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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프간 사태가 한·미 동맹 중요성 보여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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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군이 20년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했고, 수많은 아프간 주민이 탈레반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사진은 무장한 탈레반.[AFP=연합뉴스]

미군이 20년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했고, 수많은 아프간 주민이 탈레반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사진은 무장한 탈레반.[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아프간 정부의 무능과 부패, 정치적 분열이 만든 비극이었다. 아프간에서 20년 동안 공을 들인 미국이 손절매하듯이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한 것은 냉정한 국제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어제 아프간 수도 카불 국제공항은 아비규환이었다. 베트남 패망(1975년) 사태를 다시 보는 듯하다. 2001년 아프간 탈레반 정권은 9·11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와 연관돼 주목을 받았다. 이어 미국 주도의 항구적 자유작전으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고, 재건 과정에 한국도 참여했다. 우리의 다산·동의부대와 오쉬노부대가 10년 이상 아프간에 주둔하면서 의료 지원과 재건을 도왔다. 한국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아프간 군대와 경찰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7억2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아프간 정부의 무능·분열이 자초한 비극 #미국 포기하자 바로 망하는 냉엄한 현실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는 불신과 실망에서 나왔다. 미국은 2001년 이후 아프간 전쟁과 재건에 2조 달러(2300조원) 이상 쏟아부었다. 미국의 재정이 흔들릴 정도였다. 2014년부터는 아프간 스스로 방위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군(ANDSF) 양성에 국방비(50억∼60억 달러)의 75%를 미국이 감당했다. 미 정부는 ANDSF가 탈레반 병력보다 훨씬 우세한 것으로 착각했다. 그런데 허상이었다. ANDSF 병력은 숫자로만 존재하고, 실제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아프간에 지원해 준 많은 재원은 재건이 아니라 관료와 군 간부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미군이 철수하니 아프간 정부군은 전투 의지도 없었다. 탈레반과 전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미국이 아프간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도 철수를 결정한 배경은 아무리 도와줘도 성과가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서다. 이런 아프간 상황은 1973년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했을 때와 흡사하다. 당시 베트남의 월남 정부도 부패했고 정치적으로 분열됐었다.

아프간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선 강한 군대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공군과 해군에서 연이어 벌어진 성추행 사건과 경계 실패, 한·미 연합훈련 축소 등을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군대의 생명인 군기가 무너지면 아프간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더구나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계속 늘리고 있다. 한·미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미군이 철수한 아프간의 운명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최근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대놓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던가. 한·미 동맹은 한반도 안보의 기둥이다. 정부와 군은 아프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미 동맹 강화와 강군 유지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나라가 분열되고 안보가 무너지면 백약이 무효다. 아프간에 남은 교민과 외교관들의 안전한 귀국에도 온 힘을 쏟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