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려고 일부러 배달시켰어요"…동탄의 '다회용기' 도전

"응원하려고 일부러 배달시켰어요"…동탄의 '다회용기'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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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쓰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아닌 여러번 쓸 수 있는 다회용기에 담긴 배달용 음식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다회용기 시범사업이 지난달 경기도서 시작됐다. [사진 '농가의 하루' 인스타그램 캡처]

흔히 쓰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아닌 여러번 쓸 수 있는 다회용기에 담긴 배달용 음식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다회용기 시범사업이 지난달 경기도서 시작됐다. [사진 '농가의 하루' 인스타그램 캡처]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농가의 하루'. 배달 주문이 접수됐다는 알림음에 주방이 바빠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와 알록달록한 샐러드가 완성됐다. 이들은 모두 짙은 분홍색 그릇으로 직행했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플라스틱 용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기가 아닌 계속 쓸 수 있는 다회용기다. 이 용기에 담긴 음식은 주문한 가정에 곧바로 배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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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의 하루는 지난달 22일 다회용기를 이용한 배달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벌써 주문 10건 중 두세 건이 다회용기 사용을 요구할 정도라고 한다. 장준하(33) 대표는 "다회용기 사용 매장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응원하려고 일부러 주문했다'는 손님도 많다"고 했다.

이 가게가 사용하고 있는 다회용기는 정부·지자체·자영업자 등이 함께 시동 건 탈(脫) 플라스틱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목표는 한가지, 배달용 일회용기 줄이기다. 경기도가 개발한 공공 배달 어플리케이션(앱) '배달특급' 가맹점·이용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참여 가맹점에 앱으로 주문할 때 용기선택 창에서 '다회용기'를 택하면 음식점에선 주문을 보고 다회용기에 담아 음식을 배달원에게 건네주는 식이다. 국내 배달 생태계에선 처음 시도한 친환경적 도전이다.

지난 4월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녹색연합 관계자 등이 일회용 배달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배달 플랫폼 회사에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녹색연합 관계자 등이 일회용 배달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배달 플랫폼 회사에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달 수요 급증에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

다회용기 배달이 추진된 이유는 급증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후 비대면 소비문화에 따른 배달 수요가 폭발한 게 결정적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주문으로 이뤄진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17조3336억원으로 2019년(9조7354억원)보다 78% 급증했다. '집콕 족'을 위한 배달 포장이 늘다 보니 플라스틱 폐기물도 넘쳐난다. 환경부에 따르면 플라스틱 쓰레기는 2020년 하루 평균 923t 나오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776t)보다 19% 가까이 늘었다. 포장재 등에 쓰이는 스티로폼(발포수지류) 쓰레기도 같은 기간 14% 가량 증가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주요 배달 앱 회사들은 '일회용 수저 사용 줄이기' 등 친환경 대책을 일부 도입했다. 하지만 부피가 큰 일회용 배달 용기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도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쌓여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평소 식사를 배달 앱 주문으로 많이 해결한다는 최모(39)씨는 "플라스틱 용기가 며칠이면 쌓이다 보니 매번 꼼꼼히 분류해서 버리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배달에 다회용기를 도입해보자는 대안을 냈다. 예전 중국음식점처럼 계속 쓸 수 있는 그릇에 음식을 담아 배달하고 수거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비용과 인력이 걸림돌이었다. 배달을 대행업체에 맡기는 음식점 입장에선 그릇을 일일이 수거해 씻기 어렵다. 다른 곳에 이를 위탁하려면 돈이 든다. 이 때문에 경기도와 환경부, 한국외식업중앙회, 화성시, 녹색연합, 경기도주식회사 등이 6월 업무협약을 맺었다. 다 같이 손잡고 다회용 배달·포장 용기를 써보기로 결정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회용기, 위생 문제·불편함보다 장점 많아

화성 동탄신도시 일대 배달 특급 가맹점들이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다회용기 사용 업소는 한 달 만에 22곳(8월 10일 기준)으로 늘었다. 소비자가 다회용기 사용이 가능한 메뉴 주문 시 다회용기를 쓰겠다고 택하는 비율은 30% 수준이다. 사업 참여를 신청한 가맹점이 많아 친환경적 움직임에 동참하는 가게, 소비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다회용기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편리한 점이 많다. 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한 데다 밀폐도 잘 된다. 일회용기처럼 고온에 쉽게 변형되지 않아 포장도 쉬운 편이다. 분리수거 같은 불편함도 사라진다. 특히 시범사업에 쓰고 있는 용기는 밀폐력이 좋고, 수명이 다해도 재활용하기 쉬운 제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넘기 어려운 벽도 있다. 남이 먹었던 그릇을 또 쓴다는 꺼림칙함이다. 화성 반송동에 사는 김모(40)씨는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배달 음식도 줄이고 있는데 다회용 그릇은 어쩐지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한 음식점 사장은 "작년까지 일반 그릇과 일회용기를 병용해서 배달해봤다. 그런데 손님 대부분이 일회용기를 선호해 지금은 일회용기만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문 업체가 배달 그릇 수거·세척 전담

배달용 다회용기 수거, 세척 등을 맡고 있는 스타트업 '뽀득'의 공장 내부 모습. [사진 뽀득]

배달용 다회용기 수거, 세척 등을 맡고 있는 스타트업 '뽀득'의 공장 내부 모습. [사진 뽀득]

이 위생에 대한 걱정은 전문업체에 다회용기 대여·수거·세척을 맡기는 것으로 해결책을 모색했다. 다회용기로 배달된 음식을 소비자가 먹은 뒤 빈 그릇만 내놓으면 된다. 굳이 씻을 필요도 없다. 전문 업체가 다회용기를 수거·세척한 뒤 음식점에 다시 전달하게 된다. 시범사업에선 다회용기 전문 스타트업 '뽀득'이 맡았다. 그릇 1개를 수거하고 세척하는데 2500~3000원이 든다고 한다. 해당 비용은 경기도가 부담한다. 뽀득에 따르면 하루 200개 안팎(11일 기준)의 다회용기를 수거·세척하고 있다.

뽀득의 태경재 이사는 "수거한 그릇은 불림부터 애벌세척, 고온 소독·건조, 살균, 검수, 이중 포장 등 7가지 과정을 거쳐 철저하게 관리한다. 일회용기는 공장에서 찍어낸 뒤 별도 세척을 하지 않지만, 다회용기는 오히려 고온·살균 등 여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더 깨끗하다"고 강조했다.

다회용기 사용 시범사업에 참여한 신전떡볶이 동탄시범단지점이 배달을 위해 다회용기에 담은 떡볶이. 겉으로 봐선 일회용기와 큰 차이가 없다. [사진 김근대씨]

다회용기 사용 시범사업에 참여한 신전떡볶이 동탄시범단지점이 배달을 위해 다회용기에 담은 떡볶이. 겉으로 봐선 일회용기와 큰 차이가 없다. [사진 김근대씨]

동탄의 실험 이어질 듯 "지역 확대 검토"

친환경 행보에 뛰어든 가게 반응도 나쁘지 않다. 신전떡볶이 동탄시범단지점 김근대(40) 점주는 일부 고객이 직접 챙겨온 그릇에 음식을 포장하는 걸 보고 다회용기 사용에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전문업체가 그릇을 책임지고 수거·세척까지 해 가져다주니까 믿음이 간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다회용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만 사라지면 찾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동탄의 탈 플라스틱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 사업 지역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환경부엔 국비 지원, 제도 개선을 건의할 계획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앞으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부족한 부분은 개선하겠다. 다회용기 사용에 대한 시민 인식을 바꾸고 민간 부문까지 다회용기 사용이 퍼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점심 시간 서울 시내에서 배달 라이더가 분주하게 이동하는 모습. 뉴스1

점심 시간 서울 시내에서 배달 라이더가 분주하게 이동하는 모습. 뉴스1

"결국 비용이 관건" 풀어야 할 과제는?

방향성은 맞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배달 음식 종류는 갈수록 늘어가는데, 다회용기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뽀득에 따르면 동그란 보울(bowl), 직사각형 모양의 큰 그릇 3종 위주로 제공하고 있다. 소스나 반찬, 사이드 메뉴 등 작은 용기엔 일회용 플라스틱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시범사업이다 보니 다양한 배달 용기를 전부 도입하기 어려워 많이 쓰는 것 위주로 먼저 제작했다. 추후 여섯 종류의 용기를 도입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공공뿐 아니라 민간 플랫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쓰레기를 확실히 줄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주는 "시행 초기인 데다 배달 특급보다 민간 배달 앱을 통한 주문이 월등하게 많아서 아직 다회용기를 통한 주문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다회용기 사용이 활성화되려면 민간 배달 앱도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이번 사업은 음식점주와 소비자 양측이 다회용기 사용을 수용하는지 검증하는 차원이고, 훨씬 큰 고비는 다음에 올 돈 문제다. 다회용기 사용에 따른 비용 상승을 누가 부담할지가 관건이 될 텐데,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다회용기 써야 한다고 주장만 할 게 아니라 가격이 높아도 소비자가 이용할지, 어떤 메뉴에서 주로 택할지 등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시범사업부터 세세하게 체크해야 배달용 다회용기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 2부를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최모란·정종훈·편광현·백희연 기자, 곽민재 인턴기자, 장민순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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