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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초심 찾으려 문 닫는다…단골 많은 4년차 동네 빵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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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15)

‘복숭아와 밤은 3년, 감은 8년’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과일나무를 심으면 열매가 되기까지 그에 상응하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성취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사진 pxhere]

‘복숭아와 밤은 3년, 감은 8년’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과일나무를 심으면 열매가 되기까지 그에 상응하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성취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사진 pxhere]

“오늘 있잖아. 김포에서 빵집을 하는 요리교실 학생이 있는데, 가게를 접는대. 오늘이 마지막 날. 김포인 데다 코로나라, 버스 타고 멀리까지 가는 게 좀 겁도 났거든. 문 닫으면 서울에서 맛있는 음식 대접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다녀오려고. 지금까지 고생했다는 의미로 한여름에 어울리는 꽃다발, 10시 반까지 부탁해!”

집 근처에 자주 들르는 꽃집 지승에게 이른 아침부터 급히 전화를 걸어 주문했다.
김포의 빵집 이름은 썸원스브레드(someones bread). 누구든 편히 들를 수 있는 빵집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이름 지었다고 한다. 빵집 주인은 연희동 요리 교실을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제자이면서, 나의 훌륭한 조언자이기도 하다. 두 딸을 키우며 자기 꿈을 확실하게 실현해온 화진은 대학교에서는 공학부에 있었다. 이과 출신인 그녀는 엔지니어나 연구자의 길을 걷지 않고 제빵사의 길을 선택했다. 결혼을 전후해 입시학원에서 이과 과목을 가르치며, 베이커리와 제과학원에 다녔다. 빵집 입구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액자에 넣은 수료증이 걸려 있었다.

화진이 가게를 열었을 바로 그 무렵, 나는 서울시가 주최한 ‘돈의문 문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연희동 아틀리에서는 실현하지 못했던 ‘음식과 다른 업종과의 콜라보’ 기획을 세우고, 다양한 이벤트를 열었다. 돈의문의 ‘키친 레브쿠헨’은 요리교실 수강생들이 각자의 역할을 마음껏 발휘해 요리 교실에서 맺어지고 이어져 온 관계를 살린 자리로, 제자들은 여러 형태로 협력해주었다. 빵집 오픈 준비 중인 화진도 그때까지 운영하던 공방에서 쓰던 조리 도구는 물론, “이벤트에 쓸 간단한 빵이나 쿠키를 구우려면 이 오븐이 편리하니까”라며 스팀 오븐을 빌려주었다.

성장해나가는 타이밍에 문을 닫고 자신만 할 수 있는 빵 만들기를 목표로 한발 내디딘 김포의 동네 빵집. [사진 pxhere]

성장해나가는 타이밍에 문을 닫고 자신만 할 수 있는 빵 만들기를 목표로 한발 내디딘 김포의 동네 빵집. [사진 pxhere]

키친 레브쿠헨을 시작할 때부터 여러모로 도와줬던 현정의 소개로 요리 교실에 다니기 시작한 화진. 현정은 여의도에서 한국의 전통 과자 교실을 여는 한편 카페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미대 출신인 그녀는 화진의 새로운 빵집 로고를 디자인하거나 빵집 오픈에 맞춰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든든한 파트너였다. 화진이 늘 ‘언니, 언니’ 하며 의존하던 현정은 빵집을 오픈하고 돈의문의 키친 레브쿠헨 계약이 끝날 때쯤 가족 모두 캐나다로 이주하고 말았다.

빵집을 시작하기 전부터 연희동 요리 교실에 다녔던 화진은, 빵집 오픈으로 분주해지기 시작할 때쯤 잠시 수업을 쉬었지만, 장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고 나서는 지금까지 매달 요리 교실에 나왔다. 아침부터 빵을 굽고 가게 관리를 하면서 저녁에 뒷정리를 마친 뒤 연희동까지 차로 달려온 그녀는 언제나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아틀리에에 도착했다. 빵집을 운영하고 나서 화진의 팔에는 오븐에 닿아 생긴 작은 화상 자국이 끊이지 않았다. 제빵사를 꿈꾸는 젊은 직원도 여럿 있었지만, 자신이 납득할 정도가 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리교실 저녁 수업에 찾아온 화진의 피로는 몸 전체에서 스며 나왔다.

“조금 더 궤도에 오르고, 직원들한테 대부분 맡길 수 있게 됐을 때 와도 돼. 종일 빵 굽고, 아이들 밥 차려주고. 힘들지 않아?”

화진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 오는 게 내 유일한 즐거움이니까! 괜찮아요.” 늘 그렇게 답했다. 나는 빵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어디서부터 끓어오르는 건지 궁금했다. 단순히 ‘발효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같은 뻔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서 빵에 대해 의지라고 할까, 근성 같은 것을 느낀다. 경기도 종갓집 막내로 태어난 화진은 어렸을 적부터 식사 준비를 도왔고, 언제나 ‘맛있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할머니와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어느샌가 어린 그녀도 그 일원으로서 부엌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요리하고 빵을 굽는 것의 원점은 그때인 듯하다고 화진은 말했다. 그러니 빵이든 케이크든 ‘맛있는 것’을 추구하는 일에 빠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터다.

요리 교실이 끝나는 시간은 밤 10시. 일하는 데서 연희동 아틀리에까지 찾아온 수강생들은 시식하면서 와인도 몇 잔 마시고, 요리 교실에서 만들고 남은 음식을 밀폐 용기에 담아 귀가를 서두른다. 하지만 화진은 늘 “김포에 가면 집이 아니라 가게로 가요. 내일 반죽 미리 해놔야지”라며 좋아하는 와인도 마다하고 김포까지 차를 타고 간다. 새벽녘부터 시작하는 빵집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직원도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전부 혼자 해내려고 하는 걸까. 자기 체력을 소모하면서 빵집을 운영하는 그녀의 모습이 때로는 애처롭게 느껴졌다.

“빵집 힘들잖아. 게다가 화진인 가정도 있고. 다른 제빵 선생님들처럼 빵을 가르치는 수업을 하거나 그쪽 길을 생각해본 적은 없어?” 한번은 물어본 적이 있다.

“당연히 처음에는 ‘아틀리에 마망’이라는 작은 공방을 운영하면서 제빵을 가르쳤어요. 빵이나 제과를 처음 배운 데가 리치먼드라는 제과기술학원이라 거기서 배운 걸 가르치는 정도였죠. 그즈음 뺑드빱빠의 이호영 선생님과 만나서 전통적인 프랑스 바게트를 배우고, 물·소금·이스트균만으로 담백하게 굽는 것에 놀랐죠. 그러고 나서 전통적인 빵 제법을 공부하고 싶어 한국의 꼬르동블루에서 제과 코스를 수료했고요. 점점 욕심이 생겼달까. 수입산 밀가루가 아닌 국산, 로컬 재료를 사용한 빵을 굽고 싶고 더 많은 사람에게 내가 구운 빵을 맛보게 하고 싶어서 장사까지 하게 된 거예요.”

‘소중한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람에게, 오늘은 무얼 먹일까.’ 각자의 방법으로 길을 찾아 나가야 할 때이다. [사진 pxhere]

‘소중한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람에게, 오늘은 무얼 먹일까.’ 각자의 방법으로 길을 찾아 나가야 할 때이다. [사진 pxhere]

화진은 코로나 영향으로 장사가 어려워져 가게를 닫게 된 것이 아니다. 화진 부부의 고향인 김포에서 빵집을 열고 3년 반. 매일같이 빵을 사러 오는 단골손님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간식이 아닌 주식으로서의 빵을 굽기 위해 국산 원료로 반죽하고,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영양가까지 고려해야 한다. 거기다 동네 주민이 편히 빵을 살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빵에 대한 순수함이랄까, 무모한 열정과는 반대로 결국 재료비 대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화진이 매일 밤 반죽을 하고, 낮에도 쉴 틈 없이 직원들과 함께 주방에서 빵을 구웠다. 당연히 40대 화진의 체력은 한계에 달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속담에 ‘복숭아와 밤은 3년, 감은 8년’이라는 말이 있다. 과일나무를 심으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되기까지 그에 상응하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성취하기까지 그 나름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복숭아와 밤나무를 심고 3년이 지나면 열매가 맺히듯, 화진의 빵집도 4년째가 되어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했고, 이대로 계속 동네 빵집으로 성장해나가는 타이밍에 문을 닫게 되었다. 체력이나 노력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것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화진은 가게를 접고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초심을 되찾고, 자신만 할 수 있는 빵 만들기를 목표로 벌써 한발 내디뎠다. 누구도 하지 못한, 나밖에 할 수 없는 것. 40대 중반의 화진은 지금의 결단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를 계기로 풍족함 등 삶의 가치가 전환하고 있다. 화진이 초심으로 돌아가 빵을 굽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는, 어떠한가. 요리라는 것의 원점에 다시 서서 요리 교실의 방향까지 포함해 고민하는 요즘이다. 이 3년 반 사이, 바쁜 와중에도 요리교실 재료로 쓰기 위해 빵을 구워 연희동까지 보내주고, 자신이 구운 빵과 나에게 배운 요리로 더욱 맛있는 것을 만들 수 없을지 시행착오를 거듭해온 화진과 무언가 새로운 일을 고민해보고 싶다. 우선은 화진과 나의 공통된 생각. ‘소중한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람에게, 오늘은 무얼 먹일까.’ 각자의 방법으로 길을 찾아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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