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간 이어온 기술 사라질라…직장 접고 ‘풍수 나침반’ 대 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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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백옥가루를 바르고 삭~ 긁어내는 순간 다들 와! 하더라고요.”

김희수 ‘윤도장’ 보유자 지정예고
대추나무에 사방·팔괘·십간 3000자
300년 내려온 운석으로 자침 제작
조선시대엔 명품…4대째 만들어
“월 70만원 버는데 누가 대 이을지…”

12일 전북 고창의 윤도장 전수관에서 만난 김희수(59)씨는 지난 6월 무형문화재 심사를 하던 때를 회상하며 손에 쥔 나무판을 칼로 박박 긁었다. 긁어내는 자리마다 먹칠한 검정 바탕에 백옥 가루가 박힌 흰색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김씨가 손에 쥔 건 전통 방식으로 만든 나침반 ‘윤도’다.

무형문화재 윤도장 보유자로 지정예고된 김희수씨. 4대째 이어온 전통방식으로 윤도를 만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무형문화재 윤도장 보유자로 지정예고된 김희수씨. 4대째 이어온 전통방식으로 윤도를 만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씨는 지난 4일 무형문화재 윤도장 보유자로 지정예고됐다. 증조할아버지, 둘째 큰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4대째 윤도를 만들고 있다. 현재는 아버지 김종대(87)씨가 국내 유일한 윤도장 보유자다.

윤도(輪圖)는 ‘바퀴모양 그림’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풍수를 따질 때 나침반 역할을 하던 물품이다. 나무로 된 원형 판에 4방위와 팔괘, 십간, 십이지, 24절기, 28숙 등 음양오행과 역을 나타내는 한자를 빼곡히 새겨넣고, 가운데에 자침을 얹어 만든다. 한자가 새겨진 동심원이 많게는 24겹, 이때 새겨야 하는 글자수는 3000자가 넘는다. 양반가에선 부채나 손거울 등에 달아 멋을 뽐내는, ‘명품’으로 여겨지던 소품이다.

무형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인 이승주 전 한국전통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강사는 “전통적인 동양의 하늘에 대한 인식, 천리에 대한 이념을 한 판에 구현한 것”이라며 “나무도 다루고, 금속도 다루고, 각자(刻字, 글자를 새기는 것)도 해야해서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고, 음양오행도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작업인데다 고창 지역에만 전해 내려오는 것도 희귀한 면모”라고 윤도장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 6월 무형문화재 현장실사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전통 방식으로 윤도를 만들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컴퍼스, 작두, 칼, 조각칼로 대추나무를 다듬고 글자를 새긴다. 조각이 다 끝나면 면 전체에 먹칠을 한 뒤 말리고, 다시 백옥가루를 갈아 칠한 뒤 말린다. 이후 칼로 윗면을 평평하게 긁으면 백옥가루만 갈려 나오면서, 글자 사이에 끼인 백옥만 남아 검정 바탕에 흰 글자가 보이게 된다.

①톱으로 대추나무를 자르고 ② 3000자가 넘는 글씨를 새기고 ③ 먹을 바른 뒤 말리고, 백옥을 덧칠해 말리면 하얗게 된다. ④ 김희수씨 가문에 300년 넘게 대를 이어 전해내려오는 운석에 자침을 붙여놓은 모습. 원래 운석 2개가 있었으나 선대에 하나를 잃어버려 지금은 하나만 남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①톱으로 대추나무를 자르고 ② 3000자가 넘는 글씨를 새기고 ③ 먹을 바른 뒤 말리고, 백옥을 덧칠해 말리면 하얗게 된다. ④ 김희수씨 가문에 300년 넘게 대를 이어 전해내려오는 운석에 자침을 붙여놓은 모습. 원래 운석 2개가 있었으나 선대에 하나를 잃어버려 지금은 하나만 남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침반의 핵심인 ‘자침’은 강철을 줄로 균일하게 갈아 만든다. 완성된 침은 가문에 300년 넘게 전해 내려온 운석에 하루 정도 붙여두면 자성을 띤다. 윤도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보통 2주 정도 걸리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현장실사에선 모든 걸 하루 만에 해야 했다.

처음부터 가업을 이으려던 건 아니었다. 김씨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13년간 제약회사, 건설회사를 다녔다. 매일 아침 전화해 “네가 이걸 빨리 이어받아야 하는데 어떡하냐”고 걱정하던 아버지에 더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기술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 마음에 직장을 접고 고향으로 향했다.

김씨는 4남 1녀 중 장남이다. 5남매 모두 조금씩 윤도를 배우긴 했지만 굳이 김씨가 대를 잇겠다고 나선 건, 어린 시절 봤던 둘째 큰할아버지(고 김정의씨)의 기억 때문이었다. 김씨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마루에서 할아버지가 돌때송곳으로 철심에 구멍뚫고, 나무깎는 걸 보면서 신기해했다”며 “할아버지도 나를 예뻐해서, 다른 동생들은 ‘연장 없어진다’며 근처에도 못 오게 했지만 나는 구경하게 해줬다”고 회상했다.

윤도로 생계를 유지하긴 어렵다. 한 달에 많아야 두어개밖에 만들지 못한다. 대추나무가 복을 불러온다 하여 연말이면 선물용으로 수요가 많지만, 그만큼 만들지 못해 ‘공허한 수요’일 뿐이다. 그래서 생계는 농사로 유지한다.

새롭게 윤도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도 적다. 김씨는 “아들 딸 다 교육은 어느 정도 받았는데, 윤도를 만들진 않고 있다”며 “대를 이어 할 사람을 찾아야 할 텐데, 전수조교 30년을 해도 월 70만원밖에 못 버는 일이라 누가 하려고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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