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땅에 코 박은 286t 비행기 일으켰다…인천공항 '비장의 무기'[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중앙일보

입력 2021.08.13 06:00

업데이트 2021.08.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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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활주로를 이탈해 녹지대에 멈춰선 UPS 화물기. [연합뉴스]

인천공항 활주로를 이탈해 녹지대에 멈춰선 UPS 화물기. [연합뉴스]

 지난 2016년 6월 6일 밤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 알래스카의 앵커리지공항으로 가려던 국제화물 운송기업인 UPS 소속 대형화물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근처 녹지에 멈춰선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화물기는 타이어가 펑크난 채 기체 앞쪽이 바닥에 박혀있는 상태였습니다. 기체 이상으로 정상적인 이륙이 안 되면서 발생한 사고였는데요. 다행히 화물기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사고 직후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사고 화물기가 이륙을 시도했던 1번 활주로는 폐쇄됐는데요. 활주로 주변의 이착륙 관련 장치도 파손됐지만, 무엇보다 사고 화물기가 활주로 근처에 멈춰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5년 전 인천공항서 화물기 활주로 이탈  

 이 화물기를 옮기고 주변 시설을 복구해야만 활주로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땅에 코를 박고 멈춰서 자체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비행기를 어떻게 옮기느냐였는데요.

활주로 이탈 사고로 동체와 엔진이 땅에 닿아 있다. [사진 인천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로 동체와 엔진이 땅에 닿아 있다. [사진 인천공항]

 해당 화물기는 미국의 맥도널 더글러스사가 제작한 MD-11 기종으로 사고 당시 총 중량은 286t에 달했습니다. 자체 중량만 130여t이 되는 데다 연료와 화물 무게가 더해진 겁니다.

 사고기를 옮기려면 어느 정도 평형 상태로 들어 올려서 바퀴 부분을 교체하는 등 응급조치를 한 뒤 견인해야만 하는데요. 기체를 여러 가닥 줄로 묶은 뒤 기중기로 올리는 방법도 있지만, 워낙 무거운 탓에 자칫 동체가 휘어지거나 상할 위험이 있습니다.

 286t짜리 비행기 손상없이 들어올려야     

 그래서 특정 부위에만 하중이 가해지지 않도록 골고루 기체를 떠받치면서 들어올려야만 했는데요.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마침 인천공항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활주로 이탈이나 동체착륙 사고를 대비해 2008년에 5억원을 들여 구입해 둔 '항공기 부양장비(Aircraft Lifting Bag)'가 그것인데요. 항공업계에선 흔히 줄여서 '에어백'이라고 부릅니다.

에어백으로 사고 화물기를 들어올린 모습. [사진 인천공항]

에어백으로 사고 화물기를 들어올린 모습. [사진 인천공항]

 인천공항이 보유한 에어백은 독일제로 B747급 항공기를 들어올릴 수 있도록 30t용 에어백 6개와 40t용 2개, 그리고 공기를 넣는 에어컴프레서 1대로 구성돼 있습니다. 40t용 에어백은 공기를 다 넣으면 높이가 3m에 달한다고 합니다. 수명은 10~15년입니다.

  B747급도 부양할 수 있는 에어백 동원  

 이들 에어백 8개를 항공기 밑에 고르게 배치하고 모두 가동하면 최대 260t까지 부양시킬 수 있는데요. B747은 승객과 화물, 연료 무게를 제외한 자체 중량만 170~180t입니다.

 인천공항에서는 우선 화물기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연료(약 90t)를 빼낸 뒤 에어백으로 기체를 서서히 안전하게 들어올렸습니다. 이어 고장 난 타이어를 바꾸고, 화물도 모두 내리고는 사고기를 무사히 견인할 수 있었는데요.

에어백으로 사고 화물기를 들어올려 평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 [사진 인천공항]

에어백으로 사고 화물기를 들어올려 평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 [사진 인천공항]

 이때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항공기 부양장비를 사용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항공기를 복구하는데 에어백이 꼭 필요한 장비임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제주공항과 서울공항도 에어백 구비해 

 인천공항에 따르면 국내에서 에어백을 보유한 공항은 인천공항 외에 제주공항과 서울공항 등 2곳이 더 있습니다. 서울공항은 2013년에, 제주공항은 2019년에 도입했는데 모두 B747급 항공기 부양용입니다.

 이처럼 국내에는 에어백이 3곳에 있어서 유사시 가져다 쓰면 되겠지만 만약 장비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경우에는 인근 국가의 공항이나 항공사에서 빌려와야만 합니다.

사고 화물기의 날개 부분에 설치한 에어백. [사진 인천공항]

사고 화물기의 날개 부분에 설치한 에어백. [사진 인천공항]

 그런데 흔치 않은 사고를 대비해 모든 공항이나 항공사가 이 장비를 갖추고 있는 건 비효율적일 겁니다. 그래서 IATP(International Airlines Technical Pool) 주도로 전 세계 6개 대륙 10여개 항공사를 지정해 에어백을 확보·관리토록 하고 있는데요. 유사시 이들 항공사가 에어백을 빌려주는 겁니다.

 국제선 항공사 간 에어백 품앗이도

 IATP는 항공기 수리 부품과 정비 도구, 지상 장비, 항공기 복구 등에 필요한 자원을 공유하기 위한 국제선 운항 항공사 간 협력체로 100여개 회원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에어백에 공기를 넣고 점검하는 모습. [사진 인천공항]

에어백에 공기를 넣고 점검하는 모습. [사진 인천공항]

 아시아에서는 일본항공(나리타), 인디아항공(붐베이), 타이항공(방콕) 등이 지정항공사입니다. 또 국내 3곳 외에 홍콩공항, 타이페이공항, 베이징공항 등에서도 에어백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에어백이 없는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필요할 때 이들 항공사 또는 공항에서 빌려오면 되는데요. 물론 임대료를 내야 하고 운반비도 부담해야 합니다. 장비 임대료는 회원 등급 및 회원 여부에 따라서 차등 적용한다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에어백처럼 유사시를 대비한 훌륭한 장비를 갖추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고는 가능한 한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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