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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에 대한 배려와 환대가 레스토랑의 진짜 경쟁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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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호 24면

POLITE SOCIETY

프랑스 레스토랑의 게리동 서비스. 테이블 바로 앞에서 주문할 음식을 플레이팅해 준다. [사진 박진배]

프랑스 레스토랑의 게리동 서비스. 테이블 바로 앞에서 주문할 음식을 플레이팅해 준다. [사진 박진배]

폴라이트 소사이어티(Polite Society)는 사회적 상황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엘리트 그룹, 또는 그 품위와 격식을 뜻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며, 공손한 어법과 태도로 소통하는 미덕이 담겨 있다. 폴라이트 소사이어티로 가는 길을 모색해 본다.

외국과 달리 손님이 수저도 세팅 #직원은 음식만 갖다주고 손 놓아 #한국 레스토랑 서비스 바닥 수준 #외식문화 발전, 한식 세계화 먼길 #중식당, 불친절해 세계 최고 못 돼 #영국·일식당, 친절 몸에 배 최정상

전 세계에 미식 열풍이 불기 시작한 지 벌써 수십 년 됐다. 1980년대 프랑스의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 1990년대 스페인의 분자 음식(Molecular Gastronomy) 그리고 21세기 초반의 노르딕 음식(Nordic Cuisine)은 혁명이었다. 이들 음식은 나름대로 외식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음식의 트렌드는 실제로 이 세 가지 장르를 조합하거나 재해석한 것이다. 오늘날 ‘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나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에 등재된 리스트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한 가지 음식 사진을 보고 어느 나라, 어느 레스토랑의 메뉴인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들 비슷한 식자재를 사용하고, 조리 방법이나 플레이팅(plating)도 서로 베껴서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고급 레스토랑을 예로 들면, 약간의 재료 차이를 제외하고는 한식당과 프랑스식당의 구분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한동안 한식세계화를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적이 있었다. 각종 행사에 외국인을 초대해서 한식을 제공하면서 “원더풀!”이라고 외치는 반응을 기대하고 캠페인의 성공을 꿈꾸었다.

음식 맛 못지않게 서비스 향상시켜야

스페인 마드리드의 노포 레스토랑. 셰프가 일일이 테이블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모습. [사진 박진배]

스페인 마드리드의 노포 레스토랑. 셰프가 일일이 테이블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모습. [사진 박진배]

하지만 그 속엔 불편한 진실이 있었다. 누군가가 불러주고 공짜 음식을 주면 다 좋아한다. 행사에 참석한 외국인은 대부분 한식이 맛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평소에 자기 돈을 내서 정기적으로 한식당에 가지는 않는다. 한 달에 몇 번씩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나 일식당을 찾는 것과 비교된다. 음식의 세계화는 정부의 홍보와 행사를 통해서 할 수 없다. 레스토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 명 한 명의 주인과 셰프가 성공적인 한식당을 만들고, 그 숫자와 스펙트럼이 넓혀질 때만이 한식이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스토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음식, 인테리어, 서비스, 소셜미디어, 지인의 추천 등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같은 레스토랑을 다시 방문하는 이유는 오로지 음식 그리고 좋은 경험 때문이다.

레스토랑은 단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곳만은 아니다. 음식을 통해서 환대를 베풀고 ‘접객’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서비스의 비중이 매우 중요하다. 음식에 대해서, 인테리어에 대해서 잘 모르는 고객도 서비스의 수준은 금방 알아차린다. 접객은 감정적인 부분과 얽히기 때문에 불친절을 경험한 손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덴마크의 노르딕 음식점. 음식에 관해 설명하는 셰프. [사진 박진배]

덴마크의 노르딕 음식점. 음식에 관해 설명하는 셰프. [사진 박진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십여 년간 한국의 외식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해 왔다. 각 나라의 음식을 취급하는 다양한 형태의 레스토랑들도 많이 생겼다. 그런데 이 발전의 대부분은 기술, 즉 음식의 맛에 집중되어 있다. 감탄스러울 만큼 공을 들인 음식의 레시피도 많고, 플레이팅과 같은 음식 연출방식도 큰 도약을 했다.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의 내용도 온통 맛에 관한 이야기로 넘쳐난다. 레스토랑이라는 공간과 그 경험에 관한 내용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렇게 한 방향으로 달리다 보니 불균형이 생겼다. 좋은 서비스가 병행하지 못하는 점이다. 물이 셀프인 것을 필두로, 테이블 옆 서랍을 빼서 손님 스스로 수저와 냅킨을 세팅하는 것이 정형화된 시스템으로 정착됐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직원이 손님의 테이블을 보지 않는 것이다. 손님이 맛있게 먹는지, 필요한 게 없는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관심이 없다. 직원은 주방에서 테이블까지 음식만 날라다 준다. 어떨 때는 음식을 들고 와서는 가만히 서 있다. 손님이 테이블에서 다른 접시들을 직접 옮기면서 직원이 그릇 놓을 공간을 만들어주기를 기다린다.

필요할 때 직원을 부를 수 있는 호출벨은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딱 맞아 떨어진다. 웨이터가 테이블로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외국의 경우에 비해서 기발하다. 하지만 그 결과, 벨을 누르지 않으면 아예 직원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호출하면 “뭐가 필요하냐?”고 물으며 귀찮아하기도 한다.

혹시라도 이런 서비스를 지적하면 얼굴색이 변하고, 불쾌함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손님을 챙기는 풍경은 실종된 지 오래다. 모르는 사이 우리나라 레스토랑의 서비스 수준은 바닥을 치고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외식문화의 발전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

스페인 ‘아키라레’. [사진 박진배]

스페인 ‘아키라레’. [사진 박진배]

외국의 사례를 잠시 살펴보자. 영국은 나쁜 날씨와 비옥하지 못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로 음식이 맛없는 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조건 속에서도 일찌감치 테이블 매너를 구축하며 레스토랑의 경험을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영화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의 한 장면처럼 통감자 구운 걸 제공하더라도 격식에 맞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외식산업의 수도 중 하나가 런던인 것은 그 이면의 빈틈없는 서비스 덕분이다.

세계 레스토랑 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프랑스와 일본이 이탈리아와 중국을 제치고 외식의 최고봉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음식의 맛뿐만은 아니다.

홀의 접객도 주방의 요리와 마찬가지로 기술이라고 여기는 프랑스의 경우,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이 좋은 시간을 보내는지, 필요한 것이 없는지 매 순간 살피고 챙긴다. 유서 깊은 레스토랑들에서 아직도 웨이터들이 자신이 담당하는 테이블을 자식, 손자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전통도 있다. 자신이 근무하는 레스토랑과 접객하는 테이블에 대한 긍지, 수십 년 넘게 쌓아 오는 고객들과의 관계가 구축한 부러운 현상이다.

프랑스 웨이터들 담당 테이블 대물림  

도쿄의 사찰요리 전문점. 손님에 대한 섬세하고 지극한 배려를 뜻하는 기쿠바리 정신이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 박진배]

도쿄의 사찰요리 전문점. 손님에 대한 섬세하고 지극한 배려를 뜻하는 기쿠바리 정신이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 박진배]

자부심, 독창성 그리고 장인 정신이 합쳐진 개념으로 일본인들이 즐겨 쓰는 ‘고다와리(こだわり)’라는 단어가 있다. 일본의 외식산업 종사자들이 가슴 한가운데 늘 새기고 있는 정신이다. 그와 동시에 중요시하는 정신이 ‘기쿠바리(ぎくばり)’다. 손님에 대한 섬세하고 지극한 배려를 뜻하는 단어다. 이 두 개념이 오늘날 일본의 음식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시키고, 그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바탕이다.

이제는 레스토랑이 음식의 맛에 집중하는 것만큼 서비스에 대한 노력도 생각해야 할 때다. 이는 단지 고급 레스토랑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 다 그렇게 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환대의 마음을 가지고 손님을 대하는 것은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다. 비싼 임대료나 최저임금 상승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비용들은 음식 선진국들에서 훨씬 높다.

프랑스 레스토랑의 테이블 배치도.

프랑스 레스토랑의 테이블 배치도.

직원 중 한 사람만, 또는 주인만이라도 테이블을 지켜보면서 손님이 필요한 서비스를 바로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손님도 인건비가 추가되는 만큼 상승하는 음식값을 더 지불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더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 좀 더 비싼 값을 내듯이, 더 좋은 서비스에 대해서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정서의 확립이 중요하다. 손님도 직원을 배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서로 예의를 갖추고 대하면 고객은 좋은 서비스를 받아 기쁘고, 다시 레스토랑을 찾음으로써 보답을 하게 된다.

음식문화의 수준은 맛과 더불어 식당의 접객 스타일에서 평가된다. 이걸 이루지 못하면 딱 거기까지다. 여기에 우리 외식문화의 수준을 정립할 미래가 달려있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레스토랑들이 서비스의 가치 기준을 위해서 변모하는 모습을 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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