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임성근 2심 “대법원장 지적권 인정안돼”…윤종섭 작심 비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6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6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임성근(57·사법연수원 17기)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법행정권남용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대법원장의 판사 지적(指摘)권한’을 인정한 다른 하급심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대법원장(법원행정처)의 법관에 대한 재판사무 지적권을 인정할 경우 헌법상 ‘재판의 독립’에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하면서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박연욱)는 판결문에서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 윤종섭)의 판결을 인용하며 “재판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했다.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서 법리상 정반대 입장을 보였다고는 하나 다른 재판부의 판결을 각주로 사건번호까지 여러 번 적시해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의 판결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민걸(60·17기)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59·18기)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이다. 두 전직 법관은 이른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법관 중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공무원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려면 우선 남용 대상이 ‘직무상 권한’이어야 한다. 임 전 부장판사의 1심 및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 개입은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일반적 직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결했다. 1심과 같이 ‘직권 없이 남용도 없다’는 직권남용죄의 일반 법리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전제에 기반해 판결에 개입할 수 있는 직권이 없는 임 전 부장판사의 ‘월권행위’는 다소 부적절할지언정, 직권남용죄라는 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검찰이 앞서 재판 과정에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판사를 상대로 재판 지연 등 핵심영역에 대한 지적 권한을 가지며, 임 전 부장판사는 이런 사법행정권을 위임받았다”고 주장한 것도 배척했다.

이런 검찰 주장은 지난 3월 윤종섭 부장판사의 직권남용 유죄 판결의 핵심 논리를 그대로 빌린 것이다. 윤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판사를 상대로 재판의 현저한 지연이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는 ‘특정 사건 재판사무의 핵심 영역에 대한 지적 사무’를 수행할 수 있다”며 “그 지적이 지적을 넘어 특정 조처를 하라는 등의 ‘권고’로 이어진다면 이는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윤 부장판사의 판결은 직권남용의 범위를 기존보다 넓게 봤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 전 부장판사의 유죄를 주장한 검찰은 지난 6월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윤 부장판사의 판결을 5차례 이상 언급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런 지적 사무는 특정 사건에서 법관에게 지적 사무의 주체인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에 대해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법원 외부뿐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재판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 103조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했다.

또 판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심급제도가 있고, 법관기피제도, 법관징계제도도 있기 때문에 당사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현재 마련된 제도로도 판사의 명백한 잘못이나 재판 지연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지적 사무가 필요한 사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취지다.

이어 서울고법은 “오히려 지적 사무를 인정해 대법원장이나 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할 수 있게 한다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고, 당사자들의 요구로 인해 재판의 진행이 부당하게 방해받을 수도 있다” 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