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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포기하는 나라…'코로나 고용재난' 취포자 사상 최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옷가게를 하다가 접고 5년 전 사진작가로 직업을 바꾼 김모(36)씨. 친구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 결혼ㆍ돌잔치 같은 기념 촬영을 해왔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거리가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정식 고용이 된 게 아니라 ‘건 바이 건’으로 해왔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더 막막하다. 간혹 들어오는 일로는 생계가 안 된다”며 “이전 벌이가 괜찮아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끝이 안 보여서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신모(30)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다. 공공기관 2곳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데 각각 6개월짜리 인턴 자리였다. “전에 워낙 인턴을 많이 뽑기도 했고, 정규직 취업이 잘 안되니 집에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최저임금이긴 하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했었다”고 전했다. 지금은 고향 집에 돌아가 공공기관 취업에 필요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취미 관련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일도 얼마 전 시작했다. 신씨는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사기업 취업은 완전히 포기하고 공기업 채용이 뜨면 지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서울 성동구 성동구청 희망일자리센터에 마련된 취업게시판을 한 시민이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서울 성동구 성동구청 희망일자리센터에 마련된 취업게시판을 한 시민이 살펴보고 있다. 뉴스1

30대가 ‘취업 무력증’에 빠졌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3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77.6%로 1년 전과 비교해 0.5%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1년 사이 유일하게 30대만 경제활동 참가율이 내려갔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취업자는 물론 구직(실업) 인구까지 포함하는 경제활동인구가 해당 연령대 인구 대비 얼마나 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해 시작한 코로나19발 고용 충격을 딛고 다른 연령 계층은 속속 경제활동에 다시 나서고 있지만 30대는 예외다. 지난해보다 더한 실업난을 겪는 중이다.

7월 기준 30대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2만2000명 감소했고, 고용률(총인구 대비 취업자 수)도 75.3%로 0.1%포인트 내렸다. 취업자 수, 고용률이 추락한 연령 계층 역시 10대(15세 이상)부터 60세 이상까지 통틀어 30대밖에 없었다.

단순히 일자리가 없다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더 나쁜 징후는 30대 중심으로 ‘취포자(취업 포기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가사ㆍ육아ㆍ학업ㆍ질병 같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냥 쉬었다’고 답한 30대 인구는 지난달 29만2000명으로 199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7월 기준)를 기록했다. 연령대별로 쉬었음 인구는 30대와 60세 이상만 증가했다. 쉬었음 인구 자체는 고령층이 많지만 늘어나는 속도는 30대(전년 대비 15.5%)가 60대(6.5%)보다 훨씬 빨랐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가 사실상 은퇴 연령인 60대 못지않은 구직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한 전문가 분석은 여러 가지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크게 늘어난 정부 공공근로가 20대 청년층, 50대 이상 고령층에 집중되면서 30대 일자리 공백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라며 “또 아르바이트 같은 저임금 단기 일자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정규 일자리를 찾기 시작하는 연령대가 보통 20대 중후반, 30대인데 코로나19 위기로 이들이 선호할 만한 신규 일자리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민간 제조업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직장의 신규 채용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탓에 이들 일자리가 새로 나오기까지 기다리며 구직을 미루는 현상이 30대 고용 지표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4차 대유행 장기화로 민간 부문을 중심으로 한 고용 정상화는 요원한 상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8월부터는 (코로나19) 4차 확산의 파급 영향이 일정 부분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경제 허리를 해야 할 30대의 구직 포기 또는 연기가 장기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남부고용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일자리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남부고용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일자리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의 일자리 공급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민간에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야 해결될 문제인데 코로나19는 물론 산업 구조 재편으로 양질의 제조업 등 일자리가 앞으로도 증가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자리가 부족한 탓에 젊은 층 소득은 줄고 빚은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은행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20~30대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LTI)은 평균 228.9%로 40~50대(223.2%), 60대(221.9%)를 뛰어넘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청년 대상 정부 일자리는 단기 알바가 많은데 당장 고용률 지표 높이기 용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런 일자리만 양산하면 제대로 된 취업 훈련 기회를 놓치고, 장기 실업에 빠지거나 생애 소득이 낮아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당장 청년층 고용률이 낮게 나오더라도 실효성 있는 취업 훈련에 더 많은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게 맞다”며 “정부에서 제공하는 교육, 취업 훈련 바우처 제도는 사용 가능 기관을 공공 부문에서 관할하고 제한을 두다 보니 현장에선 ‘갈 만한 데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 양질의 일자리에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민간 훈련 기관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등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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