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현상의 시시각각

헌법이 도박 대상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1.08.13 00:39

업데이트 2021.08.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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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허위 조작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릴레이 시위 현장을 방문해서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 [중앙포토]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허위 조작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릴레이 시위 현장을 방문해서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 [중앙포토]

권력은 책임을 내세우고, 언론은 자유를 외친다. 그래서 언론 관련법은 늘 논란의 대상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던 2005년 1월 1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탄생한 언론중재법도 예외는 아니었다. 같이 통과된 신문법에 비해서는 진통이 덜했지만, 언론중재법은 곧장 헌법재판소로 직행했다.

유례없는 언론법 강행하는 여당
"위헌·합헌 지적 교수 비슷" 고백
차라리 헌재 결정에 자리 걸어라

핵심 쟁점은 정정보도청구권이었다. 당시 언론사로부터 정정보도를 받아내는 일은 대단히 어려웠다. 오보라 하더라도 언론사의 명백한 귀책사유가 있어야 정정을 요구할 수 있었다. 언론중재법은 이런 '부정의'를 바로잡고자 했다. "정정보도청구에는 언론사의 고의·과실이나 위법성을 요하지 아니한다"는 조문이 포함됐다. 심지어 정식 재판이 아니라 가처분 절차만으로도 정정보도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듬해 6월 29일 헌재 결정이 나왔다. 언론사의 고의·과실·위법을 요하지 않는다는 규정은 합헌, 가처분 소송만으로 정정보도를 게재하도록 한 규정은 위헌이었다. 언론의 손을 절반만 들어줬지만, 헌재는 결정문에 우려를 잊지 않았다. "신문이 공공의 이익에 관련되는 중요한 사안에 관하여 위축되지 않고 신속히 보도함으로써 언론·출판의 자유가 지닌 본래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소 장황하게 언론중재법의 과거를 소개한 것은 언론법의 민감성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언론 자유야말로 헌법적 가치의 기본 중 기본이다. 이 무게감을 생각하면 헌재의 신중함은 당연하다. 언론 자유를 거론하면 당장 "기레기 주제에" 같은 '양념'이 날아들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양념'을 마구 뿌릴 수 있는 것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 덕분 아니겠나.

여당이 강행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헌재로 가면 어떤 결론이 날까. '5배 징벌 배상' '고의·과실의 언론사 입증' 같은 조항이 헌재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고 여당은 자신하고 있을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단적인 예가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부위원장인 김승원 의원의 말이다. "위헌을 말하는 헌법 교수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있다. 그 비율이 9대 1, 8대 1이라면 더 들어봐야겠지만 비슷비슷한 비율이라 아직 (자문 등을) 검토하지 않는다." 놀랍다. 위헌 판정을 받을 확률이 50%는 된다는 고백 아닌가. 헌법의 기본적 가치를 다루는 여당의 자세가 거의 도박 수준이다. 그것도 '민주'라는 이름을 쓰는 정당에서.

진보 언론단체는 물론 정의당까지 반대하는 언론법을 밀어붙임으로써 여당은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정당의 정치적 승부수를 두고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대상이 헌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법안의 위헌 시비가 벌어질 때 지금껏 의회 다수당은 고민하는 척이라도 했다. 2005년 언론중재법도 진통을 겪긴 했지만, 여야 간 상당한 합의를 거친 뒤 표결에 부쳤다. 하지만 이번 언론중재법에 대해선 괴이쩍을 정도로 강경 자세다.

계산이야 이미 섰을 것이다. 여당으로선 손해 볼 것 없는 도박이다.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린다. 그때쯤 이미 대선은 끝나 있다. 그 사이 전략적 봉쇄 소송의 파도 앞에서 언론사와 기자들은 자기 검열의 회로를 돌릴 수밖에 없다. 설사 위헌 결정이 내려져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고 남는다. 퇴임 후 대통령의 '안전'에 든든한 방파제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이왕 도박이라면 판돈을 키우는 건 어떤가. 법을 발의하고 강행에 앞장선 의원들이 위헌 판정 결과에 따라 자리를 거는 것 말이다. 그래야 비장한 맛도 있지 않겠나. "가짜뉴스를 만든 언론사는 망해야 한다" "내가 현직 기자라면 환영하겠다"며 거든 대선주자들까지 판에 낀다면 좀 더 짜릿할 것 같다. 그 정도 판돈은 걸어야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도 들고. 도박 대상으로 농락당하는 헌법을 보고 있다가 이런 실없는 농까지 하게 됐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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