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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숱한 스캔들 뿌린 마를린 먼로를 끝까지 사랑한 순정남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92)

스스로 이별을 결정했을 때는 괜찮지만 본인의 의지와 달리 타의에 의해 헤어질 때 그 연인을 잊지 못하는 법이다. [사진 pxhere]

스스로 이별을 결정했을 때는 괜찮지만 본인의 의지와 달리 타의에 의해 헤어질 때 그 연인을 잊지 못하는 법이다. [사진 pxhere]

남녀가 만나 사랑하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사귀다 보면 성격이 맞지 않는다든가, 경제적 능력이 없다든가, 가치관이 다르다든가 해서 틀어지거나 심지어 부모가 반대해 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 스스로 이별을 결정했을 때는 괜찮지만 본인의 의지와 달리 타의에 의해 헤어졌을 때는 연인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찍이 영화화돼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린 소설이 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다. 소설은 이별한 사람을 평생 잊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일부는 영화 속의 줄거리가 그저 픽션일 뿐이라고 고개를 흔들지만, 영화도 어느 정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저자인 로버트 제임스 월러도 주인공 킨케이드처럼 사진작가로 활동했으니 어쩌면 그가 자신의 얘기를 소설로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다. 바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영화배우 마를린 먼로와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의 사랑이다. 마를린 먼로는 워낙 유명해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조 디마지오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겠다. 조 디마지오는 1914년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야구를 즐겼고, 성인이 되어선 메이저 리그의 대선수가 된 유명 야구인이다. 그가 세운 56경기 연속 안타는 지금도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조 디마지오는 30대에 은퇴하는데 그 무렵 마릴린 먼로를 만난다. 둘은 서로 사랑했고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결혼한다. 그러나 안타깝게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다. 먼로는 막 떠오르기 시작한 스타여서 여러 영화에 출연하느라 바빴다. 그녀는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반면 디마지오는 그녀가 세간의 이목에서 떠나 정숙한 주부로 조용히 살기를 희망했다.

먼로의 상징처럼 기억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지하철 환풍기 바람에 먼로의 치마가 뒤집히는 영상이다. 영화관계자와 많은 시민이 그 장면을 좋아했다. 그러나 디마지오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여보, 당신은 유부녀라고. 어디 길거리에서 치마를 날려?”
“그건 일이라고요. 당신에게 야구가 있듯이 그건 영화잖아요.”

보수적인 디마지오의 귀에 먼로의 말이 들어올 리가 없다. 급기야 그는 먼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 자란 디마지오는 자신을 포함 아홉 남매를 거두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먼로에게 기대했는데 먼로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게다가 남편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폭력을 행하는 디마지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먼로는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그와 이혼한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갔지만 디마지오는 이혼 후에도 먼로를 도왔다. 먼로가 아서 밀러와의 세 번째 결혼이 깨지고 정신요양원에 강제 입원했을 때다. 그녀는 지인들에게 구원의 편지를 보냈고 그중 유일하게 찾아간 이가 디마지오다. 그는 병원으로 달려가 보호자임을 자처하고 그녀를 퇴원시킨 후 머물 곳을 구해주었다.

먼로는 그 후에도 프랭크 시나트라와 사귀고 케네디 대통령과의 염문을 뿌리는 등 번번이 디마지오를 실망하게 했다. 그러나 먼로를 포기하기에는 디마지오의 사랑이 컸다. 사가들에 의하면 먼로가 죽기 얼마 전부터 디마지오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디마지오가 재결합을 원했고 먼로도 싫지 않았다. 그러나 먼로의 죽음으로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2년 8월 그녀가 약물중독으로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그녀의 나이 36세였다.

디마지오는 먼로 사후에도 결혼하지 않고 매주 먼로의 무덤을 찾아가 장미꽃을 꽂으며 먼저 간 연인을 기렸다. 그가 죽을 때 “이제 먼로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디마지오야말로 그녀를 진정 사랑했던 남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이론을 전개할 때 종종 가설을 내세운다. 이 두 사람의 사랑에도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할 수 있다. 먼로가 동료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처럼 결혼과 동시에 은막을 떠났으면 어떠했을까, 디마지오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그녀를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했으면 어떠했을까, 먼로도 나중에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뭐 이런 거다. 그러나 아쉬운 건 두 사람이 그러하지 못했다.

늘그막에 황혼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고 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묵묵히 살아온 여자는 자녀가 출가하자 이제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겠다며 이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사진 pxhere]

늘그막에 황혼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고 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묵묵히 살아온 여자는 자녀가 출가하자 이제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겠다며 이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사진 pxhere]

어느 여론조사기관에서 주부 630명을 대상으로 남편에게 바라는 것에 대해 설문을 조사한 적이 있다. 남자는 흔히 돈만 벌어주면 되는 줄 아는데, 설문 결과를 보니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돈보다 자상함이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진심 어린 눈빛이야말로 주부가 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돈,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취미생활,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 등이었다.

설문에 응한 아내들은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가정주부보다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어 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였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 잘하는 주부보다 본인의 자아실현을 위한 삶을 원했다. 먼로가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나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우리나라 주부 역시 같은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여성은 가족을 위해 그 꿈을 접었다.

뉴스를 보니 늘그막에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더불어 세계에서 보기 드문 가부장제 국가다. 그런 사회에서 묵묵히 참고 지낸 여자로서는 자녀가 출가하자 이제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겠다며 이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필요로 하는 황혼에 이혼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 이렇게 갈라서게 되는 배경에는 남자의 탓이 크다고 본다. 디마지오와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겠다.

요즘 맞벌이하는 아이를 위해 손자를 돌보고 있는 아내를 보니 참으로 수고가 많다. 예전보다 훨씬 환경이 좋아졌음에도 그럴진대 모든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아이들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난다. 지나간 시절에는 직장에 출근하느라 솔직히 잘 몰랐다. 그냥 아이들이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일전에 아내에게 그때 양육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음을 사과했다.

아마 많은 남자가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뿐이지 이런 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다. 생각만 하면 무엇하겠는가. 직접 사과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해야 한다. 그러면 아내의 마음이 돌아올 수도 있다. 아내도 그렇다. 은퇴를 준비하는 남편에게 그동안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고생했다는 말을 한 번쯤 전해주면 어떨까. 어쩌면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말에 감동하는 어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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