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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병일의 이코노믹스

경제대국 넘어 중국체제 우수성 알리는 선전장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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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정치경제학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1. 2008년 4월 27일 서울. 그해 여름 개최된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봉송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행사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시내 곳곳에서 중국의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친(親)중국 시위대가 충돌했다. 시위대는 서로 고함을 지르며 대치했고, 격앙한 중국 시위대는 물병·각목·돌 등을 반대편을 향해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현장을 취재하던 사진기자는 날아온 각목에 맞고 이마가 찢어져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서울시청 잔디광장에서 ‘티베트 자유’ 티셔츠를 입은 미국인·캐나다인들은 중국 시위대에 포위돼 구타를 당했다. 중국 시위대는 광장 맞은편에서 티베트와 대만 국기를 흔들고 있던 반중국 시위대로 몰려가서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했다. 사태를 진정시키려던 한국 경찰은 중국 시위대가 휘두른 흉기에 맞고 머리가 찢어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중국시위대의 다수는 한국에 유학 온 중국 학생들이었다.

경제로 중국 바꾸려던 전략 실패 #서구가 되레 체제 안전 위협받아 #공산당이 중국 경제 전면에 등장 #중국 빅테크도 당 앞에 안절부절

#2. 서울에서의 사태는 그 며칠 전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도 닮은꼴로 연출됐었다.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올림픽 성화는 티베트 시위대와 오성홍기를 휘두르는 중국인 시위대의 충돌을 맞닥뜨렸다. 반중국 구호를 참지 못하는 중국인 시위대는 의회 의사당 앞까지 몰려와 합법적인 시위를 방해했다. 반대시위대와 호주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도쿄올림픽이 무사히 끝났지만, 세상은 6개월 후면 또 다른 올림픽을 마주한다. 도쿄 2020을 통과하니 반년 만에 베이징 2022가 기다리고 있다. 내년 2월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개막일이다. 2008년 8월 베이징 하계올림픽에 이은 중국의 두 번째 올림픽이다. 첫 번째 베이징 올림픽이 중국의 경제 대국 부상을 세계에 과시하는 전시장이었다면, 다가오는 두 번째 베이징 올림픽은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선전장으로 계획되고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내년 가을로 예정된 시진핑 주석의 3연임 결정을 앞두고 열리는 최대의 스포츠 행사다.

중국은 지금 변이를 거듭하며 물러나지 않는 팬데믹보다 다른 것을 더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럽연합(EU)·영국·미국의 정치권은 베이징 올림픽에 정부대표단을 보내지 말자(외교적 보이콧)고 압박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먼저 불을 지폈다. 유럽연합의회와 영국의회가 뒤질세라 동조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홍콩·티베트·신장위구르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정부 대표단이 베이징 올림픽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결의안이 속속 의결되고 있다. 신장위구르와 홍콩의 인권문제를 놓고 2019년부터 대립각을 세우던 서방세계와 중국의 갈등은 미래진행형이다. 선수단의 불참이 아닌 국가 원수, 고위 관료 등 정부대표단의 불참으로 그친다면 올림픽 개최 자체가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체제에 대한 서방세계의 외교적 압박이 중국의 올림픽 잔치에서 공개적으로 부각된다는 점은 중국엔 골칫거리다.

공산당 권위주의 체제 보여줄 베이징 2022

지난달 30일 베이징 시내 한 수퍼마켓.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2022’ 동계올림픽의 공식 스폰서 코카콜라 제품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베이징 시내 한 수퍼마켓.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2022’ 동계올림픽의 공식 스폰서 코카콜라 제품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2008년과 2021년의 상황은 확연히 다르다. 2008년의 서구는 중국에 대한 여유로 넘쳐났다. “세계평화를 염원한다면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폭력을 행사한 중국인이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이 있는가” “세상 어느 민족이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과 경찰을 폭행할 수 있겠느냐”는 비난이 줄을 이었지만, 올림픽 보이콧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서구세계는 중국에 매혹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선 중국은 서구엔 거부할 수 없는 무역과 투자 상대였다. 동시에 서구는 중국과의 거래는 결국에는 중국을 변화시킬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서구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압도적 우월성이 궁극적으로는 공산당 독주의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중국 시위대의 일탈에 대해 문명 세계에 눈뜨지 못한 후진적 행태로 한 수 접어두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2021년 서구는 더는 그런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속도는 느리지만, 중국이 결국에는 서구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개혁되고 개방될 것이라는 믿음은 서구가 스스로 건 주술이었음을 깨달았다. 경제를 연결고리로 중국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서구의 계획은 실패했다. 오히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중국과의 경제연결 고리 때문에 서구의 체제 안전이 위협받는 역설적인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습이 드러난 서구 민주주의의 극심한 혼란상은 상대적으로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 체제의 안정성을 부각했다. 서구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 중국의 마법에서 깨어났다. 2008년 경험했던 중국시위대의 폭거는 계몽의 대상이 아닌, 어쩌면 중국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주류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서구, 중국 앞에 더는 여유 부릴 틈 없어져

5년 1%P 하락의 법칙

5년 1%P 하락의 법칙

이번 여름 중국공산당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당은 중국경제의 전면에 등장했다. 디지털 혁명의 기수로 떠올랐던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그들의 생살여탈권을 거머쥔 당의 위세 앞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의 성패는 경쟁력보다 당의 자비가 결정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외국기업도 예외일 리 없다. 차이나 리스크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서구는 더는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치적 가치는 잠시 눈감을 수도 있다는 시대는 사라졌다. 정치 체제와 상관없이 전 세계를 지도로 펼쳐 놓고 무한 효율성을 추구하던 시대도 이젠 기억 속으로 저물어갈 운명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민주주의 기술동맹도 서구의 이런 다급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국 성장률 0%대 절벽에 몰려

미·중 패권경쟁 속에 한국은 어떻게 하면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다음 정부가 맞닥뜨릴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서울대 김세직 교수의 “한국경제 5년마다 1% 하락법칙”에 따르면 차기 정부는 장기경제성장률 0%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제로 성장의 빙하기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성장빙하기는 대규모 실직·조기퇴직·구직난 등 고용빙하기를 뜻한다.

성장빙하기는 재정빙하기를 초래한다. 국가가 일자리를 만들고, 실업자를 구제하려 해도 국가재정이 감당하기 어렵다. 중국의 변화, 그리고 서구의 중국에 대한 인식변화와 전략변화는 한국에 영향력을 투사한다.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지난 20년간 한국제조업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은 ‘중국 투자플랫폼’(중국에 투자, 세계로 수출)은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한국경제의 내일은 오늘과 같이 운영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벼랑 끝으로 내몰릴 운명이다.

생존 비전 제시 못하는 대선 주자들

베이징 2022로 가는 달력은 한국의 대선 달력과 겹친다. 많은 대선후보가 등장하고 있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국내적 문제에 매달려 있다.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미래지향적 비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미래구상에서 ‘중국은 한국에 무엇인가’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그 이념지향에 상관없이 중국 앞에서 늘 초라하고 옹색했다. 무엇에 쫓기듯이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서둘렀지만, 한국의 자위 조치인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에는 제대로 항의조차 못 했다.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번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역사를 왜곡했지만,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박성명을 냈다는 보도는 없었다. 한국이 중국의 도발에 소극적이고 미온적으로 미적거릴수록 허장성세와 공포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이골이 난 중국은 더 한국을 얕볼 따름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인민해방군의 참전을 결정하면서 마오쩌둥은 “원자탄이 떨어지면 수류탄으로 대응해라. 미국을 종이호랑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전략일 뿐이다. 미국은 진짜 호랑이다”라고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세(勢)가 불리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맞대응한다. 기만전술과 선전공세가 요체이다. 국가이익이 충돌하는 국제무대에서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믿는 지도자를 가진 국민은 불행하다. 조선시대 ‘소중화’(小中華)가 한국인의 DNA라는 진단은 망발이다. 경제 기적과 정치 기적을 모두 이루어 낸 민주주의 경제강국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중국과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