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남 대법관’ 공식 깨는 오경미…대법원 난민 판례도 깼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17 05:00

업데이트 2021.08.17 11:57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판결에 반기를 들었던 대법관 후보자가 있다. 지난 11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한 오경미(52·사법연수원 25기)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고법판사다.

그는 오는 9월 퇴임하는 이기택(62·연수원 17기)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됐다. 이 대법관이 퇴임하고 오 후보자가 국회 임명동의를 거쳐 최종 임명되면 ‘서(울대)·오(십대)·남(성)’ 기존 공식을 깨고 입성하는 첫 대법관이 된다. 대법관 임명 당시 연령으로 ‘서오남’ 50%가 무너지고 여성 대법관이 역대 최다인 4명(28.6%)이 된다.

오 후보자가 수십년간 한국 대법원을 지배해온 대법관 구성룰을 깨게 되는 셈이다. 그는 올해 5월 창립된 법원 내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 초대 회장이자 젠더법연구회 회원 출신이기도 하다.

젠더법 출신 오경미 대표 판례는 성소수자 난민 소송

오경미 대법관 후보자. 대법원 제공

오경미 대법관 후보자. 대법원 제공

그런 오 후보자가 자신의 주요 판결로 꼽은 사건이 2018년 서울고법에서 주심으로 기존 대법원 판결을 깬 ‘우간다 양성애자 난민 소송’이다.

이 소송은 2016년 시작돼 지난해 8월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5번의 심급에서 3차례 재판 결과가 뒤바뀔만큼 치열하게 다툰 사건이었다. 1심은 난민 불인정, 2심은 난민 인정 결론이 옳다고 봤는데, 3심째 대법원이 “2심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오 고법판사는 4번째 재판인 파기환송심에서 주심으로 참여해 앞서 대법원이 파기한 2심과 같이 “난민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 냈다. 추가 증거와 심리를 통한 결론이었다. 이후 판결은 재상고심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양성애자’라고 경찰에 체포→한국으로 온 우간다 여성  

난민 심사를 받고 있는 외국인. 김성룡 기자

난민 심사를 받고 있는 외국인. 김성룡 기자

우간다에서 양성애자로 지목돼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여성 A씨는 2014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얼마 뒤 A씨는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신청을 냈고 거부당한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A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다.

A씨는 출입국 당국에서 받은 난민면접과 1심이 진행된 서울행정법원에서 그동안 자신이 양성애자라서 겪은 일들을 상세하게 진술했다.

그녀의 모국인 우간다에서는 동성애를 법으로 처벌했다. A씨는 16살쯤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됐고, 대학 때 동성인 여성과 교제했으며 이를 알게 된 자신의 계모가 자신을 신고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마을 총회에서 A씨의 출석을 요구했으나 A씨는 응하지 않았고, 이윽고 경찰에 체포돼 구금당한 뒤 경찰로부터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는 점도 털어놨다. 그 후 얼마 뒤 친구의 도움으로 보석금을 내고 석방돼 인근 마을에 숨어 지냈으며, 이후 A씨는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대법 “동성애 진술 및 성폭행 피해 못 믿는다”

2017년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A씨 진술의 신빙성이 낮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가 난민면접에서 진술한 내용과 1심 재판에서 진술한 내용에 세부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법원이 ‘진술 불일치’라고 판단한 부분은 A씨의 첫 동성 성관계와 관련한 진술이었다. A씨가 난민 면접 때는 16살 때 일이라고 대답했었는데, 1심 법정에서는 대학 때 일이라고 말을 바꿔 성관계에 대한 시점과 상대방에 대한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진술 불일치가 A씨의 궁박한 사정이나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비롯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이 A씨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경찰로 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진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여성인 A씨가 동성애를 이유로 체포ㆍ구금됐고, 경찰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면 그것이 가장 큰 피해이자 난민 인정의 중요 근거가 될 사정”이라면서 “A씨는 난민 면접 당시에는 이에 대해 진술하지 않다가 재판 과정에서야 비로소 진술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가 성폭행 당했다는 취지의 주장은 허위나 과장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 “A씨 진술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2018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2부(부장 양현주)는 대법원의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A씨가 난민 면접과 1심 법정에서 일부 진술을 달리한 부분을 꼼꼼히 살폈다. A씨는 난민 면접에서 16세 때의 ‘관계’에 대해 진술했는데 법원은 ‘관계’라는 말에 대한 한국과 우간다 사이 언어 감각 차이나 동성애에서 ‘관계’라는 말이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또 난민면접 당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나 낯선 국가에서 이뤄지는 면접 상황, 조사관의 질문에 수동적으로 답했어야 했을 A씨의 궁박한 심리를 생각하면 개인적인 성적 취향이나 여성과의 성관계 경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법원은 “통역상의 오류나 심리적 위축 등 때문이라는 A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바가 아니다”라며 A씨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인정했다.

“성폭행 사실은 허위·과장일 가능성이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서도 “허위·과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뒤집었다. A씨가 난민 면접 때는 “경찰에서 구타·고문을 당하고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추상적으로 말하는 데 그쳤지만, 법정에서는 다를 수 있다는 취지다. 법원은 “1심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면서 비로소 경찰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상세히 진술할 개연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으므로 A씨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허위ㆍ과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파기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과 다르게 판결했지만, 지난해 재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오 고법판사가 주심이었던 이 판결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실제로 양성애를 이유로 난민 지위가 인정된 첫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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