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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나빠 30㎝앞만 보이는데···'시청률 2배' 송승환 해설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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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이었던 송승환 씨가 16일 서울 대학로 PMC프로덕션에서 2020도쿄 올림픽 개폐회식 해설자로서 인터뷰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이었던 송승환 씨가 16일 서울 대학로 PMC프로덕션에서 2020도쿄 올림픽 개폐회식 해설자로서 인터뷰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예습을 열심히 했어요. 해설은 처음 해보는 거니까. 이왕 하는 거 욕은 먹으면 안 되잖아요.“

3년 전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을 총괄했던 베테랑 감독인데도, 2020 도쿄올림픽 해설은 ‘수험생처럼 준비했다’고 했다.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사무실에서 만난 송승환(64) PMC프러덕션 예술감독은 ”준비한 데서 60~70%는 보여준 것 같다“며 ”시청률이 타 방송사의 2배가 나왔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송 감독이 해설을 맡은 KBS는 지난달 23일 열린 개회식 8.4%, 지난 5일 폐회식 6%로 지상파 3사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화면 밖' '음악상식' '평창'… 송승환만 가능한 해설

도코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점과 점을 이어' 공연. 일본의 설치미술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KBS 유튜브 캡쳐

도코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점과 점을 이어' 공연. 일본의 설치미술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KBS 유튜브 캡쳐

송 감독은 해설로 눈에 보이는 공연 외에 ‘화면 밖 +α’를 알려줬다. 개회식 ‘점과 점을 이어’ 공연 중 붉은 의상을 입고 붉은 선을 건 채 움직이는 장면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핏줄, 신경 같은 육체의 줄을 의미하기도 하고, 외로운 선수들을 이어주는 연결의 역할도 한다“며 ”일본의 설치미술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점은 사람, 선은 시간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배경지식을 덧붙였다. ‘따로 또 같이’ 공연에서 도쿄 주경기장 바닥에 비치는 빛들을 보면서는 ”바닥을 공연의 배경으로 봐야 한다“며 ”평창올림픽에서 메밀꽃밭을 나타냈던 것처럼, 프로젝션 매핑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풀어 설명했다.

도코올림픽 폐회식에 등장한 AR 오륜기. 송 감독은 "캐나다의 유명한 미디어 스튜디오"라며 전문지식을 이용해 해설을 이어갔다. KBS 유튜브 캡쳐

도코올림픽 폐회식에 등장한 AR 오륜기. 송 감독은 "캐나다의 유명한 미디어 스튜디오"라며 전문지식을 이용해 해설을 이어갔다. KBS 유튜브 캡쳐

폐회식에서도 풍성한 해설이 이어졌다. 개회식 때 짧게 언급했던 '축소지향'을 풀어 설명하면서 일본의 도시락, 트랜지스터 등과도 연결시켰다. 폐회식의 오륜을 만든 AR 기술을 설명하면서 '모멘트 팩토리'라는 캐나다의 아주 유명한 미디어 스튜디오 팀을 언급하고, 마지막에 ‘아리가또’라는 글자가 1964년 폐회식의 ‘사요나라’와 같은 글꼴이라는 내용 등은 전임 올림픽 총감독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디테일이었다.

2018평창올림픽 성화 채화에 등장한 김연아 선수. 송승환 감독은 도쿄올림픽 해설에 평창올림픽 개회식, 폐회식을 준비했던 경험을 사이사이 풀어냈다. SBS 유튜브 캡쳐

2018평창올림픽 성화 채화에 등장한 김연아 선수. 송승환 감독은 도쿄올림픽 해설에 평창올림픽 개회식, 폐회식을 준비했던 경험을 사이사이 풀어냈다. SBS 유튜브 캡쳐

평창올림픽을 준비했던 경험도 해설에 녹아났다. 개회식에선 평창올림픽에 사용된 1218개 드론 오륜과 런던 올림픽의 ‘산업혁명 퍼포먼스’를 언급했고, 폐회식에서는 평창올림픽 때 세계적 디제이 마틴 개릭스가 먼저 연락이 와서 ‘무보수로 출연하고 싶다’고 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환희의 송가'가 나올 땐 "평창 땐 거의 모든 곡을 창작해서 썼는데, 도쿄는 창작 음악보다는 알려진 곡을 편곡해 사용한 게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예상문제 뽑고, 가이드북 한줄한줄 뜯어 검색했다

도코올림픽 폐회식에 등장한 일본 각지의 '마쓰리' (축제) 장면. 송 감독이 '나올 것이다' 예상하고 공부를 해간 주제에도 포함됐다. 각지의 축제를 비추는 동안 송 감독은 '마쓰리'에 대한 배경지식을 풀어냈다. KBS 유튜브 캡쳐

도코올림픽 폐회식에 등장한 일본 각지의 '마쓰리' (축제) 장면. 송 감독이 '나올 것이다' 예상하고 공부를 해간 주제에도 포함됐다. 각지의 축제를 비추는 동안 송 감독은 '마쓰리'에 대한 배경지식을 풀어냈다. KBS 유튜브 캡쳐

그는 이번 해설을 맡게 된 뒤, 도쿄에 가기 전부터 공부를 많이 했다. 이어령 선생의 『축소지향 일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전여옥 『일본은 없다』 등을 읽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도 세 권 정도 보며 일본의 분위기를 미리 흡수했다.

송 감독은 “올림픽 개회식은 모르고 보면 아무 의미도 못 느끼지만, 설명을 들어야 이해될 요소가 많다”며 “역사‧문화를 압축해서 임팩트 있게 보여주기 때문에, 일본 문화를 좀 알고 가야겠다 싶어서 책을 읽고 예상문제를 뽑아갔다”고 전했다. 그가 예상했던 가부키, 마쓰리 축제가 개회식과 폐회식에 각각 등장했다.

현지에서도 송 감독은 “수험생처럼 공부했다”고 전했다. 아침에 일어나 국제방송센터(IBC)로 가서 하루종일 앉아서 자료를 찾고, 도시락으로 식사한 뒤 호텔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했다.

매 올림픽 개‧폐회식에는 각 공연의 기본 정보와 의미, 출연진 등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담긴 ‘미디어 가이드 북’이 있다. 송 감독은 미디어 가이드북이 각 방송사에 배부되는 개막식 3일 전에 도쿄에 도착해 가이드북 설명에 쓰인 음악과 인물에 대해 샅샅이 찾아봤다. 그는 “공부를 안하고 가이드북대로만 하면 10초면 모든 설명이 끝난다”면서 “작은 부분도 넘어가지 않고 다 찾아봤다”고 전했다. 송 감독이 폐회식 때 “원제는 ‘위를 보고 걷자’인데 미국 수입사 사장이 ‘제목이 너무 어렵다’며 제목을 바꿨고, 아시아 최초 빌보드 1위를 3주 연속했다. 우리나라 ‘이 시스터즈’라는 걸그룹이 ‘걸어요’로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다”며 ‘TMI(잡다한 정보)’를 잔뜩 풀어준 ‘스키야키’라는 곡 설명도 가이드북에선 단 한 줄이었다.

도코올림픽 KBS 개회식, 폐회식을 함께한 송승환 해설위원과 이재후 KBS 아나운서. 두 사람은 미리 공부한 내용에 더해 서로 질문 내용, 타이밍 등 합을 미리 맞춰보며 유려한 해설을 준비했다. KBS 유튜브 캡쳐

도코올림픽 KBS 개회식, 폐회식을 함께한 송승환 해설위원과 이재후 KBS 아나운서. 두 사람은 미리 공부한 내용에 더해 서로 질문 내용, 타이밍 등 합을 미리 맞춰보며 유려한 해설을 준비했다. KBS 유튜브 캡쳐

함께 해설을 맡은 이재후 아나운서와 합도 좋았다. KBS 클래식FM에서 아침 프로그램을 1년 넘게 하고 있는 이 아나운서는 폐회식 때 송 감독이 캐치하지 못한 드뷔시의 ‘달빛’ 곡명을 짚어주기도 했다. 송 감독은 “미리 서로 할 이야기, 질문 등을 맞춰놓고, 공백 없이 이야기가 오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호평에 시청률까지 대박 나면서 벌써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은 상태다. 그는 “해설은 또 하라면 할 것 같은데, 아직 코로나19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몇 달 뒤 생각해보자고 했다”며 웃었다.

평창 역주행 "다행스러운 일" 

2018평창올림픽에 등장한 드론 오륜. 송 감독은 "내가 도쿄 감독이라면 바로 직전에 썼던 드론은 안썼을텐데, 이번에 드론을 그대로 쓴 건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평했다. SBS 유튜브 캡쳐

2018평창올림픽에 등장한 드론 오륜. 송 감독은 "내가 도쿄 감독이라면 바로 직전에 썼던 드론은 안썼을텐데, 이번에 드론을 그대로 쓴 건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평했다. SBS 유튜브 캡쳐

송 감독은 이번 올림픽을 “의미는 많았지만 감동은 적었다”고 요약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감탄할 만한 씬이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장 이상했던 장면을 묻자 “폐회식의 ‘도쿄온도’는 세계인이 공감하기 어려웠고, ‘리멤버 프로토콜’의 녹색 옷 춤도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개회식 해설을 하던 중 나무 오륜을 보고 멈칫 한 뒤 '조금 싱거웠'다고 실시간으로 평했던 그는 “사실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싶어서 해설을 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코로나 상황이라 ‘화려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더해, 바로 3년 전에 쓴 드론‧이매진을 그대로 쓰는 데 거부감이 없었고, 일본 전통을 글로벌하게 풀어내는 창의성이 부족했다”는 평이다.

김새는 개회식 이후 IOC 유튜브 채널에서 ‘역주행’한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대해선 “도쿄가 너무 잘 만들어서 평창이 비교당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거꾸로 고평가를 받게 되니 다행”이라며 “당시 함께 했던 스텝들도 2018년 올림픽 때보다 이번에 연락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코시국’ 올림픽, 코로나 검사만 10번

송승환 예술감독 보관중인 ID 카드들. 맨 위에 가장 최근 다녀온 도쿄올림픽-KBS ID카드가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송승환 예술감독 보관중인 ID 카드들. 맨 위에 가장 최근 다녀온 도쿄올림픽-KBS ID카드가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 진행된 올림픽이라, 송 감독은 개‧폐회식을 위해 일본을 두 차례 오가는 동안 코로나 검사를 10번이나 받아야 했다. 도쿄 시내에도 나가지 못해, 식사는 호텔 조식 아니면 도시락으로 모두 해결했다.

역대급 폭염이 덮친 도쿄에서 해설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송 감독은 “해설을 하는 중계석은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오픈석이었다”며 “화장실을 계속 갈 수 없으니 물도 마음대로 못 마시고, 현장 중계가 처음인데 이런 고충이 있는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긴장 탓에 개회식 전날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지만, 국가대표 출신 해설위원들이 파스, 마그네슘 등을 챙겨줘 싹 나았다고도 했다.

30㎝ 앞 보이는 시력, 글씨 탁구공만하게 보며 해설

송승환 예술감독이 자신의 패드에 기록된 글을 읽는 장면. 현지에서 해설을 준비하면서, 헷갈리는 연도나 일본어 이름 등을 미리 패드에 크게 적어두고 확대해가며 확인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송승환 예술감독이 자신의 패드에 기록된 글을 읽는 장면. 현지에서 해설을 준비하면서, 헷갈리는 연도나 일본어 이름 등을 미리 패드에 크게 적어두고 확대해가며 확인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 1월 처음 KBS에서 해설을 제안했을 땐, 시력 때문에 한 차례 고사했었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급격히 눈이 나빠진 송 감독의 시력은 30㎝ 정도 이내만 식별이 가능하고, 대체로 짙은 안개가 낀 듯 뿌옇게 보인다. 다행히 지금은 더 나빠지지는 않고 현상 유지 중이다.

그러자 KBS측은 여러모로 궁리한 끝에, 중계석에서 모니터로 화면을 보면서 해설할 수 있도록 했다. 현지 중계석에 앉아 그라운드가 아닌 27인치 모니터를 보면서 해설을 한 것이다. 그는 “오히려 시청자들과 같은 화면을 보면서 하는 거라, 괜찮겠다 싶었다”며 “개회식 리허설은 망원경과 확대 VR 프로그램으로 현장을 미리 봐둬서 조금 더 수월했다”고 전했다.

지금은 아이패드에 주로 의존한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쓰고, 글자를 확대해서 보기에도 편해서다. 이번 올림픽에선 잘 안 외워지는 일본어 이름을 중계 전날 아이패드에 직접 크게 써서, 해설 중간중간 확대해서 보며 확인했다. 탁구공 사이즈쯤 되면 보인다.

올림픽 준비 기간 책도 오디오로 모두 들었다. 『국화와 칼』은 오디오북이 없어서 직접 책을 스캔해 음성 전환 앱을 돌려야 했다. 송 감독은 “이제 많이 요령이 생겨서, 1시간 보면 눈을 감고 잠시 쉰다든가 하며 피로하지 않도록 한다”며 “안 보이는 데 익숙해졌고, 미리 자료준비를 많이 해서 보완했다”고 전했다.

'난타' 멈췄지만 '원더풀라이프' 유튜브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배우 김영옥 편. 아역시절부터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이순재, 김영옥, 고두심, 박인환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을 샅샅이 풀어낸다. 송 감독은 "일종의 아카이빙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캡쳐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배우 김영옥 편. 아역시절부터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이순재, 김영옥, 고두심, 박인환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을 샅샅이 풀어낸다. 송 감독은 "일종의 아카이빙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캡쳐

지난 8일 도쿄올림픽 폐회식 해설을 마치고 9일 귀국한 그는 연일 지방일정 등으로 바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1년 넘게 ‘난타’ 공연은 멈춰있지만, 영상 관련 회사를 만들어 영상을 만들고 있다. 원로 배우들의 삶을 풀어 듣는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도 8개월째 운영 중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공연을 중단했던 연극 ‘드레서’도 11월부터 다시 무대에 올린다. 성균관대 문화예술 미디어융합원장으로 있으면서 ‘크리에이티브 브릿지 페스티벌 축제’도 올해 2회째 열 예정이다.

지치지 않고 다양한 일을 꾸준히 하는 그지만 앞으로 포부를 묻자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잘했으면 좋겠다”고 짧게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1년 반 넘게 회사가 휑해 삶의 낙도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나 1959년생 금메달리스트가 나온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그는 많은 걸 느낀 듯했다. “옛날엔 65살은 해설자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이젠 자기 분야를 꾸준히 한 사람은 계속 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배우고, 프로듀서니 꾸준히 연기‧연출을 하다 보면 이번 올림픽처럼 새로운 기회가 또 생기지 않겠나”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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