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김두관 상처 본 이재명…끝까지 지사직 사수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1.08.14 05:00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 뉴시스

언제 물러날 것인가. 지사직 사퇴시기를 둘러싼 이재명 경기지사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만약 이 지사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되더라도 이 지사는 법률적으로 12월9일(선거일 전 90일)까지 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지사는 지난 6일 “경선 완주와 도지사직 유지 둘 중 하나를 굳이 선택하라고 요구하면 도지사직을 사수하겠다”고 말했지만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전형적인 딜레마 양상이다.

거세지는 사퇴 압박 

최근 이 지사의 지사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야 모두에서 높아지고 있다. 경쟁자인 이낙연 예비후보는 지난 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츨연해 “(경기도지사직) 사퇴 자체는 개인의 양심의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도정을 뛰어넘는 개인 홍보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 지사가 도정을 기본소득 등 대선 어젠더 어필의 무대로 삼고 있어 경기도의 예산이 사실상 선거준비에 쓰이고 있다는 불신이 깔린 말이다. 이상민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도 지난 5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사직 유지에 대해 “사실 이재명 후보가 지사직을 갖고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지 않으냐”며 “그럴 땐 딱 직책을 놓고 뛰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지난 1일 일찌감치 지사직 사퇴 의사를 밝힌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지난 7일 이 지사를 향해 “대선 경선이 장난이냐”고 쏘아붙였다. 그는 페이스북에 “경선 중에도 지사 찬스, 경선에서 패배했을 때를 대비한 지사 찬스로 보험 드는 행태”라며 “최종 후보로 선출되면 지사직에서 사퇴해야 하는데, 그때는 도민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느냐”고 따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YTN 주최 TV토론에서 이낙연 후보를 지나치고 있다.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YTN 주최 TV토론에서 이낙연 후보를 지나치고 있다.뉴스1

원희룡·김두관 효과 

외부적 압박이 거세질 때마다 이재명 캠프 내부에선 ‘반면교사(反面敎師)’론이 제기된다. 원희룡·김두관 효과다. 원 전 지사는 지난 11일 퇴임식에서 “많은 국민께서 무너진 공정과 벼랑 끝 생존 위기에 분노하고 있다. 제주도민을 보호하고, 대한민국 국민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조기 사퇴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같은 날 민주당 제주도당은 “원 지사의 대권 행보로 인해 도정 공백이 우려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이로써 ‘도정에 전념하겠다’거나 ‘도민만 바라보겠다’고 했던 원 지사의 말은 공수표로 남게 됐다”는 논평을 냈다. 원 전 지사 페이스북에도 “도민과 도정에 무책임하고, 출마 자체에 의미를 두는 대권 도전이 실망스럽다”, “지지율도 안 나오는데 대선 나간다고 지사직을 팽개쳤다” 등 댓글이 많았다.

지사직 조기 사퇴 리스크 논의에 빠질 수 없는 사례가 김두관 의원이다. 2012년 ‘친노 유망주’였던 그는재임 2년 차에 경남지사직을 사퇴하고 18대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민주당 내엔 그때 받은 김 의원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김 의원은 지난 7일 “저는 지사직을 유지하면 아무도 (대선 출마) 진정성을 믿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사퇴를 결심했다”며 “어리석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대선에 도전하는 광역단체장들에게 경선 국면에서 직을 버리는 것은 금기가 됐다. 2017년 19대 대선땐 홍준표 경남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 6명의 지방자치단체장이 모두 경선이 끝날 때가지 직을 유지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홍 지사는 오히려 공직자 사퇴시한 3분 전까지 지사직을 붙들어 ‘꼼수 사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론조사도 '난제' 입증…캠프 내도 갑론을박

2012년 18대 대선 출마를 위해 경남도지사를 사퇴한 김두관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주자가 그해 7월 6일 도청을 떠나며 공무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당시 선택에 대해 지난 7일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도지사직 사퇴는 권한을 위임한 도민들 몫이지 저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2년 18대 대선 출마를 위해 경남도지사를 사퇴한 김두관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주자가 그해 7월 6일 도청을 떠나며 공무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당시 선택에 대해 지난 7일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도지사직 사퇴는 권한을 위임한 도민들 몫이지 저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 지사의 딜레마가 난제임은 여론조사로도 드러난다. 매일경제ㆍMBN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1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선 ‘이 지사가 지사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51.8%로 사퇴 반대 의견(38.6%)보다 13.2%포인트 높게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층 내에선 ‘지사직을 유지해 한다’는 의견이 54.8%로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37.1%)보다 많았고 경기ㆍ인천 응답자 중엔 지사직 사퇴(45.8%)와 유지(43.3%) 의견이 팽팽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쉽게 답을 내지 못하는 건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지사직 유지 혹은 사퇴를 향한 비판은 사실 어느 쪽이든 일리 있는 주장”이라며 “따라서 후보가 어떤 맥락에서 직을 유지하거나 그만 두는 것인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캠프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수도권 의원은 “지방 동선이 너무 제약되고 정책 비전을 내놓는 데도 지사직이 신경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걱정했다. 도정 홍보가 득표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코로나19 확산 저지 등 단체장의 의무는 적잖은 부담이다. 반면 이재명 캠프의 다른 인사는 “자칫 이른 사퇴로 경기도내 여론이 등을 돌리면 본선 경쟁력에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9월 국정감사 완료 직후가 사퇴 적기라는 의견도 있지만 최근엔 최소한 10월10일 본선 후보 선출 때까지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성민 대표는 “과거 김두관 의원의 경우, 경선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힘겹게 얻었던 경남지사 자리를 내려놔서 비판이 거셌다”며 “반면, 현재 이재명 지사는 지지율 1위 후보임에도 직을 유지한 채 ‘전 도민 재난지원금’ 등을 추진하니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사퇴 여부보다 직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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