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이면 다 아는 ‘지인능욕’···n번방 없애도 성범죄 판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17 05:00

어린이 성폭력 이미지그래픽. 중앙일보

어린이 성폭력 이미지그래픽. 중앙일보

초등학생 A(11)군은 몇 달 전부터 SNS를 통해 알게 된 한 남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협박을 받고 있다. 몇 차례의 채팅을 통해 친해진 남성과 온라인 게임도 같이했었지만, 얼굴과 몸 사진을 보내달라는 요구에 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유포하겠다는 협박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이어져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찾았으나 아직까지 경찰 신고는 하지 못하고 있다.

n번방 이후에도 여전한 디지털 성범죄

SNS에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가해 게시물 사례. 탁틴내일 제공

SNS에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가해 게시물 사례. 탁틴내일 제공

16일 아동·청소년 인권보호단체인 ‘탁틴내일’에 따르면 이와 같은 사례처럼 SNS에선 여전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성년자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SNS가 디지털 성범죄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단체가 지난해 8월부터 6개월 간 트위터 내에서 디지털 성범죄 게시물을 모니터링 한 결과 불법촬영과 아동 성착취물 등 총 2165건의 게시물이 적발됐다. 이러한 게시물들은 #지인,#키즈,#고딩합성,#노예,#무료 등의 키워드를 통해 손쉽게 검색이 가능했다. 탁틴내일 측은 “피해자의 얼굴 사진과 신상정보를 함께 게시해 능욕하는 가해 게시글이 1231건으로 가장 많았다”며 “영상물이 담긴 폴더사진을 인증하는 방식으로 불법 촬영물이나 아동성착취 영상을 판매하는 경우도 689건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변종 해시태그로 퍼지는 은밀한 거래제안

SNS에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가해 게시물 사례. 탁틴내일 제공

SNS에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가해 게시물 사례. 탁틴내일 제공

탁틴내일에 따르면 트위터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게시물이 만연했다. 페이스북에선 신체나 행위 등을 담은 특정 키워드를 검색할 경우 성착취물을 판매하는 그룹이 검색됐다. 특정 해시태그가 금지된 인스타그램에선 특수기호와 이모티콘을 활용한 이른바 ‘섹코드’라 불리는 변종 해시태그가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게시물을 신고해도 조치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탁틴내일이 트위터에 1890건의 디지털 성범죄 게시물을 신고했으나 계정중지나 삭제 등의 조치가 이뤄진 건수는 57건(3%)에 불과했다. 탁틴내일 측은 “개인정보를 포함하는 경우 바로 삭제되는 경우도 있으나 개인정보의 범위가 협소하고 제재조치의 기준이 모호하다”며 “피해자의 사진과 이름, 지역을 게시한 지인능욕의 경우에는 삭제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밝혔다.

부모 알까봐 신고 꺼리는 아동·청소년 피해자

SNS에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가해 게시물 사례. 탁틴내일 제공

SNS에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가해 게시물 사례. 탁틴내일 제공

이러한 상황에서 아동·청소년들은 SNS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있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관련 은어나 해시태그에 익숙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1학년을 가르치는 남모(25) 교사는 ”성교육 과정에서 ‘지인능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이들이 익숙한 듯 이 용어를 사용하며 서로 장난을 쳤다”며 “이런 단어들을 평소에 많이 접해봤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 아이들이 실제 피해를 겪어도 신고를 하지 않아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석희진 탁틴내일 활동가는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성착취물 유포자에게 협박을 당해도 부모님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고 혼날까 봐 신고를 꺼린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이 모인 한 온라인 카페에선 “신고하면 부모님한테도 연락이 가느냐” “부모와 함께 경찰서에 꼭 가야 하느냐” 등의 질문들이 올라왔다.

‘신뢰관계 동석인’ 적극 활용해야

SNS에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가해 게시물 사례. 탁틴내일 제공

SNS에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가해 게시물 사례. 탁틴내일 제공

성범죄 피해를 겪은 아동·청소년들이 반드시 부모와 함께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따라 성폭력 상담소 직원이 ‘신뢰관계 동석인’으로 부모 대신 피해 사실을 신고하거나 진술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석 활동가는 “경찰서에 가면 부모님에게 고지하는 게 원칙이라는 말을 한다”며 “관련 규정을 보여주며 경찰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 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간의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자녀가 온라인 그루밍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당했을 때 부모님들은 아이를 향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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