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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진흙탕 헤집던 그때처럼…獨총선 '최악 홍수' 달렸다

중앙일보

입력

“선거는 한때 누군가에게 유리했지만, 이젠 후보와 정당 모두가 롤러코스터 위를 오르내리는 처지다.”(카스텐 니켈 ING그룹 글로벌 매크로 전략 담당)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대유행 속에서도 유럽 전체의 눈이 쏠린 이슈가 있다. 내달 26일로 다가온 독일의 총선이다. 독일의 지도자를 넘어 ‘유럽의 지도자’로 불리며 16년간 집권했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후임 자리를 놓고 3명의 후보가 오차 범위 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아르민 라셰트(60) 독일 기민당 대표·안나레나 배어복(40) 녹색당 대표·올라프 숄츠(63) 재무장관. [AFP·로이터=연합뉴스]

(왼쪽부터) 아르민 라셰트(60) 독일 기민당 대표·안나레나 배어복(40) 녹색당 대표·올라프 숄츠(63) 재무장관. [AFP·로이터=연합뉴스]

선거 45일 앞두고 선두와 3위 지지율 4% 차이

1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집권 여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돌풍의 주인공이었던 녹색당이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사회민주당(SPD)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며 “이제 이들의 지지율은 모두 오차 범위 내에 들어왔다”고 지금의 선거 국면을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최근 독일 방송 RTL와 여론조사기관 포르자가 독일 시민 2509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일요일이 연방의회 선거라면 어느 정당에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독일 국민의 23%만 현 여당인 기민·기사당 연합을 뽑겠다고 답했다. 반면 녹색당을 지지한 시민이 20%, 사민당도 19%를 기록해 1위와 차이는 3~4%밖에 나지 않았다.

지난 2017년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아르민 라셰트 당시 기독민주당 부대표 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州) 총리가 뮌스터에서 열린 당 행사에서 당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017년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아르민 라셰트 당시 기독민주당 부대표 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州) 총리가 뮌스터에서 열린 당 행사에서 당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후보자 개인에 대한 선호도 문항에선 여당의 약세가 더 극명했다. 메르켈 총리가 후임으로 점찍은 아르민 라셰트 집권 기독민주당 대표(60)는 12%의 지지를 얻어 3위에 그쳤다. 사민당 총리 후보인 올라프 숄츠(63) 현 재무장관이 26%로 1위였고, 안나레나 배어복(40) 녹색당 대표는 16%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 6월 말까지만 해도 정당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기민·기사당 연합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올 초 여론조사에서 30% 가까이 지지를 얻었던 녹색당도 지지율을 반납하며 사민당의 상승세가 뚜렷해진 상황이다.

‘최악의 홍수’에 울고 웃은 후보들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독일 서부와 벨기에·네덜란드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많은 건물이 붕괴하고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사진은 16일 독일 에어프트슈타트시의 블레셈 마을 일부가 급류에 휩쓸려 완전히 파괴된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독일 서부와 벨기에·네덜란드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많은 건물이 붕괴하고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사진은 16일 독일 에어프트슈타트시의 블레셈 마을 일부가 급류에 휩쓸려 완전히 파괴된 모습. [AFP=연합뉴스]

당초 집권 여당과 녹색당의 양강 구도를 보이던 선거 판세가 달라진 건 각 정당 후보들에 대한 구설수가 이어지면서다.

지난달 말 독일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으로 불리는 홍수가 발생하며 18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라셰트 대표가 주총리로 있는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州)에 피해가 집중돼 그는 지난 17일 홍수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라셰트 대표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수재민을 위로하는 중에 다른 참석자와 웃으며 농담을 나눴고, 이 모습은 다음날 각종 신문 1면에 도배됐다. 이후 라셰트 대표는 ‘독일이 보다 공격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짜증 섞인 말투로 “오늘 같은 단 하루의 사건(홍수)으로 정책을 바꿀 수는 없다”고 답하며 논란을 키웠다.  

아르민 라셰트 기독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홍수 피해 지역을 방문했다가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구설에 올랐다. [AFP=연합뉴스]

아르민 라셰트 기독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홍수 피해 지역을 방문했다가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구설에 올랐다. [AFP=연합뉴스]

이는 선거 주요 아젠다로 떠오른 기후위기와 관련, 라셰트 대표의 친기업적이고 보수적 환경정책을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 선거 전문가들은 중년의 엘리트 백인 남성이라는 매력이 적은 후보 특성도 그가 넘어야 할 벽으로 보고 있다. 라셰트 대표는 1979년 18살 나이로 기민당에 입당해 1994년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 2017년엔 고향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총리에 당선됐다. 이후 지난해부터 메르켈 현 총리에 이어 기민당 대표를 맡아왔다.

이런 라셰트 대표와 마찬가지로 구설수 속에 지지율 하락세에 빠진 배어복 대표는 녹색당이 ‘기후대안정당’ 임을 강조하고 나선 상황이다.

지난 2005년 25살의 나이로 녹색당에 가입한 배어복 대표는 28살에 녹색당 브란덴부르크 주대표에, 37살에는 당 공동대표에 올랐다. 녹색당의 급진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중도적 정책을 내놓으며 유력한 ‘포스트 메르켈’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최근 그가 당에서 받은 보너스 2만5000유로(약 3400만원)를 의회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출간한 저서에도 표절 시비가 붙으며 지지율이 하락했다.

지난달 5일(현지시간)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 등에 따르면 독일 현지에선 안나레나 배어복 녹색당 대표가 최근 출간한 저서 『지금-우리나라를 새롭게 바꿀 방안』에서 29차례에 걸쳐 표절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5일(현지시간)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 등에 따르면 독일 현지에선 안나레나 배어복 녹색당 대표가 최근 출간한 저서 『지금-우리나라를 새롭게 바꿀 방안』에서 29차례에 걸쳐 표절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배어복 대표는 지난 3일 “환경부를 확대 개편하고, 환경부 장관이 다른 정부 부처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겠다”며 총선 승부수를 띄웠다. 다만 이를 두고 울리히 지베러 독일 밤베르크대학의 정치학 교수는 “2022년까지 탈석탄 달성 등 녹색당의 움직임 대부분은 주로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를 정하는 역할을 할 뿐,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정책의 현실성 부족을 지적했다.

앞선 두 후보에 밀려 3위에 머무르고 있던 숄츠 장관도 유력 후보로 떠오르는 중이다.

숄츠 장관은 지난 11일 독일 벨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민당에 유리한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동력을 얻고 있다”며 “나의 개인 지지율은 더 좋아지고 있으며, 사민당의 지지율도 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코로나19 제한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AP=뉴시스]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코로나19 제한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AP=뉴시스]

나라의 국고지기 역할을 하는 현 재무장관인 그가 코로나19 대처와 대홍수 회복 국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숄츠 장관은 이미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적극적인 재정 투입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는 홍수 피해 직후에도 즉시 4억 유로(약 5494억원)의 긴급 구호자금 투입을 결정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이에 대해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02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사민당)도 홍수가 나자 고무장화를 신고 진흙탕을 헤치고 다니는 모습으로 당시 지지율 1위 기민·기사당을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며 “홍수 피해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누가 승기를 잡을지 판가름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숄츠 장관의 단조로운 연설과 라셰트 대표와 마찬가지로 엘리트 중년 백인이라는 이미지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대연정 흔한 獨…선거 향방은?

독일 연방 하원의 본회의 모습.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서로 다른 정책을 가진 정당들이 연합해 연정을 꾸리는 협치 문화가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앙DB

독일 연방 하원의 본회의 모습.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서로 다른 정책을 가진 정당들이 연합해 연정을 꾸리는 협치 문화가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앙DB

다당제인 독일 정치 특성상 선거 이후에도 단독정부 구성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추후 어떤 정당이 연립정부를 꾸리느냐에 따라 누가 총리가 될지도 결정된다. 독일에선 정치 노선이 달라도 신호등 연정(사민당-자유민주당-녹색당의 대표색 적황녹 연정)을 구성하는 등 다양한 연정의 형태가 나타난다.

이에 대해 콘스탄체 스텔젠뮐러 미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은 FT 기고를 통해 “최근 여론조사에서 45%의 독일인이 3명의 후보 모두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답을 했다”며 “이들이 남은 선거의 축(pivot)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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