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진핑의 '자력갱생', 그가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시진핑, 왜 그래?

요즘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다.

시진핑은 중국 정치 경제를 마오쩌둥 시대로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정치는 장기집권 길로 가고 있고, 사회 통제는 강화된다. 국가의 경제 간섭도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나온 질문이다.

필자도 궁금하다. 머릿속 짧은 지식을 모아 팁을 찾아본다.

以我为主 내가 주인이 된다

최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한 평론 기사에서 본 단어다. '경제 정책의 자주성을 증강해야 한다'라는 주제의 글에서 나왔다. '为我所用'라는 말이 뒤에 붙었다. '내가 주인이 돼, 나를 위해 필요한 것만 한다'라는 뜻이다.

불쑥 튀어나온 단어는 아니다. 마오쩌둥 시대 이미 자력갱생(自力更生)을 강조하며 자주 쓰이던 말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그렇게 마오쩌둥이 걸었던 길을 걸으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以人为本 사람을 근본으로 한다

이건 시진핑의 전임자 후진타오 총서기 시절(2002년 말~2012) 국정 방향이다. 후 총서기가 내건 정치 슬로건인 '과학발전관(科学发展观)'의 핵심이 바로 '以人为本'이었다. 억지 성장이 아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성장'을 강조했다.

'以人为本'에서 '以我为主'로...
그 의미는 심장하다.

후진타오 시기 중국은 서방 경제와의 접궤(接轨)에 나섰다. 2001년 말 세계무역기구(WTO)가입으로 중국 경제는 빠르게 서방 경제시스템 속으로 끼어들었다. 늑대와의 춤을(与狼共舞)!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말이다. '서방(西方)'이라는 '늑대'와 춤을 추겠다는 것이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수출이 한 해 30% 안팎 늘었고, GDP는 성큼성큼 뛰어올랐다. 프랑스를 잡고, 캐나다를 넘어 영국을 따돌리고, 독일을 밀쳐내더니, 결국 일본을 밀쳤다. 글로벌 넘버 투. 후진타오의 '접궤'가 만든 실적이다. 미국 중심의 서방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편승했기에 가능했다.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 ⓒ신화통신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 ⓒ신화통신

성장은 부작용도 낳는다.

우선 부패가 심했다. 터졌다 하면 수천억 단위의 당 관리 부패 사건이 잇따랐다. 못 먹는 놈이 바보였다. 후진타오 임기 말 당 관료에 대한 반감이 하늘을 찔렀다.

공산 사회에 균열이 생겼다. '경제 서방화(西方化)'가 진행되면서 억눌렸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민주와 자유 의식이 싹텄다. 생산 현장에서는 노동자 파업이 벌어졌다. 광둥(廣東) 혼다 공장에서는 극렬한 노동분규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 하부조직(기층)에서는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선거가 이뤄졌다. 당과 인민의 간격은 점점 멀어졌다. 심지어 공산당 당명을 사회당으로 바꾸자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WSJ

ⓒWSJ

부시(아들) 대통령 말이 맞았다. 역시 시간은 미국의 편이었어….

서방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중국의 WTO 가입 승인을 지지하면서 한 말을 되새겼다. 당시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들어오게 내버려 둬라. 경제가 성장하면 자기들(중국)도 별수 없이 민주화 될 테니…. 시간은 미국 편이다"

경제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회에는 뭔가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다. 2017년 말, 그런 분위기 속에서 최고 권력에 오른 사람이 바로 시진핑 총서기다.

시진핑은 집권하자마자 문제를 던진다.

소련은 왜 망했는가?
공산당이 와해됐기 때문이다.
당은 왜 와해됐는가?
부패가 심했기 때문이다.

반부패 투쟁을 벌였다. 그물을 던져 호랑이를 잡고, 파리채를 휘둘러 날파리들을 잡았다. 부패 관리 숙청은 집권 1기(2012년 말~2017) 내내 진행됐다. 라오바이싱(老百姓)은 환호했고, 당의 사회 장악력은 커졌다. 혹독한 부패 투쟁에 '의견'과 '반론'은 죽었다. 어수선했던 사회는 차츰 진정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경제는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텼다.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 덕택이다. '중국 사회주의가 서방 자본주의를 구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누구도 시진핑을 막을 수 없었다. 헌법을 바꿔 '종신 주석'의 길을 열어도 누구 하나 대들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시진핑 집권 1기의 대략적인 상황이다.

ⓒFP

ⓒFP

2017년 말 시진핑 집권2기가 시작됐다.

우렁찬 출발이었다. 시진핑은 '중국몽(中国梦)'을 내걸었다. '화려했던 중화 민족 시기를 되살리겠다'고 외쳤다. '중국도 이제는 태평양의 절반 정도는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며 오바마 미국 대통령 속을 긁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데...

시진핑 집권 2기를 규정할 변화의 실마리는 외부에서 왔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바뀐 것이다. 2017년 1월 백악관 주인이 된 도널드 트럼프는 출발부터 중국을 겨냥했다. 거칠게 몰아 붙였다. 집권 2기 첫해(2018년),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중국을 몰아내라!

무역에서 시작된 전쟁은 금방 기술로 옮겨붙었다. 화웨이를 비롯한 주요 기술업체를 옥죄기 시작했다. 화웨이로 연결된 서방 기술 공급선을 끊고, 서방 시장에서 화웨이 제품을 몰아내려 했다. 화웨이 창업자 딸은 아직도 캐나다에 발이 묶여있다. 중국에서 AI 좀 잘한다는 회사는 미국에 발을 못 붙이게 했다.

시진핑의 국가 프로젝트 '일대일로(一带一路)'도 공격 대상이었다.

어디 감히 팍스 아메리카에 대들어~

사실 일대일로는 거대한 비전을 설정해 놓고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를 잇달아 방문하면서 '옛 실크로드를 복원하자'며 툭 던진 말이 진화해 국가 프로젝트로 컸다. 생각은 부풀고 부풀어 중국은 지금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유럽 끝까지(대륙), 동남아시아를 지나 아프리카/중동을 거쳐 지중해에 이르는 거대 '런민비(人民币) 경제판'을 구상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시대, 일대일로는 '반격의 루트'로 변했다. 시진핑은 트럼프의 독선에 반감을 가진 일대일로의 저쪽 끝에 있는 유럽에 손을 내밀었다. 일대일로 주변 약소국가에는 자금을 흘렸다. 일부 먹혔다. 트럼프 시기 중국과 유럽은 포괄적 투자보호협정 체결에 합의하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미국에서 대통령이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민주당 바이든이다.

대통령은 바뀌었는데 대중국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다. 바이든의 전략은 '스크럼 짜기'다. 우방국을 대중국 전선에 끌어들였다. 독불장군 트럼프와는 달랐다.

포위망은 더 조밀해지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시절 흔들렸던 유럽이 다시 미국에 합류하고 있다. 중-유럽 투자보호협정은 최종 비준 단계에서 홀딩 됐다. 일본, 호주는 더 밀착했다.

"바이든이 더 무섭네.." 그런 말이 나올 판이다.

서방 여러 나라와 스크럼을 짜고 달려드는 미국,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있다. 시진핑은 어떡해서든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트럼프 시기와도 차별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화두를 다시 꺼낸다.

'以我为主'

탈궤(脱轨), 영어로 말하면 디커플링(decoupling)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중국은 이제 후진타오식 접궤에서 벗어나고 있다. 서방과 디커플링을 준비한다. 상대가 스크럼을 짜고 떼로 달려든다면, 더 강력하게 독자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시진핑은 '쌍순환(雙循環)'을 말한다. 말이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의 순환'이지 해외 시장이 아닌 내수시장에서 성장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책이다. 중국 기술로 중국에서 만들어, 중국에서 소비하자는 생각이다. 자국 서플라이 체인의 완성이다.

경제뿐만 아니다.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마오(毛)식 자력갱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사상 교육을 강화한다. '시진핑, 왜 그래?'라는 질문의 답은 거기에서 구해야 한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성공할까?

중국은 자신한다. 그동안 이룬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AI 등 제4차산업 영역에서의 약진, 우주항공 등 분야 도약 등을 고려할 때 해볼 만하다고 본다. 제조업은 최강국이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없는 기술은 사오고, 자체 개발하면 된다. 막대한 국내 시장도 받쳐준다.

정부는 팍팍 밀어준다. 이젠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나 혼자도 잘살 수 있도록 정책을 짜야 한다. 신화통신이 얘기한 '以我为主'는 그런 뜻이다.

반도체 산업 육성은 이를 보여준다.

중국은 반도체 수요의 80%를 해외에서 사 온다. 돈으로 치면 석유보다 많다. '以我为主', 이제 반도체도 우리가 생산하자. 중국은 수백억 달러에 반도체 기술 자립 프로젝트에 나섰다. 정부가 돈을 쏘고, 해외에서 기술과 설비를 사오고, 그 설비로 만든 제품을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덕택에 제조업체는 성장하고, 다시 기술 개발에 나서고, 다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결과는?

쉽지 않아보인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반도체 그룹 칭화유니가 결국 부도에 직면한 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의 자신감은 거대한 내수 시장 규모와 거대한 자본에 있었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은 자본의 선형 투입이 기술의 선형 진보로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 특히 메모리 반도체 싸움은 선행 기술과 양산 사이의 간극뿐만 아니라 현행 기술의 수익률 확보에 달려 있다는 점, 그리고 언제든 선두 업체들이 기술 로드맵을 수정하여 치킨게임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반에서 꼴등 하던 학생이 10위권까지는 어떻게든 과외선생의 도움으로 진입할 수는 있지만, 그 이후로는 1등 1등 올리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과 비슷한 이치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

칭화유니가 부도났다고 중국 반도체 공정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더 튼튼한 체제를 만들어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돈을 쏟아부으면 시장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단편적이다. 서방의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편승한 덕택에 성공한 중국이 그 공급망에서 이탈해도 잘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칭화유니는 그걸 보여주고 있다. 시진핑 자력갱생의 한계다.

차이나랩 한우덕

차이나랩

차이나랩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