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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상 막히자 범죄조직까지…담배 밀수의 진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9월, 늦은 밤 인천항. 한 대형 화물트럭이 중국서 들여온 물건 일부를 싣고 항구를 몰래 빠져나왔다. 수상한 낌새에 세관 직원은 트럭을 추적했다. 행선지는 부산 깡통시장과 함께 밀수 담배가 자주 거래되는 대구 교동시장. 시장 어둑한 골목에 멈춰선 트럭은 담배가 든 상자를 내리다 잠복해 있던 세관 직원들에게 붙잡혔다.

[김남준의 稅로보다]

문제가 있었다. 적발 담배 규모가 작았다. 관세법은 규모와 상관없이 밀수를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운송책까지 갖춘 전문 밀수는 가중 처벌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하려면 1회 밀수 규모가 2억원이 넘어야 했다. 밀수업자도 이 점을 알고 한 번에 운반하는 규모가 2억원이 넘지 않게 관리했다.

관세청은 접근 방법을 바꿨다. 특가법 중 ‘범죄 단체·집단 구성’ 요건을 이용하기로 했다. 범죄 단체는 조직폭력배같이 실제 범죄 조직을 구성한 경우만 해당한다. 요건이 까다로워 담배 밀수에 적용한 사례가 한 번도 없었다. 관세청은 우선 유통업자 동선과 통화 내역을 바탕으로 약 4개월가량 밀수 조직을 역추적했다. 그 결과 실제 이들이 운송·창고·유통·판매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한 점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심지어 사설 창고에 수출용 국산 담배와 중국산 담배 등 약 76만여갑(23억원)을 쌓아놓고 전국에 유통까지 했다. 관세청과 검찰은 밀수 조직 구성 혐의로 관련자 15명 중 7명을 구속·고발했다. 역사상 처음 담배 밀수 조직을 검거한 순간이었다.

월 38만갑 나르던 보따리상 막혔다

적발한 밀수 담배. 관세청

적발한 밀수 담배. 관세청

담배 밀수에 영화에서나 보는 범죄 조직까지 등장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이 크다. 원래 밀수 담배 주요 운반책은 속칭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중국 관광객이다.

2019년 기준 관세청이 추정하는 보따리상은 총 4770명이다. 이들은 통상 1~2주에 한 번씩 한국으로 입국해 담배를 몰래 들여왔다. 보따리상(4770명)이 월 6회 입국해 1인당 면세 범위인 담배 10갑(1보루)만 반입했다면, 월평균 약 38만1600갑이 이들에 의해 유통됐다고 볼 수 있다. 숨겨 들어온 밀수 담배까지 치면 그 양은 더 많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보따리상 활동이 막히면서 담배 밀수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화물에 숨겨 들어오는 등 좀 더 큰 규모의 전문화된 방식이 필요했다. 실제 이런 변화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관세청 따르면 2019년 보따리상 같은 여행자를 통한 담배 밀수는 99억원(2277건)이었다. 화물 밀수 53억(32건)에 비해 액수는 약 2배, 건수로는 70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해 담배 밀수 적발은 여행자 11억원(234건), 화물 635억원(22건)으로 역전했다.

특히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인 근로자는 한국 담배의 높은 세금 때문에 자국 담배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이 수요를 원래 보따리상이 해결해 줬다. 이 때문에 중국산 담배는 대부분 여행객을 통해 들여오고 화물을 통한 밀수의 90% 이상은 국산 담배였다. 하지만 보따리상이 막히자 화물에 숨겨 오는 중국산 담배도 많아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화물 밀수 담배 중 절반인 49%가 중국산 담배다.

높은 세금 피하려 밀수도 각양각색

배를 통해 들여온 밀수 담배. 관세청

배를 통해 들여온 밀수 담배. 관세청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담배 밀수 수법도 각양각색이다. 앞선 사례처럼 정상화물과 섞어 들어왔다가 빼돌리는 방법은 '고전'에 속한다. 담배를 중국 선박에 실어 공해 상에서 만나 한국 배로 옮겨 나르는 분선밀수도 요즘 자주 적발되는 사례다. 화물이 든 컨테이너 빈 곳에 숨겨 들어오는 속칭 커튼 치기 방식도 종종 이용한다. 수출용으로 신고한 뒤 배에는 빈 상자를 싣고 실제 담배는 빼돌려 들어오는 바꿔치기 방식도 있다.

담배 밀수가 성행한 것은 높은 담뱃세 때문이다. 2014년 정부가 담뱃세를 인상하면서 한 갑에 2500원이던 담배 가격이 4500원으로 뛰었다. 1000원 내외인 중국 담배와 가격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때부터 세금이 없는 수출용 담배를 몰래 들여와 되팔거나, 중국 담배를 밀수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실제 관세청에 따르면 2014년 88건이던 담배 밀수 적발 건수는 담뱃세를 올린 이후인 2015년 590건으로 6배 이상 껑충 뛰었다. 2018년에는 1570건, 2019년 2309건으로 급증했다.

세금만 원가 648%…밀수 1갑에 2천원 챙겨 

담배에 붙는 세금이 많다 보니 밀수업자가 챙기는 수익도 상당하다. 수입 궐련 담배를 기준으로 보면 담배 1갑 기준에 관세는 담배 원가의 40%가 붙는다. 여기에 개별소비세(594원)·담배소비세(1007원)·지방교육세(443원)·건강증진 부담금(841원)·폐기물 부담금(24.4원)이 추가로 더해진다. 또 부가가치세도 세금까지 포함한 전체 금액에서 10%가 추가 붙는다. 만약 수입원가가 500원인 담배가 있다면 제세·부담금 합계는 3238.4원으로 원가 대비 648%에 달한다.

하지만 이 막대한 세금이 모두 밀수업자 호주머니로 들어가진 않는다. 밀수 담배인 만큼 일반 담배보다는 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관세청 조사 따르면 밀수업자가 해외에서 산 담배 원가와 밀수해 국내에 유통한 가격은 1갑당 약 2000원가량 차이가 났다. 밀수 당시 담배가격이 약 1000원 정도라고 하면 2000원을 더 붙여 3000원 정도로 유통한다는 얘기다. 20피트 컨테이너 분량인 35만갑을 밀수하면 7억원가량의 부당 이득이 발생하는 셈이다. 2000원 이익 중 실제 밀수업자에게 떨어지는 금액은 절반가량인 800~1000원으로 관세청은 보고 있다. 나머지는 도매상과 소매상 수익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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