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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중·일에 맞설 ‘새 4천왕 시대’ 열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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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20개월째 한국랭킹 1위를 독주하고 있는 21세 신진서 9단이 국내 5관왕에 올랐다.

신진서·박정환·변상일·신민준 #서로 박빙 승부, 미래 기대감 높여

과거 조훈현 9단은 11개의 타이틀을 모두 따내는 ‘전관왕’이 됐고 이창호 9단은 13관왕이란 전무후무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바둑시합이 단체전인 바둑리그로 바뀌며 대회 수가 줄어들고 또 많은 도전기가 토너먼트로 바뀌면서 그런 일들은 불가능해졌다. 도전기는 우승자에게 특혜가 주어진다. 도전권을 얻은 단 한 사람만을 상대로 3번기나 5번기, 또는 7번기를 벌여 이기면 또다시 우승하게 된다. 그러나 토너먼트는 64강이든 32강이든 8강이든 어디서든 한칼을 맞을 수 있다. AI 시대에, AI로 철저히 무장한 신예들이 그득한 숲속에서 제아무리 강자라도 누가 누구 칼에 맞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5관왕 신진서는 그럼 무적인가. 7~8월 치러진 3개 결승전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박정환 9단과의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은 3대2 승리. 변상일 9단과의 GS칼텍스배도 3대2 승리. 이어진 변상일과의 명인전 결승도 2대1 승리. 배구로 치면 모두 풀세트 접전이고 내용도 박빙이었다. 특히 3개 대회 최종국들은 모두 신진서의 역전승이었다. 운도 실력이라고 한다. 이긴 자가 강한 자라고 한다. 그 점에서 신진서는 일인자의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변상일의 강력한 부상은 매우 신선하고 기대에 부풀게 한다. 신진서-박정환의 양자 대결 구도에서 24세의 변상일이 용트림하듯 가세하며 멋진 트로이카를 이룬 것이다. 이들 셋에다 최근 약간 조용하지만 LG배 우승자인 22세의 신민준 9단을 포함하여 신(新) 4천왕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바둑에서 한·중·일의 대결은 역사적이고 필연적이며 피할 수 없다. 또 중국엔 30명 언저리의 강자들이 있어 우리는 소수 정예로 대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진서 혼자로는 역부족이다. 한국바둑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창호 시대의 4천왕처럼 새로운 4천왕이 새 시대를 이끌어 주기를 팬들은 고대하고 있다. 다음은 신진서와의 일문일답.

국내 5관왕을 축하한다. 지난해 박정환을 10대0으로 이길 때 신진서는 적어도 국내에선 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3차례의 결승전은 모두 팽팽했다.
“힘든 승부였다. 사실 지난해 10대0은 엉뚱한 결과이고 박정환 9단, 변상일 9단 모두 막상막하의 상대들이다. 변상일 9단은 특히 AI에 가장 열심이고 능통하다. 실력도 더욱 상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결승전들이 모두 박빙의 승부였기에 팬들은 오히려 한국바둑의 미래를 봤다고 말하고 있다. 신진서 본인 외에 중국을 이길만한 한국의 정상급 기사를 꼽는다면.
“박정환 9단과 변상일 9단, 그리고 신민준 9단까지 3명을 꼽고 싶다. 중국의 강자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매일 AI와 씨름할 텐데 조금 지루해진 기분은 없나. 이 시점에서 AI와 대결한다면 칫수는?
“사실 AI와 산다는 게 힘든 부분도 있지만 프로기사와 AI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젠 운명이 됐다. AI는 조금씩 더 발전하는 느낌이다. AI와의 칫수는 약간 불리하지만 두 점으로 해 봐야 한다.”
19일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 예선전이 시작된다. 이제 신9단도 많은 후배가 생겼는데 예선에 나서는 후배 기사들 중 누구를 꼽고 싶은가.
“문민종(18)이 있고 권효진(17), 한우진(16) 등이 좀 더 잘 해줘야 한다.”
내년 9월엔 중국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바둑도 남녀 단체, 남자 개인 등 3개의 메달이 걸려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바둑이 다시 들어갔는데.
“광저우 때는 한국이 3개의 금메달을 독차지했다. 이번 올림픽을 보며 선배들의 영광을 잇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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