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2도가 순식간에 15도…2300만명이 누린 '마법 에어컨'

중앙일보

입력 2021.08.14 05:00

동굴 입구부터 오싹 “에어컨보다 시원” 

막바지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12일 충북 단양군 단양읍 고수동굴. 입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찬 기운이 느껴졌다. 더위에 벌겋게 달아오른 살갖이 순간 오싹해지더니, 땀이 차갑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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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동굴 밖 기온은 섭씨 32도. 하지만 동굴 안에서는 “와 시원하다”란 메아리가 연신 울렸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오호연(31)씨는 “아이들 방학을 맞아 피서와 체험학습을 겸해 고수동굴에 왔다. 에어컨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시원하다”고 말했다. 관람을 마친 한 노인은 “시원한 맛을 실컷 봤더니, 정말 밖에 나가기 싫다”며 동굴 입구를 서성거렸다.

폭 1m의 철제 탐방로를 따라 동굴 안으로 200m를 들어가자 ‘17℃’가 표시된 온도계가 보였다. 500m 지점에는 15도로 더 낮아졌다. 김경동 고수동굴 가이드팀장은 “동굴 안 기온이 1년 내내 영상 10~15도를 유지하고 있어 관람 초반에는 냉장고에 온 것처럼 으슬으슬할 정도”라며 “올해는 장마가 짧은 데다 폭염이 일찍 기승을 부리면서 가족 단위 관광객이 더위를 피해 동굴을 많이 찾았다”고 말했다.

충북 단양의 명물인 고수동굴(천연기념물 제256호)은 입구에서부터 냉기가 느껴진다. [연합뉴스]

충북 단양의 명물인 고수동굴(천연기념물 제256호)은 입구에서부터 냉기가 느껴진다. [연합뉴스]

한낮 폭염에 동굴 안 온도계는 ‘15도’

고수동굴에는 휴가철인 7월 말부터 최근까지 주중 하루 평균 2000명, 주말은 3600여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의 60% 수준이다. 김 팀장은 “긴 장마와 코로나까지 겹쳤던 작년보다는 상황이 좀 나아졌다”며 “2016년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경관을 가렸던 구조물을 걷어내 쾌적한 관람 환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인 단양은 ‘동굴의 왕국’으로 불린다. 충북 천연동굴 일제 조사 보고서와 문화재청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견한 단양의 천연동굴은 181개다. 제주 용암동굴과 바닷가 해식동굴, 강원 지역 석회암 동굴을 포함해 전국에 1200∼1300개의 천연동굴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비율이다.

단양의 석회암 동굴은 5억년 전 퇴적된 탄산염암이 빗물이나 지하수에 의해 오랫동안 용식작용을 거치면서 생겼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종유석, 석순, 유석, 석화, 동굴생성물이 형성됐다. 이종희 한국동굴연구소 부소장은 “단양에 분포한 천연동굴은 모두 석회암 동굴로 조사됐다”며 “동굴 안에 사는 생물이나 종유석, 석순 등 생성물을 분석하면 과거에 한반도가 어떤 기후였는지, 동굴 생성 과정은 어땠는지 파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수동굴 천장에 달린 거대한 종유석. 최종권 기자

고수동굴 천장에 달린 거대한 종유석. 최종권 기자

5억년 세월 빚은 예술, 기이한 암석 가득 

이들 동굴은 학술 가치 외에 피서지로도 인기다. 천연동굴은 연중 온도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데, 동굴이 위치한 지역의 연평균 기온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에 천연동굴이 위치한 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10도~14도 정도다. 30도를 웃도는 여름에 더 시원하고, 바깥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에 따뜻한 이유다.

단양에 있는 천연동굴 중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은 고수동굴(천연기념물 제256호)과 온달동굴(천연기념물 제261호), 천동동굴(지방기념물 제19호) 등 3곳이다.

고수동굴은 단양을 대표하는 석회암 동굴이다. 1973년 학교법인 유신학원의 설립자인 고 박창원 이사장이 자연학습관찰장 부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안쪽까지 깊숙이 뻗은 동굴을 발견해 한국동굴학회의 학술조사가 이뤄졌다. 76년 개장한 뒤 아이들의 자연 학습장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까지 23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고수동굴 사자바위. [사진 단양군]

고수동굴 사자바위. [사진 단양군]

단양 석회암 동굴만 180개…개방은 3곳 

이 동굴은 1.3㎞ 길이 탐방로를 따라 펼쳐진 거대한 종유석이 장관을 이룬다. 마리아상·사자바위·독수리·천당성벽 모양의 종유석은 5억년의 세월이 빚어낸 예술 작품에 가깝다. 미로처럼 난 탐방로를 따라 계단을 오르내리며 희귀한 암석들을 구경할 수 있다. 화석 곤충으로 알려진 고수귀뚜라미붙이를 비롯해 옆새우, 톡톡이, 노래기, 진드기, 딱정벌레 등 동굴 곤충을 볼 수 있다.

470m 길이의 천동동굴은 1977년 마을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종유석과 석순의 생성이 매우 느린 석회동굴 초기 단계 특징을 보여준다. 동굴 속으로 스며든 지하수량이 적어 종유석과 석순이 느리게 형성돼 그 규모는 작지만, 정교한 편이다. 지하수가 고인 연못엔 세계적으로 희귀한 ‘포도구상체’와 꽃쟁반 바위를 볼 수 있다.

단양 천동동굴. [중앙포토]

단양 천동동굴. [중앙포토]

영춘면 온달관광지에 있는 온달동굴은 붉고 하얀 종유석과 석순이 발달해 독특한 경관을 선사한다. 굴 길이는 700m, 굴 입구 높이는 2m 정도다. 이 동굴은 굴 입구로 얼음처럼 찬물이 흘러나오고, 종유석과 석순이 갖가지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온달동굴은 지하수가 풍부해 지금까지도 종유석과 석순이 생성되고 있으며 노래기와 지네, 곤충, 포유류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2019년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무(無)장애 공간 조성 사업에 선정돼 향후 휠체어를 타고 동굴 내부 관람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류한우 단양군수는 “신기하게 생긴 종유석과 석순을 보며 탐험하는 재미를 느끼는 게 단양 동굴의 매력”이라며 “방문객 안전을 위해 방역대책과 시설물 관리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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