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규장각 재임용 논란…김시덕 "서울대 순혈주의, 난 이물질"

중앙일보

입력 2021.08.17 14:12

업데이트 2021.08.17 15:22

"'이물질'이 들어와 있는 게 싫었던 거죠."
15일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씁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2017년에도 규장각과 재임용 갈등
"비서울대 찍어누르기 횡포"

김 교수는 최근 한국 인문학계가 배출한 몇 안 되는 스타 학자다.
『동아시아, 대륙과 해양이 맞서다』 『일본인 이야기』 『그들이 본 임진왜란』 『서울 선언』 등의 책을 통해 대중적 팬덤을 확보했다. ‘김시덕의 전쟁사·문헌학·대서울 연구소’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대중적 소통도 활발히 한다. 그가 쓴 『일본의 대외전쟁』은 2017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됐고, 『동아시아, 대륙과 해양이 맞서다』는 일본과 대만 등에서 출간되는 등 학술 가치도 인정받았다. 일본고전문학학술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다.

김시덕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HK교수는 한국연구재단에서 하는 프로젝트 관련 연구를 수행한다. [중앙포토]

김시덕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HK교수는 한국연구재단에서 하는 프로젝트 관련 연구를 수행한다. [중앙포토]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달리 규장각 안에서는 진통을 겪었다. 2017년 ‘연구 실적 기준 미달’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김 교수는 "'비서울대' '일본학' 등의 이유로 연구원 안에서 눈엣가시로 여겨졌다"고 토로했다. (김 교수는 고려대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했다) 논문 심사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확산하자 당시 서울대 본부는 “인문대학의 평가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재심사를 지시했다. 김 교수는 2017년 8월 재임용(임기 4년)됐다. 그런데 이번 재임용 심사에서 당시와 같은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재임용심사에서 탈락한 이유는 뭔가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연구 실적 기준 미달’이다. 6편의 연구논문 중 3편이 '우' 미만의 평가를 받았다. 재임용 심사를 통과하려면 4편 이상이 '우' 이상을 받아야 한다. 2017년과 똑같다. 그때도 3개 논문만 '우' 이상을 받았다. 또 당시에도 하나의 논문이 ‘수’에서 ‘가’까지 평가가 엇갈려 공정성 논란이 일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논문에서 '가'~'수'가 나왔고, 심사위원 5명 중 2명이 낮은 점수를 줘서 평균을 낮췄다. 논문 실적을 정량이 아닌 정성평가로 하는데 일부가 마음먹고 나쁜 점수를 주면 떨어뜨리는 게 가능한 시스템이다.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이렇게 평가가 극단적인 경우는 보기 어렵다.

2019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된 『일본인 이야기』 [사진 메디치]

2019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된 『일본인 이야기』 [사진 메디치]

-4년 만에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왜 그럴까.
=2013년 첫 임용 당시부터 규장각 및 서울대 안에서 말이 많았다고 전해듣고 있다. 이른바 한국사학계의 '메카' 아닌가. 제가 소위 애국적 국학자도 아니고, 국제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학자인데다 '비서울대' 출신이다 보니 규장각에서는 내가 이물질이자 눈엣가시였던 것 같다. 꼭 찍어내야겠다는 의도가 없는 이상 동료 교수가 '수'로 평가한 논문에 '가'를 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애초에 규장각에서 받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닐까
=당시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고 보고 나를 받아들였다. 그런 흐름을 주도한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장이 퇴임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애초에 규장각 구성원 다수가 그런 시각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서울대 국사학과는 나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안다.

서울대 국사학과 일부 교수와 김 교수의 갈등은 더는 비밀이 아니다.
2017년 서울대 본부의 지시로 재심사 후 탈락에서 재임용으로 번복되자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그해 9월 대자보를 붙여 성낙인 당시 서울대 총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오 교수는 대자보에서 “무엇을 근거로 인문대의 재임용 불가 의견을 뒤집었느냐”며 “그(김시덕 교수)의 연구 성과는 결격이며 규장각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기를 앞세우는 이가 소속 교수로 굳건히 자리 잡은 기관이 되었다”고 반발했다.

김시덕 교수는 독서클럽 '트레바리'에서 클럽을 이끄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해왔다. [사진 트레바리 캡쳐]

김시덕 교수는 독서클럽 '트레바리'에서 클럽을 이끄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해왔다. [사진 트레바리 캡쳐]

-활발한 대외활동이 보수적 학계 분위기와는 튄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면도 있다. 학계에선 여전히 학문에만 열중하기를 바라고 그런 선배 학자들의 생각을 거스르며 대외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서울대는 더욱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다. 교수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긴다. 미국이나 유럽 또는 일본 학자들은 책이 나오면 열심히 홍보하고, 독자나 대중들과 온라인을 통해 활발하게 교류하는데 한국학계는 매우 갇혀있다. 이참에 규장각이라는 기관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서울대의 자산처럼 운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규장각은 조선 시대에 국가가 운영하는 독립기관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이를 경성제국대학에 넘기면서 지금의 서울대로 이어진 것이다. 해방됐으니 이제 국가기록원처럼 독립기관으로 자리 잡는 것이 맞다. 규장각에는 각종 고문서나 자료들이 많아 각종 연구사업이 들어오는데, 서울대 부속 기관으로 있다 보니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 등 서울대 내부 한국학 관계자들이 상당한 지분을 가져가게 된다. 교수 자리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순혈주의에 규장각이 이용되는 건 국가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시덕 교수가 낸 『서울 선언』 [사진 열린책들]

김시덕 교수가 낸 『서울 선언』 [사진 열린책들]

김 교수는 얼마 전 교육부에 재임용 탈락에 대한 교원소청심사를 신청했다. 또 서울대 측에 소명서를 제출하면서 국사학과 출신들과 2017년 및 이번 재임용 심사에서 부적격 결정을 내린 인사들이 향후 인사에 관여하지 않도록 해줄 것과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무실 분리 등을 요구했다. 김 교수는 "그간 규장각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젝트에서 배제되는 등 따돌림을 당해왔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런 김 교수의 주장에 대해 17일 서울대 규장각 측은 “아직 진행중인 사안이라서 현재 규장각에서 따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충북 단양 한일시멘트 공장에서 김시덕 교수 [사진 열린책들]

충북 단양 한일시멘트 공장에서 김시덕 교수 [사진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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