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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빈 명동 건물에 떡…거대 매장 낸 나이키 승부수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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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휑한 서울 명동거리. 이곳에 지난 12일 글로벌 1위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가 3층짜리 대형 매장을 열었다. 전체 2300㎡(약 700평) 규모의 유리로 된 ‘나이키 서울’은 디지털 경험을 강조한 나이키의 신개념 매장 ‘나이키 라이즈(Nike Rise)’의 세계 두 번째 매장이다. 1호점은 지난해 여름 중국 광저우에 냈다.

서울 명동 '눈스퀘어'에 문을 연 '나이키 서울' 모습. 의류 브랜드 H&M이 코로나19 타격으로 철수한 뒤 약 6개월간 비어있던 자리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서울 명동 '눈스퀘어'에 문을 연 '나이키 서울' 모습. 의류 브랜드 H&M이 코로나19 타격으로 철수한 뒤 약 6개월간 비어있던 자리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한 마당에 이런 거대한 매장을 낸 이유가 뭘까. 사실 나이키야말로 10년 전부터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사활을 걸어 코로나 위기에도 온라인 부문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디지털 선두 기업이다. 최근 분기(3~5월) 매출도 전년 대비 두 배, 코로나 전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늘어난 123억 달러(약 14조원)를 기록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오리건주 비버튼의 나이키 본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대니얼 히프 부사장. 2018년 나이키 입사 전 버버리 디지털 담당 수석 부사장, BBC 월드와이드 최고디지털책임자 등을 지냈다. 철인3종 경기 등 스포츠 마니아다. 사진 나이키

미국 오리건주 비버튼의 나이키 본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대니얼 히프 부사장. 2018년 나이키 입사 전 버버리 디지털 담당 수석 부사장, BBC 월드와이드 최고디지털책임자 등을 지냈다. 철인3종 경기 등 스포츠 마니아다. 사진 나이키

“디지털은 전자상거래나 화상회의 기술이 아니에요. 고객의 관심은 디지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브랜드를 사용하면 기분이 좋은가 하는 것이죠. 핵심은 그게 뭔지 알아내서 디지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제약 없이 즐길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개장 당일 화상으로 만난 대니얼 히프 나이키 글로벌 부사장은 이번 서울 매장이 나이키가 추구하는 디지털의 모습을 세계에서 가장 잘 구현한 곳이라고 했다. 나이키의 디지털 전략 전반을 총괄하고 있는 그에게 ‘진짜 먹히는’ 디지털이 뭔지 들어봤다.

기존 매장들과 뭐가 다른가.
‘도시-스포츠-소비자’를 연결한다는 점이다. 그 수단이 바로 디지털이다. 지난해 광저우에서 처음 시도했고 1년 동안 배운 많은 아이디어를 녹였다. 서울 매장은 고객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점들을 뽑아 합쳐놓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매장이다.  
나이키가 독자 개발한 디지털 플랫폼 '스포츠 펄스(Pulse)'. 서울에서 이뤄지는 실시간 스포츠 정보와 나이키의 NTC·NRC 앱의 활동 통계 등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소아 기자

나이키가 독자 개발한 디지털 플랫폼 '스포츠 펄스(Pulse)'. 서울에서 이뤄지는 실시간 스포츠 정보와 나이키의 NTC·NRC 앱의 활동 통계 등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소아 기자

히프의 말은 매장을 둘러보면 이해할 수 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솟아있는 대형 스크린엔 날씨 정보는 물론 지금 서울에서 몇 명이 뛰고 있는지, 어느 구에서 제일 많이 뛰고 있고 몇 시간을 달렸는지 등이 상황판처럼 좍 뜬다.
이게 가능한 건 나이키 회원(멤버)들이 사용하는 NTC(나이키 트레이닝 클럽)와 NRC(나이키 러닝 클럽) 앱 덕분이다. 데이터를 모아 이를 바탕으로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스포츠 활동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시도해 나이키 회원들만의 ‘세계’가 구축되는 구조다.

다른 대도시도 많은데 왜 서울인지.
전 세계에 한국만큼 5G(5세대 이동통신) 인프라가 잘 깔리고 기술에 익숙한 나라는 없다. 앱으로 물건을 사고 호텔과 공연을 예약하는 게 너무 자연스럽다. 게다가 한국엔 스포츠와 관련한 강한 트렌드가 있다. 서울 매장은 온·오프라인 결합 매장의 벤치마크고 전 세계 매장이 이를 따라올 거다.
나이키 서울 매장의 '그랩앤고' 공간. 필요한 스포츠 장비를 골라 직접 셀프 체크아웃할 수 있다. 운동 후 마시기 좋은 건강음료도 판다. 생각날 때 바로 운동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에서 만든 공간이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나이키 서울 매장의 '그랩앤고' 공간. 필요한 스포츠 장비를 골라 직접 셀프 체크아웃할 수 있다. 운동 후 마시기 좋은 건강음료도 판다. 생각날 때 바로 운동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에서 만든 공간이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스포츠 트렌드는 미국이나 유럽이 더 강하지 않나.
스포츠가 뭘까. 달리기와 야구, 축구? 이제 스포츠의 범주는 댄스·요가·필라테스·영양·숙면·회복은 물론 자녀양육과 명상(mindfulness)까지 넓어졌다. 나이키는 수년간 이런 트렌드를 눈여겨봤는데 코로나19로 추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한국엔 삶의 다양한 요소에서 웰빙을 원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  

서울 매장도 건강한 삶과 관련한 체험 거리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회원들은 나이키에서 마련한 각종 활동과 행사를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다. 실시간 라이브 방송 공간이 있어 제품의 모양이나 소재, 사이즈에 대한 상담을 받거나 전문가가 제공하는 수면·면역력 강의를 듣기도 한다.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나이키 직원들과 소통하는 '브로드캐스트 부스'. 온라인 구매 시 제품의 모양과 사이즈, 소재 등에 대한 상담, 전문가의 강의 등을 들을 수 있다. 이소아 기자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나이키 직원들과 소통하는 '브로드캐스트 부스'. 온라인 구매 시 제품의 모양과 사이즈, 소재 등에 대한 상담, 전문가의 강의 등을 들을 수 있다. 이소아 기자

자신의 개성과 취향대로 의류와 모자·가방·신발 등을 꾸밀 수 있는 맞춤형 제작 공간. 최재훈 작가 등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한 스티커와 패치가 있다. 이소아 기자

자신의 개성과 취향대로 의류와 모자·가방·신발 등을 꾸밀 수 있는 맞춤형 제작 공간. 최재훈 작가 등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한 스티커와 패치가 있다. 이소아 기자

'나이키 서울' 매장 직원이 즉석에서 무늬없는 티셔츠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모습. 이소아 기자

'나이키 서울' 매장 직원이 즉석에서 무늬없는 티셔츠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모습. 이소아 기자

마음에 드는 스티커나 패치로 티셔츠나 신발을 꾸며 세상에서 하나뿐인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신발 두 개를 올려놓으면 전자태그를 통해 각각의 정보를 화면으로 보고 비교하는 디지털 테이블도 눈에 띈다.

원하는 신발을 골라 테이블에 올려 놓으면 자동으로 감지해 디스플레이에 제품의 상세 설명을 띄워주는 '인사이드 트랙'. 전자태그 기술을 적용했다. 이소아 기자

원하는 신발을 골라 테이블에 올려 놓으면 자동으로 감지해 디스플레이에 제품의 상세 설명을 띄워주는 '인사이드 트랙'. 전자태그 기술을 적용했다. 이소아 기자

이 밖에 제품을 수선하거나 옷이나 신발을 기부하고 재활용하는 코너, 운동에 필요한 장비나 음료를 골라 셀프 계산한 뒤 들고 나갈 수 있는 코너 등 단순히 스포츠용품을 팔고 사는 과거 매장과는 다르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나이키 신발과 의류를 기부할 수 있다. 이소아 기자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나이키 신발과 의류를 기부할 수 있다. 이소아 기자

코로나 충격을 빠르게 회복한 비결이 있다면.
코로나는 정말 끔찍했지만 그 즉시 스포츠의 정의를 바꿔 ‘나와 이웃을 위해 실내에서 운동하세요(PLAY INSIDE AND PLAY FOR THE WORLD)’란 캠페인을 펼치고 무료 앱으로 실내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거실에서 하는 ‘리빙룸 컵’이란 도전도 기획했는데, 누운 채 발을 위로 들고 45초 동안 손으로 발끝을 얼마나 많이 터치하는지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겨뤄보는 내용이었다. 이런 새로운 시도가 코로나에도 고객이 늘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나이키가 기획한 '리빙룸 컵'에서 홈 트레이닝 동작 기록에 도전하는 모습. 사진 '더선' 홈페이지 캡처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나이키가 기획한 '리빙룸 컵'에서 홈 트레이닝 동작 기록에 도전하는 모습. 사진 '더선' 홈페이지 캡처

나이키가 보는 가장 큰 변화는.
이미 변하고 있던 게 코로나로 가속했다고 본다. 첫째 ‘여성’의 부상이다. 운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으려는 여성들이 크게 늘어 나이키도 여성 스포츠 전문 팀을 꾸렸다. 서울 매장도 1·2층에 걸쳐 요가복 등 한국에서 가장 다양한 여성과 아이들 제품을 마련했다. 둘째,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더 많은 걸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 한다. 온라인으로 산 물건을 매장에서 찾아가는 그런 게 아니라, ‘너무 좋았다’고 기억할 만한 그런 체험 말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 기업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이 정답을 얻기 위해 나이키는 최근 몇 년간 세계 유통망에 퍼져있는 매장을 줄이고 ‘나이키 서울’같은 직영점을 늘리고 있다. 자체 온·오프라인 매장에 집중해 소비자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 사업에 빠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나이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직영점 매출 비중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나이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직영점 매출 비중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급기야 2019년엔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에도 납품 중단을 선언했다. 자체 매장을 운영해 고객과 바로 소통하는 D2C(Direct to Consumer) 매출은 지난해 164억 달러(약 19조2000억원)로 전체 매출의 38.7%까지 올라왔다.

‘디지털 전환’과 D2C는 어떤 관련이 있나.      
결국은 소비자다. 중간 유통단계 없이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걸 알기 위해 온·오프라인 직영매장을 운영하는 거고,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게 디지털이다. 우리가 고민하는 건 전자상거래가 아니라 어떻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느냐다. 육상팀 감독이었던 빌 바우어만(1964년 나이키 공동창업자)이 선수들이 원하는 점을 알아내 딱 맞는 운동화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 전환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핵심은 기업 전체가 디지털 플랫폼에 올라타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나이키는 앱으로 얻은 정보를 경영진이나 온라인 사업부만 보지 않는다. 디자이너와 매장 직원 등 고객과 관련한 모든 직원과 공유하고 더 나은 제품을 더 혁신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디지털은 나이키의 모든 부문과 닿아있는 전사적인 여정(Journey)이다.
디지털 전환을 하려는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인내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에는 시간이 걸린다. 나이키가 잘한 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10년 넘게 디지털 전환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란 점이다. 디지털 전환엔 결승선(finishing line)이 없다. 애초에 소비자의 변화에 따라 시작한 전환인데 코로나 이후 소비자들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위해 계속 변하고 혁신하고 실험해야 한다. 나이키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기존의 스포츠와 새롭게 스포츠가 된 것들을 모두 아우르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앞으로 고객이 원하는 건 뭘까.
운동이 점점 더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될 거라고 본다. 건강뿐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질 거다. 운동이 사람들의 심신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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