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없으면 동맹도 버리고 떠난다, 바이든의 아프간 '손절'

중앙일보

입력 2021.08.16 07:45

업데이트 2021.08.20 17:00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친미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함락시킨 소식이 전해진 1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실패하지 않았으며, 미군 철수 결정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아프간 철군·함락으로 본 바이든 외교 정책
블링컨 "美 국익 없어 철수…사이공 아니야"
"1조 달러 투자, 5년 주둔도 달라지지 않아"
英 "트럼프와 뭐가 다르냐" 바이든 철수 비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오전 ABC방송에 출연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퇴각은 "명백하게 사이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1975년 베트남전 패망 직전 헬기를 이용해 미국인과 베트남인 등 6000여명을 탈출시킨 치욕적 사건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블링컨 장관은 CNN방송에서는 "전 세계에 있는 우리의 전략적 경쟁자들은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 1년, 5년, 10년 더 머무르면서 자원을 (남의 나라) 내전에 사용하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할 것"이라면서 "그것은 우리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요일 아침 시사프로그램에 연속 출연해 미국의 이익을 앞세워 동맹을 저버렸다는 국제사회와 미국 내 일부 여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12년 아프가니스탄을 비(非)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신속한 반격으로 아프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자국민을 철수시키는 작전을 긴박하게 전개 중인 미국 동맹들 사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다른 게 뭐냐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토비아스 엘우드 영국 하원 국방위원회 위원장(보수당 소속)은 워싱턴포스트(WP)에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어떻게 된 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로켓 추진 수류탄과 지뢰, AK-47 소총밖에 없는 무장 반군에 패배하면서 어떻게 미국이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세계를 향해 미국의 귀환을 알리면서 동맹을 복원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재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아프간 미군 철수는 의견이 맞는 경우가 거의 없는 트럼프와 바이든이 의견 일치를 보는 몇 안 되는 분야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떠나, 미국 내 민심은 "끝없는 전쟁에서 우리 아이들을 데려오라(Bring our boys back)"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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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2월 탈레반과 협상에서 2021년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최대 1만2000명에 달했던 아프간 내 미군 병력은 트럼프 퇴임 직전 2500명까지 줄었다.

정권을 넘겨받은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9·11테러 20주년을 앞둔 이달 31일까지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의 철군 정책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확인한 것이다.

바이든의 '미국이 돌아왔다' 외교 정책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꼭 맞는 아프간 철군 결정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훼손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높이고 동맹을 재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중심에는 미국의 국익을 놓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도 전인 지난해 2월 CBS '페이스 더 네이션' 인터뷰에서 아프간 철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 군대를 동원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내부 문제(internal problem)를 일일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우리 능력 밖"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필수적인 자기 이익(vital self-interest)이 걸려 있는가, 아니면 우리 동맹 중 한 나라의 자기 이익이 걸려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과 동맹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4일 미국인 탈출 지원을 위한 미군 5000명 파병 승인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손절' 외교를 정당화했다.

바이든은 "미국은 지난 20년간 아프간전을 치르면서 가장 뛰어난 젊은 남녀를 파병하고, 1조 달러 가까이 투자했으며, 아프간군과 경찰 30만 명 이상을 훈련하고, 최첨단 군사 장비를 갖춰주고, 공군을 유지해 줬다"고 말했다.

또 "아프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지 못하거나 지키지 않는다면 미군이 1년 더, 또는 5년 더 주둔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보다 뛰어난 성능의 무기와 병력을 갖고도 순식간에 나라를 내준 것은 무능하고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바이든은 미국의 아프간전 참여는 9·11테러 주범인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라덴 제거를 위한 것이었으며, 이 목표는 오래전에 달성됐다고 말한다. 그 이후 미군의 아프간 주둔은 "다른 나라 내전 한가운데에 미국이 한정 없이 주둔"한 꼴이라는 게 바이든 정부의 생각이다.

제아무리 동맹이라도 자신을 지켜낼 역량과 의지가 없다면 과감하게 '손절'하고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겠다는 새로운 외교 방향을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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