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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과 교수가 만든 탄소 포집장치…호주는 정부가 팔 걷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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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광순 씨이텍 대표가 이산화탄소 포집 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구멍이 뚫린 얇은 스테인리스 장치에 특수 용액을 흘려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 강기헌 기자

이광순 씨이텍 대표가 이산화탄소 포집 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구멍이 뚫린 얇은 스테인리스 장치에 특수 용액을 흘려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 강기헌 기자

#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유리관 안에는 미세한 구멍이 뚫린 스테인리스가 가득했다. 여기에 특수 용액을 흘리면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하는 장치가 완성된다. 석탄발전소에서 활용하는 이산화탄소 포집 장치를 축소한 모형이다.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발전이나 철강, 석유화학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탄소 배출 감축이 현안으로 부상한 가운데 이산화탄소 포집 원천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대전 유성의 스타트업 씨이텍을 방문했다.

SK E&S에서 10억 투자 받은 신생아 스타트업 #“CO2 포집 못하면 사업 못해…국내도 저장공간 마련 시급"

씨이텍, SK E&S서 10억 투자 받아  

씨이텍은 지난해 12월 설립한 ‘신생아’ 스타트업이지만 탄소 포집 및 저장, 활용(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을 내세워 SK E&S로부터 올해 10억원을 투자받았다. 특히 씨이텍이 갖고 있는 탄소 포집 기술은 화석 연료를 사용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경감시키는 기술로 미국이나 호주 등의 기술력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성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지난 4일 만난 이광순 씨이텍 대표는 "탄소 포집 없이 탈탄소 사회는 불가능하다”며 "우리도 서둘러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기술을 더욱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에서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과 함께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화력발전소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은 흔히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씨이텍은 이중에서도 습식 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습식이 포집 효율이 높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령 화력발전소에선 습식 포집 기술을 활용해 매일 10t 규모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중이다.

넷제로 달성 위해 탄소 포집 필수  

이산화탄소 포집은 국제 에너지업계에서도 탈탄소 사회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징검다리 기술로 불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CCUS 없이 넷제로(탄소 순배출량이 0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특히 철강이나 석유·화학 등 탄소 다배출 산업에서는 CCUS가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IEA는 2070년 넷제로에 도달하기 위해선 CCUS가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15%를 책임져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광순 씨이텍 대표가 이산화탄소 포집 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구멍이 뚫린 얇은 스테인리스 장치에 특수 용액을 흘려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 강기헌 기자

이광순 씨이텍 대표가 이산화탄소 포집 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구멍이 뚫린 얇은 스테인리스 장치에 특수 용액을 흘려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 강기헌 기자

원유 생산량 늘리는 목적으로 개발 

CCUS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건 최근이지만 이 기술이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다. CCUS 기술이 탄생한 건 1970년대 무렵으로 원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개발됐다.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미 텍사스주 발전소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페트로 노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2016년 12월 시작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모은 이산화탄소는 셰일오일 채굴 등에 재사용한다. 원유 생산성을 높이고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기술이다. 미국은 이산화탄소 포집·저장을 장려하기 위한 세금 공제 제도인 45Q를 도입해 운영 중으로 이산화탄소 1t당 최대 50달러(약 5만8000원)의 세금 크레딧을 부여한다.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활용을 표현한 개념도.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활용을 표현한 개념도.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가스 파고 이산화탄소 묻는 호주

최근 CCUS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호주다. 가스와 석탄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호주는 최근 이산화탄소 포집·저장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가스와 석탄을 채굴한 뒤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게 핵심이다. 키스 피트 호주 자원부 장관은 지난 6월 “호주 연안에 대규모 이산화탄소 저장소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산화탄소 걱정 말고 호주 자원 개발에 투자해달라는 취지다.

국내 기술력 선진국 수준, 저장 공간이 문제

국내에서도 씨이텍 같은 기업의 이산화탄소 포집 능력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다. 문제는 저장 공간이다. 이산화탄소를 묻기 위해선 지하 등에 대규모 저장공간이 필요하다. 이때문에 호주에 가스전을 둔 SK E&S 등은 국내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호주 가스전으로 가져가 저장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재 국책 연구기관 등이 서해에서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탐사하는 중이다.

이 대표는 “2억t 규모의 저장 공간을 확인했다는 얘기도 있다”며 “저장소가 확보될 경우 한국도 이산화탄소 포집 분야에서 앞서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400만t 이상의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을 계획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로 2022년 6월 천연가스 생산이 종료되는 동해 가스전을 활용한 이산화탄소 저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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