전했다.

나쁜 시력도 문제였다. 평창 올림픽 직후부터 급격히 눈이 나빠진 송 감독은 현재 30㎝ 정도 이내만 식별이 가능하다. 그를 위해 KBS는 중계석에서 27인치 모니터로 화면을 보면서 해설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도 현장감을 잃지 않기 위해 개회식 리허설을 망원경과 확대 VR 프로그램으로 미리 본 뒤 머리에 넣어두기도 했다. 잘 안 외워지는 일본어 이름을 중계 전날 태블릿PC에 직접 크게 쓴 뒤 확대해 보면서 해설하기도 했다. 글씨가 탁구공 크기 정도 되면 보인다고 한다.

그는 62세의 최고령 메달리스트인 승마의 앤드루 호이(호주)를 언급하면서 “예전 예순다섯 살이면 해설자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이젠 자기 분야를 꾸준히 한 사람은 계속 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배우고, 꾸준히 연기·연출을 하다 보면 이번 올림픽처럼 새 기회가 또 생기지 않겠나”고 말했다.

귀국 후 일상은 바쁘다. 코로나로 1년 넘게 ‘난타’ 공연은 멈춰있지만, 원로 배우들의 삶을 풀어 듣는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도 8개월째 운영 중이다. 최근엔 영상 제작 회사도 만들었다. 코로나로 중단했던 연극 ‘드레서’도 11월부터 무대에 올린다. 성균관대 문화예술 미디어융합원장으로 있으면서 ‘크리에이티브 브리지 페스티벌 축제’도 준비 중이다.

방송사로부터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도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은 그는 “해설은 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코로나19가 변수라 몇 달 뒤 생각해 보자고 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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