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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日엔 “대화하자” 北엔 “평화 지키자” 전향적 메시지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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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향해선 대화를, 북한을 향해선 평화를 강조했다. 다소 원론적인 수준으로, 전향적 메시지는 사실상 없었다.

문 대통령 76주년 광복절 경축사 #日 향해선 “직면 위협 공동대응” #“과거사는 국제적 기준 맞게 해결” #작년엔 징용 배상 판결 언급하며 #“최고의 법적 권위” 양보 없음 시사 #北에는 “번영의 ‘한반도 모델’ 가능” #종전선언 염두 ‘평화의 제도화’ 언급 #과거같은 구체적 대북 제안은 없어

외교ㆍ안보와 관련한 언급은 경축사 후반부에 간단히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한ㆍ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 이후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분업과 협력을 통한 경제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양국이 함께 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우리 정부는 양국 현안은 물론 코로나와 기후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위협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며 일본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 준비가 돼 있다는 점도 다시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바로잡아야 할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역 광장의 강제징용 노동자상. 뉴스1

서울 용산역 광장의 강제징용 노동자상. 뉴스1

앞서 전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영상 기념식 영상 메시지에서 “‘피해자 중심 문제 해결’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과 규범을 확고히 지키겠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때만 해도 경축사에서 일본 전범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를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대법원의 판결은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서 최고의 법적 권위와 집행력을 가진다”고 했다.

“일본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됐다”라고도 했지만, 사실상 배상 판결이 정한 원칙에서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한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결코 나라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제76주년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이 생존 애국지사 초상화 및 정밀모형 특별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뉴스1

제76주년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이 생존 애국지사 초상화 및 정밀모형 특별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올해 경축사의 대일 메시지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온 대일 화해 기조의 연장에 가까웠다. 최근 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와 관련한 법원 판결이 잇따라 대법원 판결과 반대로 뒤집어지고 있는 점 등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새롭고 구체적인 해법에 대한 의지 표명 등도 없었다. ‘일본 때리기’는 자제하면서도 전향적 제안은 하지 않는 식으로 대일 관계를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관련해서도 구체적 정책 소개나 제안 등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비록 통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남북이 공존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북아 방역ㆍ보건 협력체’를 거론하며 “협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동아시아 생명공동체의 일원인 북한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 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또 “한반도의 평화를 공고하게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된다”라고도 말했다. “특히 대한민국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떨쳐내고, 사실상의 섬나라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연결될 때 누릴 수 있는 이익은 막대하다”면서다.

‘평화의 제도화’는 종전선언이나 2018년 4ㆍ27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 비준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등 참석자들과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등 참석자들과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그간 광복절 경축사를 대북 제안의 계기로 삼아왔다. 지난해 경축사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언급하며 “남북이 공동조사와 착공식까지 진행한 철도 연결은 미래의 남북 협력을 대륙으로 확장하는 핵심 동력”이라며 “남북이 이미 합의한 사항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19년에는 북한과의 ‘평화 경제’를 주창했다. 북한은 이튿날 곧바로 담화를 통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하늘을 향해 웃는다)할 노릇”이라고 비아냥대며 미사일 추정 발사체까지 쐈지만, 문 대통령은 사흘 뒤 다시 “평화경제는 우리 미래의 핵심적 도전이자 기회”라며 의지를 이어갔다.

이랬던 문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전향적인 대북 제안 없이 그냥 넘어간 것은 최근 북한의 한ㆍ미 연합훈련 반발로 악화한 국내 여론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연합훈련을 비난하며 지난 10일 남북 간 통신선을 복원 14일 만에 다시 차단했으며, 한국을 향해 “엄청난 안보 위기를 느끼게 해주겠다”(11일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담화)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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