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규정’보다 한술 더 떴다…박범계 "권력수사 보도 내사"

중앙일보

입력 2021.08.17 17:29

업데이트 2021.08.17 17:44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조국 전 장관 시절 마련한 ‘형사사건 공개 금지’에서 한 발 더 나가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 각 검찰청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를 벌여 내사(內査)까지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박 장관은 특히 피의사실 공표를 빌미로 정치권력 수사에 대한 언론 보도를 틀어막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법조계 안팎에 우려에도 불구하고 개정을 강행했다. 이 같은 규정 개정이 조 전 장관의 이규원 검사의 불법 출국금지 혐의 수사 관여 정황이 포함된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내용 보도에 대한 후속 조치 격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으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으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조국 수사땐 형사사건 공개 금지하더니→권력 수사 보도 땐 내사?    

법무부는 언론 보도 진상조사와 수사정보 유출 내사사건 입건 조항을 포함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법무부 훈령)’을 개정‧시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달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 과정에 대한 법무부·대검 합동 감찰 결과 발표 당시 개정이 예고된 내용이다. 이후 일선 검찰청과 언론 유관 기관의 의견 조회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했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새로운 규정은 전문공보관 또는 해당 업무 담당자 이외의 사람이 언론기관 종사자와 접촉해 수사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에 착수하도록 했다.

검사 또는 수사관이 담당 사건의 본질적 내용에 해당하는 수사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도 진상조사 대상이 된다.

진상조사 결과 공무상 비밀 누설이나 피의사실 공표 등 ‘범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인권보호관은 관련 사건을 내사 사건으로 정식 수리하도록 했다. 내사를 통해 검찰청 공무원의 범죄나 비위를 발견하면 소속 검찰청의 기관장에 보고해야 한다.

법무부가 새로 마련한 이 조항은 의견 조회 과정에서 논란이 일었다. 수사정보 유출 ‘의심’만으로 수사팀을 압박해 사실상의 수사 통제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한 조국 전 장관 재임 중 본인 및 가족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자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을 마련한 데 이어 김학의 불법출금 수사에서 조 전 장관 관여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를 계기로 앞으로 권력 수사에 대한 언론 보도는 ‘출처’를 따져 수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박범계 “언론에 알리면 수사 되고 안 알리면 수사 안 되냐”

하지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를 그대로 밀어붙였다. 앞서 박 장관은 지난 6일 이런 논란에 대해 “언론에 알리면 수사가 되고 알리지 못하면 수사가 안 된다는 건 그 자체로 논리 모순”이라며 “(개정안이) 권력 수사를 뭉갠다는 우려가 있는데 걱정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정안 강행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응철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도적 유출이 의심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바로 내사를 하는 건 수사를 자신 있게 할 수 없도록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며 “의혹이 있으면 진상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 범죄 존재 여부 확인에 이르렀을 때 내사하는 것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내사 이전 ‘진상조사’ 단계를 두기로 했지만, 여전히 권력 수사를 막을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피의사실 공표 차단을 빌미로 권력 수사와 이에 대한 보도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피의사실 공표 의심만으로도 내사를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규정에 적시한 것 자체만으로 수사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구자현 법무부 검찰국장이 17일 서초동 법무부 의정관에서 형사사건공개금지규정 개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법무부가 개정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에 따르면 공보관이 아닌 검사나 수사관이 수사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한 경우 인권보호관이 내사를 할 수 있다. 연합뉴스

구자현 법무부 검찰국장이 17일 서초동 법무부 의정관에서 형사사건공개금지규정 개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법무부가 개정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에 따르면 공보관이 아닌 검사나 수사관이 수사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한 경우 인권보호관이 내사를 할 수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 테러 범죄는 기소 전 공개 가능

법무부는 사회적 관심이 높은 중요 사건의 경우 기소 전 수사 상황에 대한 공개 범위를 확대했다. 기존 규정의 공개 범위가 제한적이고 불분명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형사사건 공개 심의위원회 의결이 된 사건에 대해 ▶수사 의뢰 ▶고소·고발 ▶압수수색 ▶출국금지 ▶소환조사 ▲체포·구속 등 단계별로 세분화해 공개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했다. 수사 의뢰 단계에서는 피 내사 대상 기관이나 기업 등을 공개할 수 있다는 식이다.

검찰은 또 ‘취재요청을 고려할 때 오보가 존재하거나 오보가 발생할 것이 명백할 경우’ 수사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디지털성범죄, 감염병에 관한 범죄, 테러 사건도 공개 가능한 사건으로 적시했다. 다만 피의자 측이 30일 이내에 반론요청을 하는 경우 공개한 수사 정보에 대한 반론도 공개해야 한다.

박범계 장관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와 수사받는 피의자의 인권 보호, 정당한 재판받을 권리 등을 종합한 아주 좋은 결과물”이라며 “현실 적합성과 원칙을 잘 조합한 내용”이라고 자평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