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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내 집값 큰폭 하락" 15년만에 등장한 '상투'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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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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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2008년 금융위기 전 수준을 넘는 급등세를 보이자 정부가 '과열' 경고를 했다. 사진은 서울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집값이 2008년 금융위기 전 수준을 넘는 급등세를 보이자 정부가 '과열' 경고를 했다. 사진은 서울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집값이 끊임없이 상승할 것이라는 강한 기대가 수요를 낳고 있다. 여러 통계에 비춰볼 때 이런 거품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부총리)

꺾일 줄 모르는 집값

“집값을 왜곡해 공표하거나 제공해서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겠다. 집값이 2~3년 내에 떨어질 것이다.”(장관)

부총리·장관 등 잇단 '고점' 경고

귀에 익은 말이다. 하지만 말의 주인공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노형욱 국토부 장관이 아니다. 15년 전인 2006년 5월 당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추병직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최근 홍 부총리와 노 장관의 발언과 판박이다.

정부가 지난 6월부터 집값에 '휘슬'을 불고 있다. 홍 부총리는 6월 초 “서울 아파트값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조정을 받기 이전 수준인 과거 고점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대국민 담화에선 집값 상승 주범으로 상승 기대심리, 불법・편법거래, 시장 교란행위를 '3적'으로 지목하고 집값 조정(하락) 가능성을 꺼냈다.

노 장관은 앞서 지난달 11일 TV 방송에 출연해 "지금 무리하게 주택을 구입하면 2~3년 뒤 매도할 때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2006년 '버블세븐' 논란과 판박이 

2006년 한 부총리 등의 말은 직전 청와대의 ‘버블(거품)세븐’론 이후 나왔다. 청와대는 강남·서초·송파구 등 7곳을 집값이 폭등한 버블세븐으로 규정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값 급등세 19년 만에 최고

집값 급등세 19년 만에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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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경고는 근 20년 만의 집값 급등에서 나왔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7월 기준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연간 전국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각 19%로 모두 2002년(각 23.1%, 30.8%) 이후 19년 만에 최고다.

2006년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의도는 ‘상투’ 경고다. 머리보다 더 높은 상투처럼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올라 하락 위험이 있으니 사지 말라는 뜻이다.

2006년 버블 논란 이후 당시 추 장관의 “2~3년 내 하락” 말대로 집값은 2008년 8월 정점을 찍고 내리기 시작했다. 강남은 앞서 2007년부터 하락세를 보였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대국민 담화에서 "부동산 시장의 하향 조정 내지 가격조정이 이뤄진다면 시장의 예측보다는 좀 더 큰 폭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도 집값이 ‘한계’ 수준이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집값은 유례없는 장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이 2014년부터 8년째 오르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2000년대 초·중반에도 5년간 오르다 멈췄다.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 7년간 보인 69% 상승률은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8%)의 8배, 경제성장률(17%)의 3배가 넘는다.

서울에서 중간 소득 가구가 중간 가격대 주택을 구입하려면 18년 치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소득 대비 집값(PIR)이 17.8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수준(12)보다 훨씬 높은 역대 최고다.

하지만 아직 꺼질 거품으로 보기엔 이르다. 거품이 꺼지려면 수요가 얼어붙어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없다. 단적인 예로 현재 팔리지 않은 미분양 물량(1만6000가구)이 역대 최저다.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며 가계부채 문제가 대두하고 있지만 소득이나 집값 대비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가계대출이 소득 증가보다 빨리 늘었지만 금리가 떨어지며 소득에서 차지하는 이자 비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현재 시장 상황은 상투나 꼭짓점보단 어깨나 고점에 더 가깝다. 신호등으로 치면 주황색이지 빨간색이 아니다. 신호등은 주황색 다음이 빨간색이지만 경제에선 얼마든지 초록색이 될 수 있다.

공급확대가 집값 안정 우선 과제 

관건은 주택공급이다. 정부는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홍 부총리는 “앞으로 10년간 (매년) 수도권에 약 31만 가구가 공급될 텐데 1기 신도시가 29만 가구라는 것을 고려하면 매년 1기 신도시가 하나씩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1기 신도시 공급 효과에서 명심할 게 있다. 1기 신도시 ‘계획’이 아니라 ‘입주’가 달아오른 집값을 가라앉혔다. 1989년 4월 정부가 1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그해 11월 분당부터 분양을 시작했지만 집값이 더 올랐다. 준공해 입주하기 시작한 1991년부터 집값이 잡혔다.

정부의 큰소리에도 불구하고 주택공급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올해부터 적어도 2~3년간 서울 주택공급은 되레 줄어든다. 정부 추정으로도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4만1000가구로 지난해(5만700가구)보다 1만6000가구(28%) 줄어든다. 앞으로 2~3년 뒤 입주할 아파트 착공 물량도 올해 상반기 1만2000가구로 지난 5년 평균보다 30% 적다.

시장 무시한 규제완화 속도 내야

민간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수적인데 ‘집값 안정’에 발목 잡혔다. 노형욱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6월 주택정책 협력 강화를 위해 만나 “주택시장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한다”며 악수했다.

공공택지 등 공공이 주도하는 주택공급 대책은 임대주택 건립 등을 반대하는 주민과 자치단체 반발에 부닥쳐 곳곳에서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의 경고가 먹히지 않고 집값 상승세가 더 커지는 이유가 이해된다. 이런데도 '3적'만 잡으면 집값 안정이 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