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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 논설위원이 간다

"이준석, 예능 PD인양 주인공 되려 해" "후보 요청 호응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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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및 최고위원들을 예방해 이 대표와 함께 회의장 배경막에 있는 '로딩중' 그래프에 배터리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및 최고위원들을 예방해 이 대표와 함께 회의장 배경막에 있는 '로딩중' 그래프에 배터리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지난 당 대표 경선에서 ‘젊은 후보’를 지지했다. 그는 “내년 대선은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많이 변하느냐의 싸움”이라며 “전당대회를 통한 우리 당의 변화와 혁신에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와의 관계가 나쁠 리 없었다.

[국민의힘 갈등 이면 들여다보니] #호의적이던 원희룡, 공정 경선 의문 #“대표가 경선관리, 공정성 시비 일어” # 이준석 “경준위 관여한 바 없어” #서병수 선관위원장 낙점설도 갈등 #

그런 그가 연일 이 대표를 향해 “오만과 독선의 당 운영을 멈추라”고 비판하고 있다. 당 대표직을 ‘경선 예능 PD’ 쯤으로 여긴다는 말도 했다. 국민의힘의 갈등이 외양상 이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간 불화처럼 보이는데, 그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왜일까.

15일 대구에 있다던 그에게 연락했다. 그는 이 대표와의 근래 대화를 전했다. 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취지였다.
▶원 전 지사=“지금 간첩·백신 등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야당이 대차게 싸워주기를 바라는 게 얼마나 많은데, 대표가 왜 거기엔 앞장서지 않고 자꾸 경선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나. 당원과 바깥의 국민도 부글부글하다.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
▶이 대표=“난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랑 싸우면 오히려 후보들의 메시지가 가려질 수 있다. 현재 국면에서 대정부 투쟁에 앞장서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
▶원 전 지사=“당 대표라면 야당 역할에 대해 대표성을 가지고 해야지, 주관적 판단을 갖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 대표=“내 역할은 윤 전 총장을 입당시키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합당 문제 등 경선 여건을 정리하는 것이다.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실제 대여(對與) 비판을 거의 하지 않는다. 8·15 광복절 메시지도 없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전 국민 재난지원금 합의를 해 논란을 샀다. 메시지 상으로도 그의 관심사는 확연히 경선이다. 그의 압박 때문에 윤 전 총장이 당초 의도보다 조기 입당하긴 했다. 그러나 껄끄러운 관계가 됐다. 국민의당과 합당은 당장은 물 건너갔다. 안 대표가 16일 합당 결렬을 선언했다. 당내 중진은 “안 대표 측이 이런저런 요구를 했다곤 하지만 이 대표가 거칠게 몰아붙여서 우릴 비판하게 해선 안 됐다”고 했다.

원 전 지사의 전언은 이어졌다. 이번엔 경선준비위를 둘러싼 대화였다. 경준위원장이 서병수 의원인데, 이 대표의 비서실장인 서범수 의원의 형이다.

▶원 전 지사=“서 위원장이나 경준위가 당헌·당규상 권한이 없는데, 무슨 농촌 봉사 활동이니 몇 박 며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한다 하고, 이의 상당 부분이 이 대표의 아이디어라고 파다하게 얘기된다. 당 대표가 경선 프로그램이나 경선 관리에 관여하게 되면 나중에 공정성 시비가 걸린다.”
▶이 대표=“나는 경준위에 관여한 바 없다. 그리고 결정된 바 없다.”
▶원 전 지사=“세상엔 비밀이 없다. 이 대표가 누굴 만나서 구체적으로 얼마나 얘기하고 경준위의 누구를 통해서 얘기가 오가는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관여하지 말라.”

지사직을 사퇴한 원희룡 제주지사가 2일 오전 영상으로 진행된 '8월 소통과 공감의 날'에서 제주 공직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사직을 사퇴한 원희룡 제주지사가 2일 오전 영상으로 진행된 '8월 소통과 공감의 날'에서 제주 공직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헌·당규상 권한이 없다”는 건 설명이 필요하겠다. 경준위가 밝힌 최고위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은 ▶경선 일정 등 안을 만들어서 선거관리위에 전달하고 ▶당시 외부 주자(윤석열·최재형)에 비해 열세인 당내 후보들의 인지도를 높일 방안을 기획, 실행하는 것이다. 문제는 외부 주자였던 두 사람이 입당했을 뿐만 아니라 당내 후보들의 자격이 제각각인 걸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이의 제기가 된 ‘후보 자격 논란’이다.

흔히들 13명의 후보가 있다고 하는데, 법적 예비후보(중앙선관위 등록)는 6명(원희룡·유승민·윤석열·최재형·홍준표·황교안)이다. 경준위원장 명의로 받은 당 예비후보는 4명(박진·안상수·원희룡·장기표)이고, 하태경·윤희숙 의원은 출마 선언만 했을 뿐이다. 장성민 전 의원은 출마 선언(15일) 전부터 13명에 넣어줬다. 반면 중앙선관위 예비후보 2명(강성현·오승철)이나 출마 선언을 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은 배제됐다. 자의적 기준이다. 더욱이 당규엔 예비등록을 받는 주체를 선관위로 봤다. 익명을 요청한 한 당 관계자는 “원래 예비후보 등록은 상임고문으로 모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며 “누군 ‘출마한다’고만 말해도 포함하고 또 누군 안 시키고, 그걸 결정할 권한이 경준위에 없는데도 했다. 공당의 대선 경선 절차가 어디 조합장 선거만도 못하게 되어버린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례적인 건 또 있다. 예비후보 등록을 받으며 3000만원을 받았다. 후보 등록 때 기탁금 1억원 중 일부를 미리 받는 형식이라지만 당규엔 없는 일이었다. 3000만원에 맞는 인센티브(이벤트)가 있어야 했는데, 안 낸 사람들에게도 주려 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 예비후보가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게 적었다. 타운홀 미팅 방식의 정견 발표를 염두에 뒀다가 선거법 위반 논란 때문에 토론회로 변경해야 했다. 당규상 토론회는 선관위 소관으로 예비후보가 아닌 후보들 대상이다. ‘웬만하면 경준위 이벤트에 참여한다’는 입장의 최 전 원장이 “모든 주자가 후보 등록을 한 뒤에 (토론회에) 참여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나온 까닭이다.

이 대표 측에서 윤 전 총장이 토론회를 꺼린다고 몰아가나, 규정대로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는 셈이다. 이는 이 대표와 서 위원장이 공정한 경선 관리인인가에 대한 의구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 당직자는 이와 관련, “서 위원장은 실무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했을 때 수긍하는 편이다. 그러나 당 대표가 무리한 요구를 한 건 사실”이란 말도 했다. 이 대표의 “관여한 바 없다”던 말과 거리가 있는 셈이다.

더 큰 뇌관은 이 대표가 서병수 위원장을 선관위원장으로 임명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현재 8명의 최고위원 중 3명이 부정적이다. 키를 쥐고 있는 김기현 원내대표는 “말하기 곤란하다”며 입을 다물었다.

경준위원장이 선관위원장으로 직행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박근혜 체제였던 2012년 새누리당 시절로 김수한 위원장이 6일간의 경준위원장을 지내곤 선관위원장이 됐다. 이보다 5년 전 2007년 경선에선 경준위원장은 김수한, 선관위원장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었다. 박관용·김수한 모두 누구도 비토하지 않는 당 원로다. 이 대표는 원 전 지사에게 “당내 중진 대부분 캠프에 가 있어 (서 위원장 말고) 선관위원장을 할 사람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한다고 한다. 그러곤 윤 전 총장에 대한 불만을 말하며 “윤 전 총장은 금방 정리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과거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지구를 뜨겠다”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언급이다. 다시 원 전 지사와의 대화다.

-한때 이 대표에 대해 호감을 가졌는데.
“지금도 젊은 층과의 대화 채널이나 이런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본다. 당 대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안 하니까. 처음엔 그냥 ‘짐이 무거워서 어려움이 많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 직접 얘기하고 주변 돌아가는 것을 보고 겪으면 겪을수록 (이 대표가) 자아도취 상태에서 아무 얘기도 귀담아듣는 게 없고 말꼬리 잡고 반박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나와도 이렇게 대화할 정도면 윤석열·안철수랑 진행되는 게 저래서였구나 확 감이 왔다.”

-홍준표 의원은 이 대표를 두둔한다.
“윤 전 총장을 죽이면 반사이익이 자신들에게 온다고 보는 거다. 비겁하다. 나는 내가 윤석열과 싸워서 이길 생각인데, 이 대표가 저런 식으로 하는 거에 대해 왜 우리가 가담하나.”

원 전 지사는 그러곤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간 녹취록 사건도 언급했다. 그러곤 이런 말을 했다. “이 대표는 원형경기장 안에 (후보들을 다) 집어넣어서 서로 물어뜯게 하고 누가 이기든 자기가 그 손을 들고나와, 자기가 결국 조련사 역할을 했다고, 주인공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원 전 지사의 공개적인 비판에 ‘방종’이란 취지로 반격한 일이 있다. 후보가 직접 경선 유불리에 대해 말한다는 이유였다. 스스론 “토론회 개최는 최대한 정책과 메시지로 국민과 당원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달라는 후보들의 요청에 경준위가 호응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며 '선의'라고 했다. 지도부를 믿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 ‘이준석 리스크’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한 당료는 “이 대표가 여론전으로 손학규·안철수와 대적하던 바른미래당식 정치를 여기서도 하고 있다”며 “제1 야당의 대표가 됐으면 달라져야 하는데 늘 100대 0으로 이기려 든다”고 했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