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안전속도 5030’ 100일 해보고…설익은 성과 자랑

중앙일보

입력 2021.08.1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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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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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도시부 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50㎞ 이하로 낮추는 ‘안전속도 5030’은 지난달 26일로 시행 100일을 맞았다. [연합뉴스]

전국 도시부 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50㎞ 이하로 낮추는 ‘안전속도 5030’은 지난달 26일로 시행 100일을 맞았다. [연합뉴스]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해보다 16.8% 감소하는 동안 차량 속도는 시속 1㎞밖에 안 느려졌다.”

정부, 100일 시행 효과 분석 발표
보행 중 사고 사망자 16.8% 감소
전문가 “코로나 영향 반영 의문”
도로별 탄력적 운영 필요 지적도

국토교통부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최근 ‘안전속도 5030’ 시행 100일의 효과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4월 17일 전국의 주요 도시부 지역에서 시행된 안전속도 5030은 지난달 26일로 꼭 100일을 맞았다.

교통사고 예방, 특히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이하 보행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정책으로 제한속도를 도시부 도로는 시속 50㎞로, 주택가 등 이면도로는 시속 30㎞로 낮추는 내용이다. 실험을 해봤더니 제한속도를 시속 60㎞에서 50㎞로만 낮춰도 충돌 사고 때 보행자가 중상을 입을 확률이 20%p나 줄어든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었다.

자동차 속도별 보행자 충돌시험 결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동차 속도별 보행자 충돌시험 결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발표자료를 좀 더 살펴보면 전국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824명에서 올해에는 760명으로 7.8% 줄었다. 이 가운데 보행 사망자는 274명에서 242명으로 감소 폭(11.7%)이 더 컸다. 시행지역과 미시행지역을 비교하면 효과는 더 분명하게 보인다. 안전속도 5030을 도입한 지역에선 보행 사망자가 167명에서 139명으로 16.8%나 줄었다. 반면 미적용지역은 3.7% 감소하는 데 그쳤다.

당초 차량정체가 심화할 거란 우려와 달리 차량 통행속도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전국 32개 구간을 분석한 결과, 통행속도는 평균 시속 34.1㎞에서 33.1㎞로 겨우 시속 1㎞가 줄었을 뿐이다. 같은 기간 무인과속단속장비는 22% 늘었고, 단속 건수도 7.2% 증가했다. 이렇게만 보면 안전속도 5030은 취지대로 보행자 보호 효과는 두드러지면서도 차량 흐름에는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는 발군의 효과를 나타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안전속도 5030 시행 100일, 교통사고 사망자 비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안전속도 5030 시행 100일, 교통사고 사망자 비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나 여러 교통 전문가들은 이런 평가에 대해 유보적인 반응이다. 우선 분석 대상 기간이 짧은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상황 변화가 제대로 반영됐는지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진혁 연세대 교수는 “보행 사망자 감소에 유의미한 효과를 보인 것은 고무적이며, 교통 지체유발이 크지 않다는 점도 의미 있는 결과로 보인다”면서도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보다 정교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난해보다 차량 통행량과 등교 및 학원 통행이 확실히 줄어들었는데 이런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수치만 비교해선 정확한 효과를 알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차량 통행량과 등교·학원 통행이 감소하면 그만큼 교통사고도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정책의 효과로만 치부하기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수도 “보행 사망자 수가 줄어든 게 지난해와 동일한 조건에서 감소한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며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사망자 수 비교만 가지고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그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분석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도입하면서 도로 인프라 개선에는 별 투자를 하지 않고 단순히 속도만 줄였는데도 교통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동안 도로 계획이 잘못됐다는 의미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유 교수는 또 “사고 건수와 사망자가 얼마 줄었다는 식의 단순 전달보다는 정책 시행 이후 도로 이용자의 운전과 통행행태가 어떻게 변화했고, 도시 사회경제 활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함께 연구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방식처럼 도시부 도로에 일괄적으로 ‘5030’을 강제하는 대신 효과 분석을 통해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준호 한양대 교수는 “모든 도로에서 보행자 사고 감소 효과가 동일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긴 어렵다”며 “주변의 토지이용, 교통량과 보행량 수준, 도로의 구조특성에 따른 조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진혁 교수도 “각 도로의 이용 패턴과 주변 지역 특성 등을 고려해 제한속도를 오히려 낮추거나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속도제한이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역과 아닌 지역을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도경 교수는 “늘 차가 막히는 곳에선 운전자의 저항이 덜하지만 빨리 달릴 수 있는 환경에서도 시속 50㎞로 제한하면 그만큼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진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분석도 이뤄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후속 대책으로 보다 과감한 도로 다이어트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낮춘 도로에선 차로 폭을 3.0m 미만으로 축소하고, 보도나 자전거·전동킥보드용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속도 5030은 우리나라에서만 시행하는 제도는 아니다. 유럽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상당수가 운영 중이다. 그러나 나라별로 도로 여건과 교통 상황은 제각각이다. 좋은 취지의 제도이고 외국에서도 효과가 입증됐다는 이유로 무조건 일괄적으로 적용해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부단한 모니터링과 분석을 통해 지역별 도로별 상황에 맞는 탄력적인 제도 운영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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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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