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다" AZ 맞고 쓰러진 간호조무사 첫 산재 인정

중앙일보

입력 2021.08.17 05:00

간호조무사 홍씨는 퇴원 후에도 재활치료를 위해 수많은 약을 복용하고 있다. 사진 이씨 제공

간호조무사 홍씨는 퇴원 후에도 재활치료를 위해 수많은 약을 복용하고 있다. 사진 이씨 제공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

아내의 산업재해 판정을 이야기하다 남편은 말끝을 흐렸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은 뒤 쓰러졌던 아내 홍모(44)씨는 지난 10일 휴업급여로 800여만원을 받았다. 백신 접종 뒤 이상 증상에 시달린 4달간의 월급 일부를 보전받게 된 것이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은 홍씨의 피해를 산업 재해로 인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생긴 후유증과 업무 관련성을 인정해 산업재해가 된 건 처음이었다.

남편 이모(47)씨는 “산재가 인정돼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백신 접종 후 쓰러졌는데도 산재 인정은커녕 보상조차 받지 못한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우선 접종 후 시작된 투병

간호조무사 홍씨는 백신 접종 뒤 피부괴사 등 증상이 나타났다. 사진 이씨 제공

간호조무사 홍씨는 백신 접종 뒤 피부괴사 등 증상이 나타났다. 사진 이씨 제공

경기도 고양시 한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조무사 홍씨는 지난 3월 직장에서 AZ 백신을 맞았다. 병원 근무자였기에 우선 접종 대상이 됐다. 접종 뒤 가벼운 두통 증세가 왔을 땐 곧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상태가 악화했다. 사물이 겹쳐 보이는 ‘양안 복시’ 증상이 나타났다. 며칠 뒤엔 팔다리가 마비됐고 결국 쓰러졌다. 의료진은 면역 반응 관련 질환인 급성 파종성 뇌척수염이라고 진단했다. 담당 의사는 “최소 6개월에서 1년간 치료와 재활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위기는 넘겼지만, 1주일 만에 400만원을 넘어선 병원비가 걱정이었다. 통원치료를 고민하던 부부에게 악재가 겹쳤다. 질병관리청이 “홍씨의 증상과 백신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보상을 받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부부는 “당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 5월 부부의 사연을 알게 된 문재인 대통령이 “치료비 지원 등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세심하게 살피라”고 하면서 희망이 생겼다. 정부는 백신 접종 이후 중증 이상 반응이 발생했으나 인과성 근거가 부족해 보상을 받지 못한 환자에게 최대 1000만원까지 진료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홍씨는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이 발생한 시기가 시간적 개연성이 있으나 백신과 이상 반응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에 속하면서 보상 대상이 됐다.

‘산재 신청’에 희망 건 부부  

질병관리청은 홍씨의 증세에 대해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 라고 판단했다. 사진 이씨 제공

질병관리청은 홍씨의 증세에 대해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 라고 판단했다. 사진 이씨 제공

진료비 부담은 덜었지만 간병비 등은 여전히 문제였다. 회사원인 이씨는 간병인을 써야 했다. 그는 “치료가 길어지면 나중엔 치료비보다 간병비가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됐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산업재해 신청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코로나19 백신 후유증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적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신청을 받은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 재해조사를 하고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를 열었다. 감염내과, 직업환경의학과 및 법률전문가 등 7인으로 구성된 판정위는 질병 인정 여부를 검토한 뒤 지난 6일 홍씨를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신청 3개월 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홍씨가 우선 접종 대상에 해당해 사업장의 적극적인 안내에 따라 백신을 접종한 점, 접종이 업무 시간으로 인정된 점, 접종하지 않을 경우 업무 수행이 어려운 점 등을 볼 때 업무와 관련된 접종이 인정된다”면서 “백신 이상 반응을 유발할만한 기저질환 등이 없고 접종과 이상 반응 유발 간 시간적인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상 반응으로서 신청 상병에 대한 선례가 없거나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질병관리청의 판단이 있었지만, 이 점이 홍씨를 산업재해라고 인정하지 않을 근거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게 공단 측의 판단이다.

“우린 운이 좋은 것. 갈 길 멀다” 

최근 홍씨는 1주일에 2~3번 병원을 찾고 있다.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받게 된 만큼 당분간은 병원비 걱정 없이 재활에만 힘쓸 예정이다. 아내가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어도 이씨는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관련해 총 6건이 산업재해 인정 심사를 앞두고 있다. 대부분이 보건·의료 부분 종사자라고 한다. 이씨는 백신 접종 뒤 이상 반응이 온 이들의 모임에도 계속 참여하면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국가가 믿고 맞으라 한 백신이잖아요.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지는 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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