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중기부, 기업 부담 늘리는 '고발요청' 남발…3.5배 급증

중앙일보

입력 2021.08.16 06:01

지난해 12월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한 가구업체 한샘의 ‘대리점 갑질’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당초 공정위는 한샘이 대리점에 판촉비를 부과했다고 보고 1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고발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기부가 ‘의무고발요청권’을 행사하면서 한샘은 검찰 수사를 받아야 했다. 중기부의 고발요청은 공정위가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사실상 고발과 동일하지만, 중기부 내 심의가 '깜깜이'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영선 전 장관 전후 중기부 의무고발 요청.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박영선 전 장관 전후 중기부 의무고발 요청.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0.27건에서 0.96건으로 급증

중기부가 최근 의무고발요청을 남발하면서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 취임(2019년 4월) 후부터 최근까지(현재 권칠승 장관) 행사한 의무고발요청이 이전 5년 4개월간 이뤄진 것보다 많아서다.

16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이 공정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월 의무고발요청제도 시행 이후 박 전 장관 취임 전까지 중기부가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건 17차례다. 1달에 0.27회꼴이다. 박 전 장관과 권 장관은 재임 2년 3개월 동안 총 26건의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월 평균 0.96회로, 이전과 비교하면 3.6배에 달한다.

기관별 의무고발요청 건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기관별 의무고발요청 건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의무고발요청 제도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견제하기 위해 2014년 도입됐다. 중기부 장관·조달청장·검찰총장 등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반드시 검찰에 고발장을 내야만 한다. 검찰총장이 지금까지 11번, 조달청장이 15번의 고발요청을 했다는 것과 비교해도 중기부의 최근 고발요청 횟수는 이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박 전 장관 때부터 중기부가 부처 힘을 내세우고 있다”며 "형벌 만능주의로 가는 분위기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3분의2만 기소, 그마저도 약식 벌금 

이 기간(박영선·권칠승 장관) 중기부 요청에 따른 고발 건 중 검찰 수사가 끝난 사건(19건)의 3분의 1가량은 불기소 또는 공소기각이 내려졌다. 공소기각은 소송 조건이 결여돼 재판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같은 기간 13건은 기소했지만 이 중 8건이 구약식 벌금형에 그치면서 정식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다. 2019년 4월 전까지 중기부가 고발 요청한 17건 중 불기소로 끝난 사건은 1건이었다. 박·권 장관 때 중기부 고발요청이 폭증하면서 무리한 고발이 상당수 이뤄졌다는 의미다.

앞서 음식점 가맹계약을 체결하면서 예상수익 정보를 허위로 제공한 예율에프씨에 대해 공정위는 과징금 2억4500만원을 부과하고, 고발은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중기부가 2019년 10월 고발을 요청해 유죄가 나왔지만, 내려진 벌금은 500만원이 전부다. “고발의 실익이 사실상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뒤늦게 의무고발권을 행사하면 기업은 중복 수사와 이중처벌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며 ”고발권의 효율적인 행사를 위해 기관 간 정례협의 등 제도적 보완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공정위 다 아니라고 하는데

중기부는 지난달 21일에도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4개 회사에 대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했다. 미래에셋그룹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조사한 공정위는 지난해 5월 전원회의를 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43억 90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대신 공정위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배당을 가져가거나 이익을 얻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고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1년 2개월이 지나서야 중기부가 고발권을 행사한 것이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 전경. 연합뉴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 전경. 연합뉴스

현행법에 따르면 의무고발요청은 중소기업에 미치는 피해 정도와 사회적 파급 효과를 따져 이뤄지게 돼 있다. 공정위는 미래에셋 그룹이 계열사 특급호텔과 대형 골프장을 이용하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드러난 만큼 중소기업 피해는 없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공정위 조사를 지켜본 검찰도 내부적으로 공정거래법 위반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법 해석과 적용에 대해 중기부만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무분별 고발…과징금 효율성 퇴색"

공정위는 경제 분석을 기반으로 사회·경제적 영향을 고려해 고발 여부를 결정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유럽연합(EU), 독일, 뉴질랜드 등 대부분 국가가 경쟁법 위반에 대해 형벌 규정이 없다. 형사 고발보다 과징금 부과가 효율적이라는 의미”라며 “과징금 부과나 고발은 상세한 경제 분석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무분별한 고발은 경제 전반은 물론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도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중기부는 고발 이후 책임이 없으니 외부 입김에 따라 무분별한 고발을 일삼는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도 중기부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한 대형로펌의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기업 측의 반론 기회가 공정위만큼 보장되지 않는 중기부가 고발요청을 자주 하다 보니 중기부 출신 간부를 영입하거나 로펌 내에 중기부 대응 팀을 꾸려야 할지 고민할 정도”라며 "중기부 고발요청이 빈번해지면 공정위마저 고발을 남발할까봐 우려된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고발요청 심의위원회를 참석해도 위원이 누군지 모르고, 변론 시간도 상당히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중기부 "소극 행사 지적…심의위 거쳐"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와 펀드결성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와 펀드결성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중기부 관계자는 "중기부의 고발요청권 행사가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2019년 국회에서 제기됐고, 박 전 장관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과 함께 불법은 엄정 단속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게 영향을 미쳤다"며 "내부위원과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심의위에서 기준에 따라 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한 고발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기부 심의위 위원 구성과 회의록, 심의의결서는 모두 비공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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