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남도, 배롱나무 4색 꽃향기에 취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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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남 장흥 평화리에 있는 ‘송백정’에 배롱나무꽃이 만개했다. 수령 100년이 넘는 송백정 배롱나무는 분홍색 꽃 일색인 여느 배롱나무와 달리 4가지 색 꽃을 피워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남 장흥 평화리에 있는 ‘송백정’에 배롱나무꽃이 만개했다. 수령 100년이 넘는 송백정 배롱나무는 분홍색 꽃 일색인 여느 배롱나무와 달리 4가지 색 꽃을 피워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배롱나무의 계절이다. 작열하는 햇볕에 기죽지 않고 도리어 발간 꽃을 피워 여름내 색 잔치를 벌이는 나무. 요즘은 수도권에서도 배롱나무를 조경으로 많이 활용하지만 역시 근사한 배롱나무는 남도에 많이 산다. 배롱나무가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찰이나 고택, 오래된 정자와 분홍 꽃으로 뒤덮인 아름드리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은 남도의 여름을 상징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최대 배롱나무 군락지는 전남 장흥에 있다. 전국 어디서도 보기 힘든 희귀한 배롱나무도 있다 하여 장흥의 작은 마을을 찾아갔다.

전남 장흥 평화리 송백정의 멋
국내 최대 배롱나무 군락지
분홍·하양·보라·연보라꽃 한창
무계고택 울울한 숲도 장관
물 좋은 곳, 전통 발효차 유명

억불산 자락 일본식 정원

나무 위 만개한 배롱나무꽃뿐 아니라 이미 진 꽃잎이 연못을 덮은 모습도 운치 있다.

나무 위 만개한 배롱나무꽃뿐 아니라 이미 진 꽃잎이 연못을 덮은 모습도 운치 있다.

장흥읍 평화리에 자리한 송백정(松百井)은 정자가 아니라 연못이다. 50여 그루 배롱나무가 아담한 연못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수령 100년이 훌쩍 넘는 배롱나무는 꽃도 화려하지만 우람한 나무 형상 자체가 압도적이다. 매끄럽고 두툼한 줄기가 이리저리 꺾인 모습이 근육질 남성의 팔뚝을 보는 것 같다.

송백정 배롱나무꽃은 7월 말 개화했다. 진분홍색 일색인 여느 배롱나무 군락지와 달리 송백정에는 4가지 색깔의 꽃이 핀다. 분홍, 보라, 연보라, 하양. 4색 꽃과 연못, 억불산(518m) 산세가 그림처럼 한눈에 담긴다. 송백정에서는 나무를 뒤덮은 꽃만 올려다볼 게 아니라 진 꽃잎도 내려봐야 한다. 연못에 잔꽃 송이가 만개한 듯한 모습이 장관이다. 바람이 세게 불어 꽃이 많이 지는 날에는 연못 전체가 분홍빛을 띤다. 배롱나무꽃은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일 동안 꽃이 피는 건 아니지만 워낙 오래 꽃을 볼 수 있어서다. 실제로는 한 나무에서 한 달여 동안 세 차례 꽃이 폈다 진단다.

송백정 옆 고영완가옥은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다.

송백정 옆 고영완가옥은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다.

송백정에 배롱나무를 심은 주인공은 독립운동가이자 2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 고영완(1914~91)씨다. 장남인 고병선(86)씨는 “1930년대에 도쿄 유학을 마치고 온 아버지가 고향 집 앞 연못을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 누구나 감상할 수 있게 했다”며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고 소나무와 배롱나무, 동백나무로 조경한 정원은 당시 보기 힘든 형태였다”고 설명했다.

물이 풍부한 상선약수마을

송백정 옆에는 전남 문화재자료 161호로 지정된 ‘무계고택(霧溪古宅)’이 있다. 고병선씨의 증조부가 1852년에 지은 전형적인 남도식 일(一)자 목재가옥이다. 마당에는 석등과 각종 석물이 나뒹군다. 이곳이 ‘정화사(淨化寺)’가 있던 절터였기 때문이다. 고씨 조상들이 집 앞에 연못을 만든 것도 억불산과 절이 내뿜는 강한 기를 억누르기 위해서였단다.

무계고택은 집 자체도 기품이 느껴지지만 집으로 오르는 돌계단과 정원이 특히 운치 있다. 빼곡하게 자란 맹종죽과 거대한 느티나무, 팽나무가 울울한 숲을 이루고 있다. 고병선씨는 “아버지가 정치에 몰두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집 8채 중 2채만 남기고 헐었는데도 나무는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평화다원에서 맛본 발효차 ‘청태전’.

평화다원에서 맛본 발효차 ‘청태전’.

송백정이 있는 평화리는 장흥에서도 물 좋기로 소문났다. 작은 마을에 우물이 8개나 되고 과거 장흥읍 주민이 모두 여기서 물을 떠다마셨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래서 평화리를 상선약수(上善若水) 마을이라 한다. 송백정도 자연스레 고인 샘물을 넓힌 거다.

물 좋고 숲 좋은 평화리에서는 질 좋은 야생차도 많이 자란다. 메타세쿼이아 줄지어 선 마을 들머리에 ‘평화다원’이 있다. 2008년 일본 시즈오카(静岡) 세계녹차대회에서 금상을 딴 김수희(70)씨가 운영하는 다원이다. 이곳에서 1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장흥 전통 발효차 ‘청태전’의 깊은 맛을 음미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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