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명 몰린 디에이치자이개포 단지 옆 31계단의 비밀[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8.16 06:01

업데이트 2021.08.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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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아파트 306가구가 함께 입주하는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자이개포 아파트. 현대건설

임대아파트 306가구가 함께 입주하는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자이개포 아파트. 현대건설

지난 12일 진행한 5가구 무순위 청약(부적격자 당첨 취소분)에 25만명이 몰려 화제가 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개포 아파트. 공무원 임대아파트였던 옛 개포주공 8단지를 현대건설과 GS건설이 매입해 재건축한 단지로 지난달말부터 입주를 시작하고 있다.

임대아파트 306가구 짓는 조건으로 용적률 높여
임대아파트 입주민 동선 단지 구석으로 조성
벤처기업 업무공간 등 공공시설은 없던일로
전문가들 "임대아파트 이용해 단물만 빼먹은 것"

이 아파트는 일반 재건축 아파트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부지를 사들여 아파트 사업을 벌인 곳이기 때문에 재건축 조합원 의견 없이 건설회사가 자신의 건설 철학을 담아 독자적으로 아파트를 설계했다. 일반적인 재건축 아파트는 아파트 설계나 평형 구성 등에 재건축 조합원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

현대건설은 아파트 동에 현수막을 걸고 디에이치자이개포단지가 지역의 랜드마크라고 홍보하고 있다. 함종선 기자

현대건설은 아파트 동에 현수막을 걸고 디에이치자이개포단지가 지역의 랜드마크라고 홍보하고 있다. 함종선 기자

또 사업부지 자체가 공공을 위해 쓰였던 땅(임대아파트)이었던 점을 고려해 아파트 단지에 공적시설을 많이 들이기로 했었다. 우선 단지 내 임대아파트 비율이 일반 강남 재건축보다 훨씬 높다. 전체 1996가구 중 임대아파트가 306가구(임대아파트 비율 15.3%)다. 인근 개포동의 재건축 단지인 래미안블레스티지의 경우 1957가구 중 112가구가 임대아파트(5.7%)이고, 현대건설이 자신들의 주거 역작이라 강조하는 디에이치아너힐즈(옛 개포주공3단지 재건축)는 임대아파트 비율이 6.4%(1320가구 중 85가구)다.

단지 내 공적 시설도 많이 짓기로 했었다. 벤처기업을 위한 업무공간과 창업지원센터 등을 조성하기로 했고, 스쿼시장 등의 체육시설을 조성해 인근 주민들 몫으로 기부채납하기로 했었다.

건설회사는 이런 기부채납에 대한 보상을 이미 충분히 받았다. 재건축 아파트에선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의 비율)이 곧 돈인데 디에이치자이개포의 용적률은 336%로 서울 시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디에이치아너힐즈 등 인근 재건축 단지의 용적률은 250% 안팎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디에이치자이개포는 민영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임대주택)이 대거 들어간 특별계획구역이어서 일반적인 재건축 사업과는 다른 건축 기준을 적용받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임대아파트를 많이 짓는 조건으로 수익성을 높였다는 얘기인데, 이 곳의 임대아파트는 입주민들이 살기 불편하게 설계됐다. 현대건설은 임대아파트 306가구를 복도식으로 설계해 806동 한 동에만 조성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지하철 이용이 많은 임대아파트 입주민 특성을 고려해 역과 가까운 곳에 임대동을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하철역에서 806동으로 들어가는 동선을 보면 아파트 단지 한구석에 낸 31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임대아파트에서 지하철로 가려면 단지 옆에 조성된 31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함종선 기자

임대아파트에서 지하철로 가려면 단지 옆에 조성된 31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함종선 기자

계단 오르기가 불편한 노약자나 장애인 등은 계단에서 100m 이상 떨어진 엘리베이터까지 갔다가 다시 100m를 돌아와야 806동에 갈 수 있다. 현장을 살펴본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대아파트 입주민이 일반 아파트 입주민과 다른 길로 다니게 교묘하게 설계한 것"이라며 "출입문과 출입계단 등을 건물 한구석에 따로 낸 일반 주택 셋방 구조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은 지하철 입구에서 임대아파트로 들어가는 공간에 계단을 새로 설치했다. 이 계단을 내려오면 임대아파트로 통하는 계단과 이어진다. 함종선 기자

현대건설은 지하철 입구에서 임대아파트로 들어가는 공간에 계단을 새로 설치했다. 이 계단을 내려오면 임대아파트로 통하는 계단과 이어진다. 함종선 기자

조성하기로 약속했던 벤처기업 업무공간 등과 인근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도 없던 일이 됐다. 강남구청 재건축 관리팀 관계자는 "아파트 계약자들과 건설회사 요청으로 지난해 시설 변경을 승인해줬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기부채납 시설을 어린이 놀이터, 공공도서관 등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외부인 출입금지' 'CCTV촬영중'이란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함종선 기자

아파트 단지 곳곳에 '외부인 출입금지' 'CCTV촬영중'이란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함종선 기자

어린이 놀이터와 공공도서관 등은 아파트 내부에 있는데, 아파트 단지 곳곳에 '외부인 출입금지. CCTV촬영중'이란 경고문이 붙어있어 외지인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다.

일반 아파트와 색과 높이가 다른 디에이치아너힐즈 301동은 임대아파트 입주민이 모여있는 동이다. 함종선 기자

일반 아파트와 색과 높이가 다른 디에이치아너힐즈 301동은 임대아파트 입주민이 모여있는 동이다. 함종선 기자

오정석 SH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혼합 단지 내에서 임대아파트 동의 색깔을 다르게 하는 식으로 임대아파트를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건 임대아파트 조성 목적인 소셜믹스(Social Mix)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은 디에이치아너힐즈에도 임대아파트를 색깔이 다른 저층 복도식 아파트로 따로 조성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구청 등 지자체의 안이한 관리 속에 건설회사가 용적률이란 단물만 쏙 빼먹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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