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에 통신선 감추고 한미훈련 때리고…한탕 친 속내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8.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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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北 주한미군 철수 요구

한미 연합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된 1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고공정찰기 U-2S가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연합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된 1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고공정찰기 U-2S가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혼을 약속한 상대가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나를 본인의 부모님에게 소개해주지 않는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①부모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②부모님의 축복을 받을 자신이 없어서
③나를 결혼 상대로 소개하기엔 창피해서
④말만 그렇지 실제로는 나와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

4개 보기 중 정답이 뭐라고 해도 이 커플의 앞날은 어둡다. 특히 그러는 이유가 ③이나 ④라면 결혼은커녕 관계 자체를 재고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지금 남북관계가 이와 비슷하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복원하면서 “북남 수뇌들께서는 통신연락통로들을 복원함으로써 호상신뢰를 회복하고 화해를 도모하는 큰걸음을 내짚을 데 대해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외적으로 소식을 알리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간략한 보도문을 낸 게 전부였다.

정작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 조선중앙방송 등에는 전혀 이를 알리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걸까. 앞의 질문에 대한 사지선다형 보기를 조금만 바꿔보자.
①주민들에 대한 통치력에 문제가 있어서
②주민들의 지지를 얻을 자신이 없어서
③남한과 다시 접촉을 재개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민망해서
④말만 그렇지 실제로는 남한과 화해를 도모할 생각이 없어서

북한 전체주의 체제의 특성상 ①이나 ②는 이유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③의 가능성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남ㆍ북ㆍ미 간 연쇄 정상회담 뒤 대내적으로도 비핵화 공약을 널리 알렸다가 협상 교착으로 아무런 대가도 얻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며 이른바 ‘스타일을 구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6월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해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됐다”고 엄포까지 놓지 않았는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④가 정답일 경우다. 애초에 통신선 복원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는 뜻이 없고, 목적은 다른 데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난 5일 경기도 동두천시 주한미군 캠프 케이시에서 미군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경기도 동두천시 주한미군 캠프 케이시에서 미군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니나 다를까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10일 담화에서 한ㆍ미 연합훈련에 반발하며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며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골적인 주한미군 철수 요구로, 이는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일삼던 2016년 7월 북한 정부 대변인 성명으로 발표한 ‘조선반도 비핵화’ 5대 조건과 맞닿아 있다.
▶남한 내 미국 핵무기 모두 공개 ▶남한 내 모든 핵무기ㆍ기지 철폐 및 검증 ▶한반도 및 인근에서 미국의 핵전력 전개 금지 ▶대북 핵 사용 금지 확약 ▶남한 내 핵 사용권을 가진 미군 철수 등이다.

북한이 이를 약 5년 만에 다시 들고나온 건 주한미군을 협상카드화하는 시도를 다시 한번 해볼 만 한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2016년 당시 정부는 북한의 조건 제시에 대해 “주한미군 철수 요구 등은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훼손하려는 기만적 술책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조준혁 외교부 대변인)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대놓고 요구한 뒤에도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통일부는 “북한의 의도를 예단하지 않고 면밀히 주시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사실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에 맞닥뜨린 북한은 도발 등을 감행해 강 대 강 원칙으로만 맞서기도, 미국이 내민 손을 덥석 잡기도 어려운 복잡한 상황이다. 주한미군까지 건드려 일단 판을 크게 흔들어 놓고 한국이 어떻게 움직일지 지켜보는 게 북한 입장에선 결코 나쁜 수가 아닌 셈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자 2면에 전날 발표된 김여정 당 부부장의 연합훈련 비판 담화를 게재했다.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자 2면에 전날 발표된 김여정 당 부부장의 연합훈련 비판 담화를 게재했다. 뉴스1

북한은 김여정의 담화 발표 뒤 통신선을 다시 차단했다. 담화 내용은 곧바로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대내 매체에 보도됐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통신선 복원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마찬가지이고, 북한 당국이 연합훈련에 엄중하게 항의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 사실만 있는 셈이다.

한국의 대답은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결혼까지 약속해놓고 부모님 모르게 비밀연애를 하더니, 대판 싸운 소식은 득달같이 달려가 부모님에게 알리는 상대에게 어떤 답을 내놓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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