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보자기가 마법을…최강 인기 ‘보자기 아트’

중앙일보

입력 2021.08.16 13:00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81) 

‘라떼는 말이야’를 꺼내고 싶진 않지만 하는 수 없다. 또 나온다. 예전, 몇십 년 전이다. 그때의 만화가게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변변한 시설이랄 것도 없었다. 여름엔 선풍기 한 대, 겨울엔 난로 하나로 버텼지만 그렇게 시원할 수도 그렇게 따뜻할 수도 없을 만큼 정겨웠다. 반들반들 닳아진 나무 걸상에 앉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는 만화책의 맛이란! 더해서 불량식품스런 쫀드기라도 물어뜯으며 볼라치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물론 내게도 그런 추억은 수두룩했고 공책 뒷면은 방금 보았던 주인공들을 그려 넣느라 빈칸이 모자랐다. 당연히 만화가게는 솜사탕처럼 달콤한 꿈의 공간이었다.

보자기, 2021, 아이패드.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보자기, 2021, 아이패드.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보자기를 휙휙 감아 패션왕이 된 만화주인공

“다란 보자기를 휙휙 두르고 감는다. 보잘것없던 보자기는 이내 멋진 드레스가 되어 마침내 패션공모전에 우뚝 서게 된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만화의 줄거리다. 대개의 순정만화가 그렇듯이 주인공은 가난했다. 타고난 재능이 있음에도 패션공모전에 나가기엔 재료를 살 돈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멋진 디자인을 기획하고 가까스로 드레스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쯤에서 의례 등장하는 소위 빌런, 그러니까 악녀가 나온다. 말할 것도 없이 부잣집 딸이지만 재능은 없고 질투는 넘쳐나는 캐릭터다. 굳이 재능을 찾자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있을 뿐이다. 주인공의 디자인을 훔친 악녀가 먼저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당황스럽기 그지없던 우리의 주인공, 옷감을 살 돈도 시간도 없다. 그때 무대 뒤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보자기를 발견한다. 그야말로 눈길도 주지 않는 한낱 ‘물건’에 지나지 않는 색색의 보자기다.

드라마는 지금부터다! 마침 지나가는 청소부-그녀는 만삭의 임산부다-에게 사정을 말하고 즉석 모델 제안을 한다. 눈에 띄지도 않던 보자기는 어깨에 허리에 둥그런 배에 이리저리 감기고 휘두르며 멋진 옷으로 탄생했다. 만삭의 모델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품어 준 보자기의 매력은 대단했다. 결과는? 그 당시 순정만화의 끝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당당하게 보자기 드레스로 일등을 거머쥔 주인공을 보여주며 만화는 끝을 맺었다. 주인공의 손끝에서 마법을 부리던 보자기는 내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흔하지만 넉넉한 보자기가 만들어내는 예술

최근 대중에게 부쩍 사랑받는 보자기 아트 작품. [사진 작가 권의단]

최근 대중에게 부쩍 사랑받는 보자기 아트 작품. [사진 작가 권의단]

느릿느릿 손으로 뭔가를 꼼지락거리는 걸 좋아한다. 손재주도 끈기도 많지 않지만 내 손안에서 움직이고 만들어지는 과정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올초 보자기아트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규방 공예가로 유명한 권의단 작가의 특강이었다. 더구나 운 좋게 무료특강이었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수준 높은 무료강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권 작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자기와 전통옷감을 사용해 ‘보자기 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완성된 작품을 보니 이게 정말 우리가 아는 보자기로 만들었단 말인가 하는 감탄이 나왔다.

함박꽃으로 매듭을 지은 보자기부터 먹음직스러운 만두 모양, 단아한 모습의 여인네 같은 보자기까지 다양했다. 놀라울 만치 아름다운 이들 작품의 재료가 단지 보자기라니 더욱더 감동이었다. 그래선지 요즘 ‘보자기 아트’ 강좌는 여러 기관에서 최고의 인기 강좌로 인기몰이 중이란다.

있는 그대로를 품어주는 넉넉한 보자기처럼

다양한 형태의 보자기아트 작품. [사진 작가 권의단]

다양한 형태의 보자기아트 작품. [사진 작가 권의단]

 

살면서 보자기를 써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간혹 사극을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순간에 밤도망을 치는 이들 곁에도 보자기는 함께 하지 않는가! 그들에게 보자기는 위로의 동반자였을 게다. 생각해보니 보자기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그 옛날, 외갓집에 다녀오시던 엄마가 들고 오신 떡 한 상자를 감싸고 있던 연분홍 보자기가 있었다. 떡을 싼 보자기를 풀고 얌전히 개켜서 간직하곤 하셨다. 아마 그 보자기는 그리움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 도시락을 이쁘게 싸주던 앙증맞은 손수건 크기의 보자기도 있었다. 그건 즐겁던 시간이 수놓아진 보자기였다. 법정 드라마는 또 어떤가! 재판장에 들어서는 법조인의 손에는 어김없이 보자기로 꽁꽁 묶은 서류 보따리가 들려 있다. 혹시 서류를 감쌀 보자기가 클수록 형량도 높아지는 건 아닐지 궁금하다. 쓸데없이 후후.

그런 친근하고 익숙한 보자기가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자신의 의도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보자기! 앞서 소개한 추억의 만화에서도 만삭의 임신부를 넉넉하게 감싸주었던 보자기다. 나도 그런 보자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배려와 넉넉함을 품은 보자기로 완성하는 ‘보자기 아트’, 이제 우리도 한번 도전해 볼 때다. 보자기가 어디 있느냐고? 당장 싱크대 서랍이나 옷장 서랍을 찾아보시라! 갈비며 굴비 혹은 꿀단지를 감쌌던 분홍, 금색, 파랑 등의 보자기가 짠! 하고 등장할 것이다. 주부들이 언젠가는 써먹겠노라고 차마 버리지 못한 보자기, 대형 종이쇼핑백, 포장리본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 우리 손끝에서 보자기가 마법을 부릴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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