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못 믿겠다” 대만·일본·유럽 신뢰 잃는 팍스 아메리카나

중앙일보

입력 2021.08.18 00:02

업데이트 2021.08.1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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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정권 장악에 미국의 동맹국과 우호국들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이 국익을 앞세워 그동안 지원했던 아프간 정권을 포기하자 앞으로 미국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국민당 “미국이 구원한다는 건 희망”
민진당 “우리는 아프간과 사정 달라”
아프간에 8조 퍼부은 일본도 충격
독일선 “난민들 긴급 대피시켜야”

대만 정치권에선 미국의 아프간 철군 여파에 ‘미국 불신론’이 제기됐다. 중국은 대만의 내부 논쟁에 불을 지피려는 듯 인근 해역에서 실전 훈련을 벌이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지난 1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왼쪽)과 샤메 슈크리 이집트 외교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왼쪽)과 샤메 슈크리 이집트 외교장관.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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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인터넷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 ‘망로온도계(網路溫度計)’는 17일 야당인 국민당 소속 자오사오캉(趙少康) 대만 중국방송공사 이사장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핫 뉴스로 꼽았다. 자오 이사장은 지난 15일부터 사흘 연속으로 페이스북에 “대만은 아프간 사태에 긴장하고 미국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며 “민진당의 무딘 정책으로 국민은 아프간이 대만의 ‘전거지감(前車之鑑·앞서 간 수레를 거울로 삼는다)’이 될 가능성을 모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진당은 대만 국민에게 ‘중국공산당은 대만을 공격할 수 없다’ ‘공격하면 미국이 구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 사고에 빠지게 만들어 대만의 미래와 대만 국민의 생명을 중국과 미국의 손아귀에 바친 어리석고 책임 없는 정당”이라고 공격했다.

집권 민진당은 반박에 나섰다. 쑤전창(蘇貞昌) 행정원장은 16일 “아프간 정세는 내란이며, 대만은 내부가 혼란하지 않아 외부에서 침략한 어떤 무력과도 대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미국대만협회(AIT)의 샌드라 오드커크 신임 처장을 만나 예정된 시간을 넘기며 회담했다고 밝혔다. 오드커크 처장은 이날 미국과 대만 관계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미국과 대만이 각 영역에서 협력을 지속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대만 중앙사가 보도했다.

왕딩위(王定宇) 민진당 입법위원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관계는 ‘내부 전쟁’이며 중국의 대만에 대한 위협은 ‘외부 침략’”이라며 상황을 구분했다. 차이쩡자(蔡增家) 대만정치대 교수는 “반(反)테러에서 ‘반중’으로의 전환이 미국 대외정책의 주축”이라며 “대만은 아프간을 대신해 미국의 전략 요충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군은 대만을 압박했다. 대만해협을 관할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스이(施毅) 대변인은 17일 동부전구가 군함, 대잠 전투기, 전투기 등을 동원해 대만 서남부와 동남부 등 주변 공해역에서 화력 타격 실전훈련을 시행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미국을 따라 아프간 정부 재건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던 일본은 탈레반의 정권 장악에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일단 아프간에 있는 일본 재외공관 직원과 현지 일본인 대피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앞으로 다른 나라의 동향을 고려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중동을 순방 중인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1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기자단에 “모든 당사자에게 치안과 질서를 회복하고 인명과 재산을 보장하도록 요구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17일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아프간 수도 카불에 남아 있던 일본대사관 직원 12명은 이날 미국 군용기 편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도착했다. 외무성은 앞서 15일 아프간 주재 일본대사관을 일시 폐쇄하고 터키 이스탄불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했다.

일본은 그동안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아프간의 부흥과 새 정부의 각종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다. 1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2001년 이후 아프간에 69억 달러(약 8조원)를 지원했다. 아프간 부흥을 위한 자금 지원뿐 아니라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도 협력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함선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인도양에서 활동하는 미군 함정에 연료를 보급하는 역할을 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16일 “미국 등 관계국과 연계해 대응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시리아 내전 당시 100만 명 이상의 이민자에게 국경을 개방했던 독일에선 “아프간 난민을 데려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6일 당 비공개회의에서 “아프간에서 최대 1만 명을 긴급 대피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메르켈 총리는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목격하고 있다”며 “탈출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아프간 접경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군은 현재 아수라장이 된 카불 공항에서 자국민을 탈출시키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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