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무더위 날려주는 수박 같은 지도자감 누구 없소?

중앙일보

입력 2021.08.12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88) 

사람 고르기가 수박 고르기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법이다. 수박은 내다 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인연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진 pixabay]

사람 고르기가 수박 고르기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법이다. 수박은 내다 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인연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진 pixabay]

진열대

머리 둥근 것들은
눈으로만 보아서는
그 맛을 알기 어렵다

어디 모나지 않게
발꿈치 잘 굴려주고
광야의 땡볕을 골고루 받았는지
꽃 몸살 이겨낸 꽃자리와
싱싱한 생의 꼭지를
살피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배포의 크기는 더욱 아니다

어깨 살짝 두드려도
쿵쿵 공명 소리
속 씨가 익어 저절로
물기 한 자락
바람 한 줌쯤 품었는지

그들의 식탁 위에서 쩍하고
한여름 배 가르며 마음 열줄 아는
수박 고르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설
무더위가 절정을 달리고 있다. 한밤에도 최저온도가 섭씨 25도를 넘는 열대야가 계속된다. 이럴 때 밖에 나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땀으로 범벅이 된다. 탈수증에 빠지기 쉽다. 입맛도 잃고 기운이 빠져 몸을 움직이기도 싫게 된다. 시원한 수박화채 생각이 간절해진다.

어릴 때 집안 마당에 우물이 있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물 온도를 유지했다. 뜨거운 날 땀 흘리고 돌아와 등목이라도 하면 정신이 번쩍 날 만큼 차가웠다. 우리 가족 냉장고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긴 줄에 커다란 수박을 매달아 내려 물에 담갔다가 시원해진 다음 화채를 맛있게 만들어 먹은 기억이 난다. 따지고 보면 지금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이 더 시원하겠지만, 맛은 그때가 더 달았던 것 같다.

수박은 햇볕을 골고루 받아야 당도가 높다. 농부가 자주 밭에 나가 굴려주어야 멍들지 않고 잘 익는다. [사진 pixabay]

수박은 햇볕을 골고루 받아야 당도가 높다. 농부가 자주 밭에 나가 굴려주어야 멍들지 않고 잘 익는다. [사진 pixabay]

수박은 가뭄이 들수록 더 크고 달다. 밭에서 꽃 피고 열매 맺은 지 40일쯤 뒤 수확한다고 한다. 광야에서 40일 간 땡볕을 받고 익어야 제 몫을 한다는 말이다. 뭔가 상징적 의미가 연결된다.

맛있고 충실한 수박 고르기가 제법 어렵다고 한다. 잘 익을수록 식칼을 조금만 갔다 대도 쩍하고 소리 내며 갈라진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은 씨를 품은 붉은 수박의 단면을 보는 기쁨이 대단하다. 수박 주위에 모인 사람은 모두 속으로 “와!” 하고 탄성을 올린다. 입에 시원한 군침이 돈다. 얼른 한 숟갈 퍼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 덩이 얼음을 사다가 대바늘로 톡톡 치며 쪼갠 얼음 쪼가리를 커다란 양푼에 쟁여 놓고 숟갈로 퍼 담아 만든 수박화채를 한입 먹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사이다라도 한 병 풀면 금상첨화였다. 톡 쏘는 탄산 거품이 우리 마음을 더욱 부풀게 하였다. 입 안 가득 벅차올랐던 흥취가 지금도 남아 있는 듯하다.

과일상회 진열대에 수박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맛있어 보이고 마음에 드는 수박을 고르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고객 모두 짐짓 전문가나 되는 양 똑똑 두드려 소리를 들어 본다. 어두운 귀에는 그게 그거 같은 소리라도 맑고 투명한 공명 소리가 나면 자신감이 솟는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탱탱 거리는 수박은 도리어 물 찬 수박이란다. 당도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툭툭 거리며 음향이 탁한 소리는 아직 덜 여문 수박이다.

수박 안에서 울리는 공명소리가 나는 이유는 씨가 검게 익으면서 여물어 크기가 작아지고 그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많은 씨 주위에 작은 공간이 생기면서 모이면 제법 커진다. 두드리면 작은 북 효과를 내는 것이다. 탱탱도 아니고 툭툭도 아니다. 쿵쿵이다. 문을 노크하면 안에서 누군가 예하고 대답할 것만 같은 소리이다. 모르는 채 반향 없이 넘어가는 무관심이 아니라 반갑게 맞이할 만한 반색하는 소리이다. “나를 선택해줘서 고마워요. 나를 고르면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니 만족하실 겁니다. 믿고 맡기세요”하는 것 같다.

수박은 햇볕을 골고루 받아야 당도가 높다. 농부가 자주 밭에 나가 굴려주어야 멍들지 않고 잘 익는다. 부지런한 농부의 발꿈치가 훌륭한 열매를 만든다. 골고루 잘 굴려 주지 못하면 땅에 닿은 자국이 남아 노랗게 탈색한다. 심지어 애틋한 농부는 땡볕에 탈까봐 연잎 모자를 씌워주기도 한단다. 그만큼 자기 일에 쏟는 정성이 갸륵하다.

수박은 줄기와 연결된 꼭지 부위와 꽃이 피었다가 진 꽃자리 즉 배꼽 부위를 잘 살펴야 한다. 꽃자리 부위가 작고 여물어야 맛있는 수박이다. 퍼진 배꼽 모양은 맛이 덜하다. 꼭지 부위는 안으로 옴폭 패인 게 좋고 솜털이 없어야 제 날짜를 다 채운 성숙한 것이다. 수박의 겉껍질에 난 줄무늬가 진하고 또렷하며 가지런한 게 좋다. 표면에 곶감의 흰 분처럼 뽀얗게 분이 올 라온 게 당도가 특별히 높다. 또 가끔 껍질에 조그만 상처들이 난 것을 만나는 데 이런 건 벌이 더 많이 수분을 해 생긴 흔적이므로 당도가 더 높다고 한다.

잘 익어 달고 시원한 수박이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듯이 국가의 지도자 또한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사진 pixabay]

잘 익어 달고 시원한 수박이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듯이 국가의 지도자 또한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사진 pixabay]

겉모습만을 살펴 좋은 수박을 고르기 어려운 것처럼 사람을 잘 만나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더군다나 배우자감이나 사업 동료를 골라야 할 때 정말 여러 가지로 살펴야 후회하지 않는 법이다. 사람 고르기가 수박 고르기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법이다. 수박은 내다 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인연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바야흐로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한 나라의 운명을 가늠할 지도자를 잘 뽑아야 뭐든지 편안하고 잘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동안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무언가 결격 사유가 있는 지도자가 계속 되었다. 국민보다는 자신과 자기 그룹의 이득을 위해 국정을 펼쳤다. 잘 익어 달고 시원한 수박이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듯 다음에 뽑히는 지도자도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인물을 잘 선택하는 안목을 키워야 하겠다.

운동이나 일을 하여 땀을 흠뻑 흘리고 수박 한 쪽을 먹을 때 설탕을 뿌려 먹는 것보다 소금을 살짝 뿌려 먹는 게 더 달고 건강에 좋은 것처럼 미사어귀로 유혹하는 말보다 짠 맛을 내는 소금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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