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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정년보장의 꿈…'직시생' '맘시생'은 오늘도 열공 중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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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용 경제정책팀장의 픽: '직시생'과 '맘시생'

서울 소재 한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최모(33)씨는 지난해부터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늦게까지 온라인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스터디 모임에 참여한다.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회사에 사표를 내진 않고, 주경야독으로 공부하고 있다. 최씨는 “어렵게 취직을 했지만 맡은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데다, 위에서 내려오는 실적ㆍ성과 압박이 컸다”며 “공무원이 되면 이런 스트레스는 훨씬 적을 것 같고, 무엇보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공무원 취업 준비중”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올해 공무원 취업 준비중”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현재보다 안정적인 근무환경과 복리후생을 바라는 직장인들이 이른바 ‘직시생’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직시생’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뜻하는 ‘공시생’과 직장인을 합쳐 만든 신조어로, 회사생활을 병행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뜻한다. 이런 직시생들은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15일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올해 인크루트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본업과 함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비율은 전체 응답의 52%로 절반을 넘었다. 이는 2019년 동일한 내용으로 실시한 조사 때의 비율(45.9%)보다 6.1% 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2016년 조사 때는 38%였는데, 직시생의 비중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 취업을 준비 중’이라고 답한 응답자들의 연령대 변화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9년 조사에서는 20대가 54%로 가장 높았지만, 올해는 20대(47.2%)보다 30대(48.1%) 비율이 가장 높았고, 40대 이상도 4.7%로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처럼 직장인들에게까지 공무원 시험 열풍이 부는 것은 공공-민간부문의 처우 간극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무원은 요즘처럼 경제가 악화한 상황에서도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워라밸’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 예전과는 다르다지만 민간기업과 비교하면 공무원이 업무 강도나 실적 압박감, 경쟁 분위기도 덜하다.

공무원 취업을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공무원 취업을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기에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도 한몫했다. 공무원 시험 응시상한연령 제한이 폐지된 상황에서, 공무원 채용 규모가 더 늘어난다는 기대감에 ‘늦깎이’로 시험 준비에 뛰어든 직장인이 적지 않다. 실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무원 수는 3년 8개월 만에 9만9465명이 늘었는데, 이는 그전 4개 정부에서 19년 동안 늘어난 공무원 수(9만6571명)보다 많다.

다만 지금처럼 직장 갖기가 ‘바늘구멍’인 상황에서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건 부담이 크다. 낙방할 경우도 대비해야 하는 데다, 현재의 생활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직시생’을 선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연우 인크루트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장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가 자리 잡은 것도 직시생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며 “자기 계발 시간이 많아지면서 직장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등 시험에 집중할 시간이 더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2021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응시생들이 5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면접시험을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2021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응시생들이 5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면접시험을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엄마들도 늘어 

최근에는 ‘맘시생’도 늘어나는 추세다. 육아ㆍ살림을 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주부 공시생을 뜻하는 신조어다. 네이버 카페에서 ‘맘시생’을 검색하면 1만건이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양가 부모님들이 모두 놀라시고 기뻐했다. ○○ 엄마가 아닌 제 이름으로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같은 내용의 합격 소감부터 “아이를 유치원 보낸 시간과 아이가 자는 새벽 시간에 최대한 많이 공부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주말에는 무조건 도서관에 갔다”처럼 공부방법을 조언해주는 글 등으로 다양하다. “정책ㆍ시사보다 (어린이 애니메이션) 헬로카봇의 이름이 더 익숙하다”, “남편이 또 아이를 갖자는 데 어떻게 하냐”, “내가 공부한답시고 아이가 괜히 희생하는 느낌이 든다” 등 일상을 기록한 글도 많다.

맘시생은 출산ㆍ육아로 인해 불가피하게 직장을 그만두거나 구직 활동을 중단했던 여성들이 주를 이룬다. 육아ㆍ살림ㆍ교육 비용 마련에 보탬이 되고,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수험서를 펼쳐 든 경우가 많다. 기혼자들이다 보니 거주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지방직 9급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들은 한동안 경력이 단절된 상태다 보니 민간 기업에 취업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며 “공무원은 채용 때 경력보다는 시험 점수의 반영 비중이 높고, 일과 가정생활 양립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은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역대 정부 공무원 수 증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역대 정부 공무원 수 증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런 현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국가 경제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인재들이 공공부문에 몰리면서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장수생(오랜 기간 합격하지 못한 수험생) 등 기존 수험생과의 경쟁도 심화한다. 젊은이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시험 준비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산ㆍ소비의 기회비용은 더 커지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장ㆍ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은 “한국의 생산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세계의 첨단 정보ㆍ기술 전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며 “능력 있는 인재들을 공공부문에 몰아넣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며 사회의 인력 배분에 왜곡을 가져온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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