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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김선우 『내 따스한 유령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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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내 따스한 유령들

내 따스한 유령들

내가 티끌 한점인 걸 알게 되면
유랑의 리듬이 생깁니다

나 하나로 꽉 찼던 방에 은하가 흐르고
아주 많은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되죠

드넓은 우주에 한점 티끌인 당신과 내가
춤추며 떠돌다 서로를 알아챈 여기,
이토록 근사한 사건을 축복합니다

때로 우리가 불러도 좋은 티끌들이
서로를 발견하며 첫눈처럼 반짝일 때
이번 생이라 불리는 정류장이 화사해집니다
김선우 『내 따스한 유령들』

별말이 따로 필요 없는 시다.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중 ‘티끌이 티끌에게’의 일부. 부제가 ‘작아지기로 작정한 인간을 위하여’다. 마지막 연은 이렇다. ‘영원을 떠올려도 욕되지 않은 역사는/티끌임을 아는 티끌들의 유랑뿐입니다’

이어지는 ‘작은 신이 되는 날’에서는 티끌을 넘어 먼지다.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내가/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당신을 향해/사랑한다,/말할 수 있어/말할 수 없이 찬란한 날//먼지 한점인 내가/먼지 한점인 당신을 위해/기꺼이 텅 비는 순간//한점 우주의 안쪽으로부터/바람이 일어/바깥이 탄생하는 순간의 기적’

세상은 큰 얘기로 가득하지만, 진짜는 작고 하찮은 것들이다. 시인은 후기에 “연약한 존재가 이미 가진 개별적 온전함을 자주 생각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